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억울할 수가!

< 본문 – 사도행전 24:1-27 >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고집이 아주 센 사람과 나름 똑똑하다고 한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유는 4×7이 얼마인가 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고집이 센 사람은 4×7=27이라 주장했고, 나름 똑똑하다고 한 사람은 ‘무슨 말이냐? 4×7=28이지’라고 주장했습니다. 한참을 다투던 두 사람은 답답한 나머지 마을 원님께 찾아가 누가 옳은지 가려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원님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더니 한심스런 표정으로 둘을 쳐다본 뒤 고집 센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4×7=27이라 말하였느냐?” “네,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말했는데, 글쎄 이놈이 28이라고 우기지 뭡니까?” 그러자 고을 원님은 다음과 같이 선고하였습니다. “27이라 답한 놈은 풀어주고, 28이라 답한 놈은 곤장 열 대를 치거라!” 선고 후 고집 센 사람은 똑똑한 사람을 놀리면서 그 자리를 떠났고, 똑똑한 사람은 곤장 10대를 맞아야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던 곤장을 맞은 똑똑한 사람이 원님께 하소연을 했습니다. ‘왜 내가 곤장을 맞아야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원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4×7=27이라고 우기는 아둔한 놈과 싸운 네놈이 더 어리석은 놈이니라!”

  여러분, 4×7은 얼마입니까? 초등학교 학생이라면 이 정도는 다 압니다. 그런데 정답인 28을 주장하는 사람이 오히려 곤장을 맞았습니다. 자신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곤장을 맞은 그 사람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런 억울한 일을 수도 없이 당합니다. 잘못은 다른 사람이 했는데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할 때도 있고, 선한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인데 누군가가 그것을 오해하거나 곡해해서 마음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택시 기사가 승객을 태우고 가는데 갑자기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길을 가는데 묻지마 폭행의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선한 마음으로 선행을 했는데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몰아세우기도 합니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억울한 일을 겪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변명합니다.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강력하게 주장하고 변명하더라도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게 더 억울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도 그런 억울한 일을 참 많이 당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그의 인생은 어쩌면 억울한 일이 계속되는 삶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만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주님을 만나 변화된 이후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나 교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를 만나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사도행전 9:26) 다메섹 변화 사건 이후 사울이 예루살렘을 찾아간 것은 3년 후입니다. 그 3년 동안 사울은 아라비아에 가서 기도와 묵상을 통해 더욱 깊이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찾아갔는데, 제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사울의 변화를 믿어주지 않은 것입니다. 겨우 바나바의 중재로 제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변화된 자신을 사도들과 제자들이 믿어주지 않았을 때 사도 바울은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제1차 선교여행 중 루스드라에 갔을 때입니다. 나면서부터 걸어본 적이 없던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그 때 루스드라 사람들은 ‘신들이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고 기뻐하며 바나바를 제우스 신으로, 사도 바울은 헤르메스 신이라고 추앙하며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두 사도의 만류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지만, 이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의 충동으로 인해 루스드라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버려질 정도였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나바와 사도 바울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고쳐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선동하는 말을 들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죽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돌로 쳤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이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갈라디아서에 보면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아니었기에 ‘사도가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1년 6개월 동안이나 복음을 전하며 세운 고린도 교회에서는 자기들의 문제를 믿음으로 잘 풀어가도록 편지를 보낸 사도 바울의 권면을 곡해하여 ‘네가 뭔데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던 사도 바울은 눈물로 편지를 써야 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가 그토록 신뢰했던 사람들 중에 사도 바울이 죄수로 잡히게 되자 그를 버리고 떠나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어떤 죄를 지어서 죄수가 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오해를 사서 죄수의 몸이 되었는데, 그의 제자요 동역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를 외면한 것입니다. 