용서에 대한 단상

6.13지방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그러자 제1야당에서는 선거 패배를 인정하고 선거 이틀 후 ‘비상의원총회’를 마치고 국회 로텐더 홀로 나와서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대형현수막을 내걸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고, 그 이후 제1야당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는 행위가 ‘쇼’가 아니냐는 비아냥의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잘못했다’는 그들의 고백은 공허한 메아리였음이 점점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잘못했다’는 말속에는 일차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분명한 자기의식이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내용도 없이 대표가 물러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계파에 따라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을 정비하고 국민들의 눈높이와 의식수준, 그리고 국민들의 요구에 맞춰 정치를 하려고 하는 노력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현실적 정치 상황을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갈구하는 믿음’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힘으로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의 세력 앞에 무릎을 꿇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나약함 때문에 너무 쉽게 죄와 타협하며 죄의 길을 걸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죄용서를 받고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죄인으로 이 땅에 살면서 끊임없이 죄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잘못했다는 말에는 ‘용서해 달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용서를 빌기 위해서는 용서를 비는 대상에게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용서를 비는 사람의 정당한 모습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변명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용서를 비는 기도는 구체적이여야 합니다.

용서를 비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잘못했노라는 말의 고백만으로는 참된 용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래 전에 흥행했던 ‘밀양’이라는 영화(이창동 감독)에서 유괴살해범이 보여준 행태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주인공 신애(전도연)는 어린 아들 준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옵니다. 그곳에서 어느 정도 적응되어갈 무렵 아들 준은 유괴를 당해 살해되고 맙니다. 힘든 삶을 신앙으로 극복하려한 신애는 신앙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은 후에 살해범을 용서하기 위해서 교도소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면회소에서 만나는 살해범은 ‘교도소 안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를 받았다’며 ‘하나님을 알고부터 매일매일 즐겁다’고 말합니다. 피해자인 자신이 용서하지 않았는데도 용서받았다는 생각에 전혀 죄책감도 없이 즐거워하는 살해범을 그는 결코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 우리시대 신앙의 왜곡된 현실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았다고 스스로 확신이 들면 그는 정말 자신이 지은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제사 가운데 속건제가 있습니다. 속건제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용서를 구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자신이 입힌 피해에 대해서 1/5을 더하여 배상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배상하지 않으면 용서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밀양’이라는 영화에서 살해범이 진짜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온전한 용서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범죄로 인해 망가지고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보상을 해야 합니다. 최소한 ‘자신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으니 당신의 용서와 상관없이 나는 매일 기쁘게 살고 있노라.’는 말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신앙인의 참된 용서의 근거입니다. 벌을 받는 것으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해를 입혔다면 해를 입힌 그것에 분명하게 보상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이 분명해야 이후에 잘못이나 죄를 짓는 일에 두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담감 때문에서라도 말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죄를 짓다가 주일에 예배에 가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그럼으로 모든 죄가 용서되었다는 거짓된 허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모습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분명하게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제1야당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현수막과 함께 무릎까지 꿇었는데도 그것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지난 한 달 동안 그들이 보여준 행태 때문입니다. 무릎까지 꿇고 용서를 빌었다면 잘못을 청산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뭔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는 것만으로는 참된 용서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죄를 따랐던 지난날의 허물에서 벗어나서 앞으로는 더욱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따르기 위해서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는 우리의 결단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된 삶의 모습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변화된 삶을 통해 용서를 구하는 그 마음이 진실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믿음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 빛을 비춰주는 방법은 바로 그것입니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 이 말씀이 용서받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