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넘어

며칠 전 마음 흐뭇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로 당선된 원희룡 당선자가 도지사 인수위원장으로 신구범 후보를 선임했다는 소식입니다. 지방선거에서 새롭게 자치단체장에 당선된 사람들은 모두 인수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수위원장을 선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주도 원희룡 당선자의 인수위원장에 신구범 후보가 선임되었다는 것에는 몇 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인수위원장으로 임명된 신구범 후보는 금번 지방선거에서 원희룡 당선자와 경쟁을 했던 다른 당 후보였다는 것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이것이 큰 충격인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선거 후 낙선한 상대 당의 경쟁 후보를 인수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원희룡 당선인이 신구범 후보를 많은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희룡 당선인은 신구범 후보를 인수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원희룡 당선인은 기자회견에서 신구범 후보를 인수위원장으로 선임한 이유를 ‘대통합과 도정(道政)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한 선택이고 결단이었다.’고 밝혔습니다. 편 가르기 정치를 극복하고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를 뛰어넘어 협치(協治)와 통합의 정치에 초석을 마련하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신구범 후보는 이번에 당선된 원희룡 당선인보다 연륜이나 나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72세의 신구범 후보는 이미 제주도시자를 두 번이나 역임한 사람입니다. 반면 올해 50세의 원희룡 당선인은 3선의 국회의원이긴 하지만 자치단체장을 역임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보다 스물 두 살이나 많은 신구범 후보를, 그것도 도지사를 역임했던 분을 인수위원장으로 선임한 것은 우리나라의 문화에서는 쉽기 이해되지 않는 일입니다.

세 번째는 인수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원희룡 당선인의 제안을 신구범 후보가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신구범 후보의 소속 정당은 새정치민주연합입니다. 당에서는 인수위원장직을 맡는 것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수위원장직을 맡으려면 탈당을 하라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구범 후보는 기꺼이 인수위원장직을 맡겠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는 정치공학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주도의 야당으로서 새로운 도지사가 도정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견제해야 할 역할이 신구범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지라도 초당적인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 원희룡 당선인과 기꺼이 함께 하겠다는 신구범 후보의 선택과 결단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된 기류 가운데 하나가 편 가르기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나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는 것 때문에 ‘종북’이나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거나, ‘보수 꼴통’이나 ‘일베’라고 낙인찍기도 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포용하거나 다른 생각에 장점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려 하기보다는 단절을 선택해버리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태어난 고향, 살고 있는 지역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호남 사람들을 ‘홍어, 전라디언(전라도인을 비하하는 말), 슨상님(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말)’라고 부르고, 경상도 사람들을 ‘과메기(경사도 사람을 비하한 말), 통구이(대구 사람을 비하하는 말), 개쌍도(경상도를 비하하는 말)’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편을 가르고 서로를 비하하면서 깎아 내리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줄 수 있겠습니까? 지난 해 서울에서 열린 한 시포지움에서 국내연구진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7개 회원국 중 사회적 갈등 부분에서 터키 다음으로 2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이 OECD회원국의 평균 수준으로만 내려간다면 1인당 국내총생산은 7-21%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지역갈등, 이념갈등 등으로 소비되는 비용만 1년에 246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런 갈등이 사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종교계 안에도 내재해 있고, 심지어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할 교회 안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계 정치에도 계파라는 것이 암암리에 존재합니다. 노회 안에서도 특정 인물이나 특정 교회를 중심으로 줄서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야 당연한 사회적 현상이지만,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통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치적인 힘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자기 뒤로 줄 세우기를 하려는 사람과 그런 힘에 의해서 줄서기를 하면서 자신의 손에 쥐어지는 작은 이득에 히히덕거리는 모습이 교회 안에서만은 사라져야 합니다. 자신과 정치적인 노선이 다르다고 해서 암암리에 비난하고 적대시하는 행위는 분명 복음과 상반되는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분열하고 갈등하는데 소비되는 에너지를 교회를 바로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된다면 복음의 능력을 폭발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교회의 영적 에너지를 잘못된 곳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갈등에 소비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세계를 품으셨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헬라인이나 야만인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복음의 정신과 너무나도 다른 길을 선택하며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더구나 복음을 가르치고 선포해야 할 목회자들 사이에서조차 갈등을 조장하고 분열을 획책하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요?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두를 끌어안으신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을 우리의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그 사랑에 감동되어 산다면 우리는 결코 정죄할 수 없을뿐더러, 차별하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복음을 외쳐야 합니다. 갈등과 분열로 인해 아픈 사회를 끌어안고 그들에게 복음을 외치며 복음으로 세상을 치유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먼저 갈등의 골을 없애야 합니다.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내 형제에게 먼저 손 내밀지 않으면서 어떻게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겠습니까? 교회 안에서부터 차별이 없어져야 합니다. 갈등을 만들어내는 일이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고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