외로울 때 곁이 있어주어야 할 사람들이 떠나버렸을 때, 사도 바울은 얼마나 힘들고 억울했을까요?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수없이 외면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도 바울인데, 오늘 본문은 그런 억울함을 당한 사도 바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제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사도 바울은 여러 사람이 걱정한 것처럼 큰 시련을 겪어내야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도 사도 바울을 오해한 사람들이 있었고, 바울은 그것을 풀어주기 위해서 성전에 올라가 결례를 행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이 이방인을 성전에 데려갔다고 오해를 하고서, 사도 바울을 붙들어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간신히 천부장의 개입으로 생명을 구했지만, 그는 구금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천부장은 사도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이 사태의 진상을 알고자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합니다. 이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한 것처럼, 사도 바울에게도 최악의 형벌을 가할 수 있었지만, 부활의 문제로 사두개인과 바리새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서 사도 바울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식음을 전폐하겠다고 동맹한 40여 명의 사람들로 인해, 천부장은 밤중에 몰래 사도 바울을 가이사랴에 보냅니다. 가이사랴는 당시 로마의 총독부가 있는 곳입니다. 천부장은 자신의 힘으로는 사도 바울을 지켜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총독의 수하에서 안전을 보장받도록 총독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리곤 총독 벨릭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에게)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23:29) 사도 바울은 무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또 사도 바울을 고발할 것이고, 총독께서 직접 재판장이 되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며 사도 바울을 총독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천부장의 예견대로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장로들과 변호사를 대동하고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내려와 바울을 고발합니다. 그래서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바울이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게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바울을 고발하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전염병 같은 자라고 표현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이것은 굉장히 모독적인 말입니다. 마치 흑사병과 같이 전염성이 강해 한 번 감염되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암적인 존재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 전염병은 결국 많은 사람에게 해악을 끼쳐 로마 제국에도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 전염병과 같은 사람이란 이유를 설명합니다. 첫째는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다 소요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도를 따르는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언제든지 로마 제국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5절에 나온 ‘소요’라는 단어는 폭동이나 반란을 연상케 하는 말입니다. 은근하게 언제든지 폭력을 선동하여, 로마 제국이 추구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단 한 번도 로마 제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을 꿈꾸거나 주도한 적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억울한 고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바울이 전염병과 같은 이유를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말합니다. ‘이단’이라는 말은 종교적으로는 정통 교리에 어긋나는 집단이라는 뜻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에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집단을 뜻하기도 합니다. 거기에다가 ‘예수’라는 말 대신에 ‘나사렛’이란 말을 덧붙여, 그리스도인들을 경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총독에게 경멸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세 번째, 성전을 더럽게 하는 자이기에 전염범과 같은 자라고 고발합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이 정치적으로도 위험 인물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인물임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총독 벨릭스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종교적인 민족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유대인들에게 종교적으로 흠결이 많은 사람, 유대의 종교에 위해를 가하여 유대인들에게 반감을 일으켜 유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너무나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자 바울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항변합니다. 다섯 가지로 자신의 입장에 대해 변명합니다.

