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이기

‘칵테일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자신에 관계되는 말이나 자신이 관심 있는 말은 잘 들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카테일파티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대화하며 웃고 떠드는 장소에서도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거명하며 이야기를 할 때에 비록 자신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말이 자기의 귀에 아주 잘 들립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그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듣게 됩니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대화가 오갈지라도 사람은 자신이 관심이 있는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고, 나머지 대화들은 배경이나 잡음 정도로 만들어버릴 수 있습니다.

‘카테일파티 효과’는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선택적 주의’ 역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1970년대 인지심리학의 선구자인 울릭 나이서(Urlic Neisser) 교수가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눠 서로 다른 색의 옷을 입혔습니다. 한쪽은 검정색 옷을 입혔고 다른 한 팀은 흰옷을 입힌 후에, 서로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농구공을 가지고 패스를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장면을 카메라로 찍어 1분 정도의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동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검은 색 옷을 입은 팀의 패스는 무시하고 흰색 옷을 입은 팀의 패스만 말없이 세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실험의 핵심은 학생들이 흰색 옷을 입은 팀의 패스 숫자를 얼마나 정확하게 세느냐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1분짜리 영상에는 고릴라 의상을 입은 여학생이 약 9초 정도에 걸쳐 무대 중으로 걸어 나와 흰색과 검정색 옷을 입고 농구공으로 패스를 하는 그 사람들 사이에서 서서 카메라를 향하여 가슴을 친 후에 걸어나가는 장면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영상을 본 학생들에게 ‘흰색 옷을 입은 팀이 몇 번이나 농구공을 패스했느냐’고 물을 후에 ‘선수들 말고 고릴라를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실험에 참가한 학생 가운데 약 50% 가량의 학생들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왜 약 9초 가량 등장하여 카메라 앞에서 가슴까지 치는 특이한 행동을 한 고릴라를 보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흰 옷을 입은 팀의 선수들이 패스를 몇 번이나 했는지를 헤아리는데 정신을 집중하느라 고릴라의 등장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택적 주의’에서 주목 받는 대상을 ‘전경’이라고 하고, 주목받지 못한 대상을 ‘배경’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전경만을 지각할 뿐 배경은 지각하지 못합니다. ‘고릴라 영상’에서 고릴라는 전경이 아니라 배경이었기에 실험자들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귀에 다양한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소음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수없이 많은 정보와 이야기들이 들려옵니다. 우리는 그 많은 정보와 소리들을 다 귀담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전경’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그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동산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버는 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아파트나 땅을 보면 돈을 벌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공부에 관심을 많이 갖는 사람은 자신의 주변에 산재해 있는 많은 정보 속에서 공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게 됩니다. 건강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건강해지는 여러 가지 방법이나 정보를 많이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 귀에 잘 들려오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정보와 소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답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모습들이 너무 많은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왜곡된 인간됨의 모습이 당연시 되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사람됨의 모습을 갖고 사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정직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직한 사람을 보면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희생하는 것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든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가 희생하는 것은 두려워하고 희생하려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원하면서도 행복한 사회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사는 것이 우리들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됨을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바르게 살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자고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관심에서 ‘전경’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부자되는 것, 출세하는 것, 성공하는 것, 나 행복해지는 것은 우리에게서 이제 ‘배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도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의 삶에서 ‘전경’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터 테레사가 말한 다섯 가지 침묵을 위한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절제하는 입술의 침묵, 주변의 변화에 동요하지 않는 마음의 침묵, 보이는 것을 등급 매기려 하지 않는 눈의 침묵, 필요 없는 말을 듣지 않으려는 귀의 침묵, 자기를 비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마음의 침묵입니다. 나의 침묵이 가장 정확하게 듣는 방법입니다.

잡다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많은 소리들 가운데 소음은 걸러내고 참된 인간이 되는 정보, 신앙인다운 신앙인이 되기 위한 하늘의 소리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