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각해진 거짓말

미국의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 1921-1995)가 1955년 발표한 『재능 있는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라는 소설 속의 주인공인 톰 리플리는 야망이 높고 머리도 좋지만, 도덕 관념은 부족하고 폭력성도 있는 청년입니다. 호텔 종업원인 그는 재벌의 아들이자 사교계 명사인 친구 디키 그린리프를 살해하고 그의 신분으로 인생을 즐깁니다. 자신의 거짓된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담대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일관하던 그는 그가 죽인 그린리프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그의 그런 삶은 종말을 맞게 됩니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말이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입니다.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거짓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자신의 상상 속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는 심리적 장애입니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성취욕구가 강한 무능력한 사람이 자신이 강력하게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없을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강력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상습적이고 반복적인 거짓말을 일삼게 되고, 이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83년에 발생한 ‘가짜 서울대 법대생’ 사건입니다. 그는 1979년부터 4년 동안 서울대 법대를 다녔습니다. 그가 가까 서울대 법대생으로 행세했던 계기는 군대에서 서울대 법대에 다니던 후임을 만나면서부터였습니다. 후임에게 자신도 같은 서울대 법대 학생인데 입학하자마자 입대를 해서 아는 사람이 없다고 속이고는, 후임과 친해진 후 다른 법대 학생들을 소개받고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강의도 들었고, 학회에 가입하여 활동도 했습니다. 1981년 학생신분으로 결혼할 때에는 법대 교수가 주례를 서주고 많은 학생들이 하객으로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그가 가짜 학생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졸업앨범을 만들 때 그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앨법에 적을 개인 정보가 학교 측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자신의 정체가 들통난 이후에도 그의 거짓은 계속되었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집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했고, 가정교사로 머물던 그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자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1999년 미래저축은행의 전신인 대기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업계 10위권, 자산 2조원대의 회사로 키웠습니다. 그후 미래저축은행은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2012년 영업정지를 당했고, 그는 회삿돈 200억을 빼돌려 중국으로 밀항하려다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가 바로 전 미래저축은행의 회장인 ‘김찬경’입니다.

세상에 거짓이 판을 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세상에서 권세를 휘두르고 있고, 죄악으로 물든 인간은 그 마귀의 종노릇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짓말을 하고 거짓된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는 양심은 우리 스스로 잘못을 했을 때 잘못을 느끼게 하고 뉘우치게 합니다. 거짓과 잘못을 자각하여 자신의 죄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어줍니다. 거짓말을 할 때에는 그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해 하기도 합니다. 그게 정상적인 사람의 반응입니다. 그런데 리플리증후군처럼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는 거짓된 행동을 하면서도 전혀 죄책감이 없고, 더 나아가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회복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우종민 교수는 ‘능력보다는 학벌과 인맥 등 사람의 겉장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진단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요한계시록 21:8)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십계명에서도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지니라.’(제9계명)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에 대해서 아주 엄중하게 경고하시는데, 우리는 거짓말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마귀가 죄악을 가볍게 여겨 형별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게 하려는 계략에 넘어간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 거짓말쯤이야!’라는 생각이 거짓말에 무감각해지게 만들고, 작은 거짓말에 무감각해진 어리석은 인간들은 엄청난 거짓말과 거짓된 행동에도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 거짓말로 인해서 얻어지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도 하고, 손해를 입지 않거나 손해를 적에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거짓말은 결국 언젠가 들통나고 맙니다. 아무리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순 없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이 자신의 위기를 순간적으로 모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드러날 때에는 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고 맙니다. 거짓말에 무감각해지면 인간관계에서 신뢰가 깨지게 되고, 결국에는 건강한 사회의 틀을 깨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고 맙니다.

신앙인의 본질적인 특성은 진실함에 있습니다.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에 진실이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신앙인들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거짓말의 유혹 앞에 선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진실함을 언어와 삶으로 보여주며 증명하는 신앙인들을 통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변해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한 십자가의 복음과 천국의 이야기가 결코 거짓됨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