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작성일 : 2005-05-25 22:23
|
글쓴이 :
안효관
 조회 : 2,318
|
심리학 용어에 ‘빈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란 말이 있습니다. 둥지 안에서 자라던 아기 새들이 자라나 둥지를 떠남으로 해서 텅 비어버린 것처럼, 애정의 보금자리라고 여겼던 가정에 아무도 없이 홀로 남은 주부들이 자기 스스로를 빈껍데기처럼 불안을 느끼는 심리적인 현상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중년의 주부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일시적인 자기 정체성의 상실을 느끼는 심리적인 현상’입니다. 남편은 직장이나 바깥일에 골몰하느라 가정에 있어줄 여유가 없고, 애지중지 정성을 들여 키웠던 자녀들은 진학 ․ 취직 ․ 결혼 등으로 둥지를 떠난 아기 새처럼 어머니 곁을 떠나버릴 때 중년의 주부들은 뭔가 모를 공허함과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럴 때에 행복의 보금자리처럼 여겨졌던 가정은 더 이상 행복의 둥지가 아닌 공허한 빈 둥지처럼 여겨질 뿐입니다.
빈둥지 증후군을 벗어나기 위해서 사람들은 나름대로 뭔가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섭니다. 어떤 사람은 이전엔 전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기도 하고, 쇼핑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쇼핑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첫사랑이 궁금해서 옛 앨범을 펼쳐놓고 정서적인 사춘기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술이나 도박에 심취해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론 ‘빈둥지 증후군’을 이겨내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지거나 급격한 체력 저하 등으로 건강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빈둥지 증후군’이 꼭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 이후 남편에게 종속되고, 자녀를 낳은 후에는 자녀의 뒷바라지 때문에 자신의 삶과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채 살아온 지난날의 시간들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축구 경기에서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에 가진 짧은 ‘하프 타임’(half time)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프 타임을 잘 활용하면 전반전에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던 기량이나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빈둥지 증후군의 하프타임을 잘 극복하면 인생의 후반전을 더욱 멋지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그 기간을 ‘하프 타임’으로 생각하고 후반전의 멋진 인생을 위해서 자기계발을 위해 에너지를 쏟는 것입니다. 너무 바쁘게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에서 간과해버린 가치 있는 것들을 하나 하나 점검하면서 그 가치 있는 일에 더욱 몰두할 수도 있습니다. 내 가정만을 바라보던 좁은 시각을 좀더 넓혀 큰 세상에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또 다른 가족을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하나님과 교회에 더욱 헌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고, 물질적으로 안정이 되기도 하고, 인생의 지혜가 축적된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으로 섬김의 일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고, 자녀를 양육하면서 체득한 노하우를 보다 젊은 세대에 전수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삶의 여건이 지난 어느 때보다도 여유롭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헌신하며 하나님과 깊은 영적 세계에로 나아갈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대부분 이 연령대의 주부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여정에서도 ‘빈둥지 증후군’을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 가운데 신앙생활해 왔고 자신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 열심히 헌신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엔가 자신 주변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고 자신을 감싸고 있는 신앙의 둥지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느끼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뜨거운 사랑이 식어졌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공동체의 사랑이 식어진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느끼는 내 마음이 빈 둥지가 되어버려서 끊임없이 공급받고 있음에도 공허함과 허전함을 느끼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the individual)’로서 얍복강 가의 야곱과 같은 씨름이 우리에게 있어야합니다. 야곱에게 지난 20년의 세월은 출세의 가도를 질주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자수성가해서 많은 재산과 건실한 가정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얍복강 앞에서의 야곱은 자기 스스로 그 강을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출세와 성공이 그 강을 건네주는 힘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재산과 가족들을 다 얍복강 건너편으로 떠나보낸 야곱은 오직 홀로 그 강가에 섰습니다. 그리고 가족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재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 둥지, 성공이나 출세를 통해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 둥지만을 품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밤새도록 씨름한 후에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확인받고는 얍복강을 건널 수가 있었습니다.
마음의 빈 둥지를 채움 받기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 주님이 아니면 이 빈 자리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합니다.’ 하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한 자신과의 씨름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고 제2의 자기 정체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빈둥지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정서적 지지가 필수적입니다. 그 힘든 때를 주부 혼자서 극복하도록 무관심하거나 버려두지 않고, 그 빈 둥지를 사랑과 관심으로 채워가도록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의 빈 둥지가 생겼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던 내 주변의 사람이 어느 순간엔가 무기력해 보이고 삶에 지쳐 자아를 잃어가고 있다고 느낄 때에는 비난의 손가락질보다는 격려와 관심을 통해서 신앙적으로 성숙해가도록 지지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도 언젠가 그런 빈 둥지 때문에 힘들 때가 있었고, 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하는 넓은 마음도 필요합니다.
얼마 전에 40대의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남편을 하나님 곁으로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 가운데 있는 유정미 집사님! 집사님의 마음은 지금 빈 둥지와 같습니다. 남편의 빈 자리가 굉장히 크게 느껴지기에 더욱 깊은 상심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 마음의 빈 둥지에 하나님의 위로와 새롭게 하시는 은혜로 채워져서 인생의 후반전이 지금보다 더욱 멋진 삶으로 설계되어 지금까지의 행복보다 더 아름다운 행복과 가치 있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