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금요일) 아침의 묵상 – 사랑은 허물을 덮는 것

오래 전 경남 산청 시골 마을의 한 아이가 시골에서 대구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가정 형편도 안 되고 별로 똑똑하지도 않는데, 아버지는 아들을 대구 시내의 중학교로 유학을 보낸 것입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받아든 성적표는 68명 중에 68등, 반에서 꼴찌였습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중학생의 마음에, 힘들게 소작농을 하며 자신을 도시의 중학교로 보내주신 아버지께 그 성적표를 내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등이라고 조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적표를 아버지께 보여드렸습니다. 주변의 친척들이 몰려와서 ‘찬석이는 공부 잘 했더냐?’라고 물었고,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지,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보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날 ‘자식 잘 뒀다’고 칭찬하는 동네 사람들을 위해서 집안에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 돼지는 그 집안에서 가장 값나가는 보물 1호였습니다. 그런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자 아이는 부모를 속인 것에 대해 너무마도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강으로 달려가 죽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텨보기도 했고,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 때부터 아이는 달라졌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17년 후에는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33년이 지나 자신의 아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33년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용서를 구하려 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네 아들 민우가 듣는다.”

아버지는 33년 전 중학생인 아들이 자신의 성적을 조작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들의 허물을 덮어주고 재산목록 1호인 돼지까지 잡아 동네 잔치를 열었습니다. 중학교 성적을 조작했던 그 아이가 나중에 경북대학교 제13-14대 총장을 역임한 박찬석(朴贊石, 1940-) 교수입니다. 그는 그 때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식이 성적을 위조한 사실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배신하고 떠났을 때 꾸중하는 대신 그들의 허물을 덮어 주셨습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라고,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26:35)고 자신 있게 말하던 베드로는 여종 앞에서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나중에는 저주까지 하면서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이지만 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네가 왜 그랬느냐?’라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베드로를 만나신 주님께서 책망 대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

그렇습니다. 사랑은 허물을 들춰내고 판단하고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덮어주는 것입니다. 덮어준다는 말은 때론 모른 척 한다는 것이고, 때로는 눈감고 없는 것처럼 여겨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다 들춰내 책망하신다면 우리는 한 순간도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감싸주시고 덮어 주십니다. 다 아시면서 모른 척 해 주십니다. 그런 은혜와 사랑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숨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채워지길 기도하며 오늘 하루를 시작하십시다. 그리고 내 허물을 덮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답게, 우리도 누군가의 허물에 눈을 감아주는 사람이 되십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벧전 4:8)고 말씀하셨습니다. 허물을 들춰내는 정의로운 사람이기 전에, 허다한 죄를 덮어주는 사랑의 사랑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