  첫째는 자신은 예루살렘에 올라간지 불과 열이틀 밖에 되지 않았고, 그 기간 동안 어느 누구와도 변론하거나 무리를 선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발자들의 주장처럼 자신이 어떤 정치적인 힘을 모아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 일이 없다고 말입니다.

  둘째는 고발자들이 이단이라고 말하는 기독교는 유대교가 믿는 하나님을 동일하게 믿고,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는 부활의 소망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그렇게 많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같은 신앙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셋째는 자신이 여러 해 만에 예루살렘에 온 것은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자기 민족 유대인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민족 유대인들을 돕고 유익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넷째는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도 자신을 고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계속 따라다니며 바울을 괴롭히고,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을 반대하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조차도 자신을 고발하지 않는데,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지금 자신을 고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뜻입니다.

  다섯째는 자신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도 심문을 받았는데, 그 때 공회가 자신에게 불의한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공회에서 심문할 때도 잘못을 찾아내지 못했으면서 또다시 자신을 고발하는 것은 억지라는 이야기이지요.

  이렇듯 대제사장을 비롯한 고발자들의 고발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변명합니다. 그런 사도 바울의 변명에 대해서 고발자들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바울의 발에 대해서 토를 달거나 다른 말을 첨가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도 바울은 억울하게 고발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말도 되지 않는 건수로 사도 바울을 모함합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총독 앞에서 자신의 입장에 대해 분명하게 변명했습니다. 고발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제 사도 바울의 억울함이 풀렸을까요? 재판장인 총독 벨릭스도 사도 바울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벨릭스 역시 유대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하게 내릴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등 고발자들에게 ‘말도 안 되는 것으로 고발하느냐?’고 책망하여 되돌려 보내든지, 사도 바울에게 분명하게 ‘당신은 무죄야!’라고 선언하면 그 재판은 끝이 납니다. 이미 천부장을 통해서도 ‘사도 바울에게는 죄가 없다.’는 통지를 받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재판관의 자리에 앉아 양쪽의 이야기를 들은 결과도 천부장의 결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도 바울은 무죄 선언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게 무죄가 선언되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22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유대교에 대해서, 그리고 기독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바꿔 말하면,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이 다 옳다는 것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선언만 하면 됩니다. ‘사도 바울, 무죄!’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벨릭스 총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판결을 연기했습니다. 천부장이 오면 그 때 판결하겠다고 말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천부장은 사도 바울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편지를 써서 총독에게 보냈습니다. 더 들어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판결은 연기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사도 바울에게서 아무도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천부장도 편지를 통해 분명히 그렇게 썼고, 총독도 자신이 재판관이 되어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본 결과 사도 바울에게서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판결하지 않고 천부장을 핑계로 판결을 연기합니다.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 얼마나 억울합니까?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으면서도 판결을 미루다니요.

결국 바울을 다시 감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비록 약간의 자유를 주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도록 허락했지만, 감옥에 다시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벨릭스가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분명 사도 바울에게서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천부장도 그렇게 말했거니와 자신이 직접 재판관이 되어 심문을 해 보아도 죄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을 석방하거나 무죄 선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를 오늘 본문은 이렇게 짧게 설명합니다.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본문 26절) 이 말씀을 한 배경을 좀 더 살펴 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사도 바울의 재판을 끝내고 한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인 25절의 말씀에 의하면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자, 그 말씀을 들은 벨릭스의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말씀을 듣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면 회개하던지, 조심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벨릭스가 말씀을 들은 후에 느낀 두려움은 잠시이고,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탐욕이 꿈틀댄 것입니다. 돈을 바라는 탐욕 말입니다.

  분명 무죄 선언을 받아야 할 바울입니다. 그런데 로마 총독이라는 사람이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바울에게 무죄 선언을 하지 않고 돈을 받을 생각만 합니다. 어쩌면 바울이 총독 벨릭스에게 뇌물을 주었다면 무죄선언을 받아낼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울은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무려 2년이 지나도록 감옥에 가두어둔 채 재판을 끝내지 않습니다. 2년 동안 가이사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 이 또한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억울함으로 점철된 시간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억울하게 채찍질을 당하는 것은 기본이고, 공회로부터 부당하게 고발을 당했습니다. 분명 죄를 찾아내지 못했음에도 총독으로부터 무죄선언을 듣지 못했고, 오히려 암묵적으로 돈을 요구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자신의 억울함을 재판의 과정 속에서 변명할 뿐, 억울하다는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마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고난을 예언하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7)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부당하게 고난을 당할 때에도, 불법적인 재판을 받으실 때에도, 억울하게 채찍을 맞으실 때에도, 심지어 고통 속에 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으셨습니다. 묵묵히 그 모든 것을 참아내셨습니다. 그리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예수님처럼, 그리고 오늘 본문의 바울처럼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들로부터 용납받지 못해 억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억울한 일을 겪기도 합니다. 심지어 같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교인들 사이에서도 오해가 생겨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억울함을 다 변명하거나 화풀이할 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잠잠해야 하고, 때로는 참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변명한다고 우리의 변명이 통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나의 정당함을 주장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비록 사도 바울이 억울하게 2년 동안이나 가이사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처럼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을 뿐입니다.

  여러분, 조급해 하지 마십시다. 사람들이 내 마음 알아주지 못한다고 억울한 마음에 사로잡히지 마십시다. 억울할 때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분명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 2024년 12월 8일 주일낮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