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부서지고 깨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통과 죽음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고통과 죽음의 삶을 모든 것을 끌어안으려는 사명감으로 생각하고 사셨습니다. 우리도 모두 부서지고 깨어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부서지고 깨어진 육체를 가지고, 부서지고 깨어진 가슴을 가지고, 부서지고 깨어진 마음을 가지고, 또는 부서지고 깨어진 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서지고 깨어진 인간관계로 인하여 고통 받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서진 삶을 우리의 죄 많음을 상기시켜주는 하나님의 저주로 생각하여 이것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받아들여 우리의 순수함과 죄의 정화를 위한 하나님의 복에 예속시킬 것을 요구하십니다.

영원으로부터 선택받으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인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부서지고 깨어지셨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그의 생명이 번식하여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사람들을 위한 양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되고 축복받은 자녀로서의 삶을 살 때, 우리의 작은 생명도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지기 위하여 부서지고 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도 세상을 위해 부서지고 깨어진 삶을 살 때, 우리 생명은 자자손손 계속하여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영성가인 헨리 나우웬(Henri Nouwen, 1932-1996)이 그의 책 『영혼의 양식』에서 한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으며,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림을 받으셨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함을 당하셨습니다.(이사야 53:4-5) 깨어진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이 얼마나 큰가를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는 부활로 승리를 안겨다 줌을 또한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는 십자가의 삶을 산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위해 그리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부서지고 깨어지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어질 때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음같이, 우리가 부서지고 깨어질 때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납니다. 자아를 깨뜨릴 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내 욕심이 깨어질 때 내 삶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의지와 교만이 깨어질 때 드디어 나는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깨어질 때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에게 깨어지면 안 된다고 세뇌시킵니다. 내가 부서지고 깨어지면 나만 손해를 본다고 말입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야 할 우리 신앙인들조차도 예수님의 모습이 아닌 세상의 가르침에 따라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곤 합니다.

신앙인은 ‘신앙’이라는 가치를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가치보다는 세상의 가치에 따라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 발붙이고 살고 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세상에서는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우리의 귀에 속삭이는 세상의 가치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세상의 논리가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맞았습니다. 사순절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에 십자가의 삶에 대해 흠모하는 마음이 우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삶에 대한 열망이 일지 않는다면 그건 십자가를 바르게 묵상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얻어질 세상적인 유익을 욕망한 결과입니다. 마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계실 때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고난과 십자가와 죽음을 예고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주님과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고난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데, 제자들은 영광의 자리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같은 길을 가고 있음에도 생각하는 것이 달랐고, 욕망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주님의 뒤를 따르는 우리의 모습이 혹 제자들의 모습은 아닌지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세상적인 유익이나 영광을 바라보며 주님을 따르고 있진 않는지 말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부자가 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병 고침을 받고, 예수를 믿음으로 가정이 행복해지고, 예수를 믿음으로 내 앞길이 형통해지는 것을 소망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주님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그런 복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는 신앙의 본질과 목적은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은 예수 안에서 우리의 자아가 깨지는 것입니다. 신앙의 목적은 우리의 욕망에 십자가에 부딪혀 부셔짐으로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부터 성도들은 사순절 절기를 통해서 자아를 깨뜨리고 부서뜨리는 훈련을 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깨뜨리는 훈련, 내 기쁨을 추구하려는 세상적 욕심을 덜어내는 훈련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를 따라감으로 자아가 세상 속에서 깨어지는 성도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그들을 통해서 세상은 새롭게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바로 그가 ‘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