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J. B. 에인절은 미시간대학 총장을 38년(1871~1909 재임)이나 지낸 분입니다. 총장의 자리는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상황에 따라 민감한 문제들을 처리해야 하기에 오랫동안 유임하기 힘든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는 38년이나 훌륭하게 그 직임을 감당했습니다. 직원들과 학생들의 요구사항도 잘 조율하여 모두를 만족시키며 학교를 운영했습니다. 그가 퇴임할 즈음에 기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장의 자리는 명예롭긴 하지만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그 어려운 총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팔보다 안테나를 더 높이 세우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항상 아랫사람에게 나팔처럼 떠드는 것보다는 안테나가 전파를 잡아내는 것처럼 사람들의 의견을 잘 경청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의 그런 경청하는 습관은 아들에게도 이어져 그의 아들도 나중에 예일대학의 총장을 맡아 16년이나 그 직을 잘 감당하여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문제를 풀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일수록 경청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한 마음가짐입니다. 누군가의 의견을 잘 경청할 줄 알아야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가장 민감한 트랜드 가운데 하나가 소통입니다. 소통은 경청에서 시작됩니다. 경청하지 않으면 나는 소통한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은 불통이라고 느낍니다. 경청하지 않으면 나는 그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몰이해라고 느낍니다. 경청하지 않으면 나는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막힌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경청하지 않으면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특별히 지도자들은 경청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경청하는 척만 해서는 안 되고 진정으로 경청하는 마음이 배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아주 민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떤 현안이 있을 때 그에 대한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습니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 자기주장만을 앞세웁니다. 그러다보니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가 불통의 시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그 다른 생각을 들어주어야 하는데 아예 듣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니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두 인물에서 경청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통일왕국의 세 번째 왕인 솔로몬은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천번제를 드린 후에 꿈에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라고 대답합니다.(열왕기상 3:9) 경청하는 마음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신은 아직 어린 나이인데 왕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았기에 그 직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듣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듣는 마음’을 달라는 솔로몬의 대답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솔로몬의 그 대답을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듣는 마음을 주셔서 솔로몬을 지혜롭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지혜의 왕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듣는 마음이 지혜로운 마음이고, 듣는 자세가 결국 솔로몬을 지혜의 왕이 되게 했습니다.

반대로 그의 아들인 로호보암은 왕이 된 직후 ‘선왕으로부터 지워진 무거운 고역과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듣습니다. 여러 곳에 성을 쌓고 국고를 늘리기 위해서 솔로몬이 가한 무거운 세금과 강제노역을 줄여달라는 요구입니다. 그 요구를 듣고 신하들과 의논하던 중 그들의 요구가 정당하니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노인들의 충고를 거절하고 앞뒤가 꽉 막힌 젊은 사람들의 말을 따라 백성들의 노역과 세금을 줄여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늘렸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12개 지파 가운데 10개의 지파가 르호보암을 배신하여 북 이스라엘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듯합니다. 중세 시대에 종교는 닫혀 있었습니다. 무조건 하향식의 명령과 순종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만 남아 있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의 영적 갈급함에는 무관심했고, 그들의 영적 요구에 철저하게 귀를 닫았습니다. 정치지도자들 역시 그들의 정권보위에만 정신이 팔려 자리 지키기에만 여념이 없었습니다. 귀족과 가진 자들은 백성들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중세는 어둠의 시대가 되어버렸고, 결국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통해서 그 시대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종교지도자들도 신도들에게 명령에의 순종만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아픔이 무엇인지, 그들의 울부짖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선포되는 메시지는 공허할 뿐입니다. 어쩌면 지난 세기(1960-80년대) 한국 교회는 명령에의 순종이 지극히 당연한 신앙적 덕목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성도들은 다릅니다. 이제는 성직자가 성도들의 신음소리와 절규를 들어야 하고, 그들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세상의 소리와 성도들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에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정치가 성공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도 분명 경청일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현안, 그리고 그 현안에 대한 국민들의 다양한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바른 정치를 할 수 있고,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경청이 우리로 생존하게 하는 근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