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다운 결단

『심플 라이프』라는 책을 쓴 리처드 포스터(Richard J. Foster)는 현대인의 특징을 ‘애매함’이라고 말합니다. 분명한 자기 기준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애매모호함 속에 서는 것이 현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인이 그렇게 애매모호하게 사는 이유로 세 가지를 듭니다.

그 첫 번재 이류는 ‘소음’입니다. 현대인은 수없이 많은 말과 소리와 정보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소리를 듣고, 새로운 것을 보고,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살아가는데, 인가넷과 방송과 신문 등을 통해서 들은 그 모든 정보들조차도 소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소음들이 자기 성찰에 필요한 침묵과 고요함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그런 소음들로 인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기 기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뿌리 없는 나무처럼 애매모호한 삶을 살고, 기회주의적인 삶에 길들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비즈니스’ 때문입니다.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현대인은 온통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문제 때문에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산업화된 자본주의에 세뇌되어서 현대인은 점점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인단다움이나 여유로움을 잃고 말았습니다. 속도와의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에서만 ‘빠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이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질에 노예가 되고,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살다 보니 인생을 애매모호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대중성’이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것이 현대인의 삶을 애매모호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기 주관을 갖고 살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두며 살고 있는 것이 현대인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삽니다. 내 형편에 맞게 살면 좋을 텐데, 자신을 다른 사람과 자꾸만 비교하며 남들만큼 벌어야 하고, 남들만큼 입어야 하고, 남들만큼 누리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고 다른 사람에 비해서 자꾸만 뒤처지는 실패자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내 주관으로 살지 못하고 유행을 따라 살아갑니다. ‘유행’이니 ‘시대 풍조’니, ‘문화’니 ‘매스컴’이니 하는 것에 떠밀려 스스로 판단하여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대중적인 판단에 자신을 떠맡기며 사는 애매한 인생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애매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삶에 결단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냥 세상 물결에 자신을 맡기고 부평초처럼 살면 됩니다. 그러니 인생을 부담 없이 삽니다. 운명이라고 하는 아주 편한 핑계거리에 자신을 맡겨버립니다. 마치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나오는 한 장면과도 같습니다. 돈키호테가 길을 가다가 갈림길을 만났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그는 자신이 가야할 길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선택권을 말에게 줘버립니다. 말이 가는대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말은 외양간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애매모호하고 우유부단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갈멜산 위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단호하게 결단하도록 촉구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열왕기상 18:21)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우리 주님은 준엄한 목소리로 책망하십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요한계시록 3:15-16)

우리의 삶에 결단해야 할 때가 분명 있습니다.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때로는 목숨을 건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내 자신의 모든 명예를 걸고 결단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비록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이 순교자들처럼 목숨을 내놓는 순교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우리네 인생에서 분명하게 결정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선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휴지조각처럼 여기는 것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진 않을 것입니다. 내가 정말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썩어지고 사라질 것이라고 가르쳐준 것에 가치를 두고 싶어 하는 세상적인 욕망을 조금씩 덜어내야 합니다. 무엇이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하고, 그 가치가 내 사고 속에 깊이 뿌리내리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훈련하지 않고서는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가치 있다고 유혹하는 것에 내 생애를 맡기며 사는 세상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인은 신앙이 최고의 가치여야 합니다. 신앙이 무엇을 가치 있다고 말하는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내 귀에 들려오는 세상의 수많은 소리들에 귀를 닫고, 하늘의 음성을 들으며 생각해야 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신앙인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신앙의 가치를 따라 살 때에 신앙인다울 수 있습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고 군인다운 절도가 있어야 군인답듯이, 신앙인 역시 세상의 가치 흔들리지 않고 신앙인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을 가며, 신앙인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신앙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이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을 때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