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와 정의

옛날 어느 나라에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품이 인자했을 뿐만 아니라 효성도 지극했습니다. 인자한 그였지만 그는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 법을 잘 지키도록 독려했고, 법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태형 40대’라는 엄한 형벌로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왕의 어머니가 법을 어기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신하들은 저마다 근심스러운 얼굴로 수군거렸습니다. '저 효성이 지극한 왕이 자기 어머니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에 자신의 어머니라고 봐준다면 나라의 공의와 질서가 무너져 버릴 텐데 어찌할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왕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한참 만에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짐의 어머니를 기둥에 묶으라, 그리고 법대로 40대를 치라!" 왕의 명령에 일순간 다들 놀라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매를 치려는 순간 왕은 어머니에게 달려들어 어머니를 꽉 껴안았습니다. 어머니를 대신하여 왕은 40대의 매를 고스란히 다 맞았고, 왕의 옷은 상처의 피로 흥건히 젖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왕은 나라의 공의를 드높이 세웠으며 이 사실이 백성들에게 알려지자 그 나라는 더욱 법을 잘 지키는 나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탱하는 큰 힘이 있다면 그것은 인자(仁慈)와 정의(正義, 또는 공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통치하고 섭리하실 때 언제나 인자와 정의로 통치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깨달은 시인은 ‘주의 인자와 정의를 노래한다.’고 고백합니다.(시편 101:1) 인자는 언약적 사랑입니다. 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는 본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뜻하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주로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변한 없는 사랑, 언약적 사랑을 가리킵니다. 그 언약적 사랑을 잘 보여주는 것이 호세아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긴 고멜을 호세아는 다시금 데리고 옵니다. 그것도 그냥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 큰 대가를 지불하고서 아내를 데리고 옵니다. 그것이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실수하고 잘못했을지라도 책망하거나 나무라는 대신 사랑하는 이가 짊어진 모든 짐을 대신 지며 그를 끌어안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당신의 언약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정의는 올바름입니다. 정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합법적인 기준에 의해 공정하게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법과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판단하고 재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질서나 윤리도 그렇거니와 성경에서도 언제나 공정함을 추구합니다. 뇌물을 받고 부자에게 유리한 재판을 해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해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23:6)고 말씀하십니다. 분명 힘없고 가난한 자는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들의 잘못과 범죄를 봐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의롭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가장 민감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적폐’(積弊)입니다. 적폐란 오랫동안 쌓여진 폐단을 말합니다. 반드시 제거해야 만 더 나은 사회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적폐가 사라질 때 그 사회는 공의로운 사회가 됩니다. 그런데 그 적폐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인자(사랑)가 사라진 공의의 잣대만을 적용한다면 그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반드시 제거해야 할 잘못된 관행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한 축이었음에는 분명합니다. 마치 우리 몸 안에 내재해 있는 암덩어리처럼 말입니다. 암덩어리가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고 아무나 그것을 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정교한 의술을 가진 의사만이 그것을 제거할 수 있고, 의술이 뛰어난 의사라 하더라도 그것을 제거하는 데에는 아주 신중하게 임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암덩어리를 제거하다가 사람의 생명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반드시 제거해야 할 적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 더 공정하고 모두가 살맛나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랑은 인자(사랑)입니다. 잘못된 관행을 뿌리를 뽑아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을 미움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머무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준엄한 공의의 칼날이 필요하지만, 그의 인격과 존엄성마저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시대를 바라보면서 누군가를 향하여 손가락질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도 인자와 공의를 요구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미가 6:8)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정의를 행할 뿐만 아니라 인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균형잡힌 신앙인의 모습이고, 그런 모습으로 우리가 살아갈 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습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거드리(Gurthrie)는 이렇게 말합니다. “두 개의 지류가 합쳐져서 하나의 강을 이루는 것과 같이 인자와 공의는 구속(救贖)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마치 두 '그룹'의 날개가 법궤 위에서 만나는 것처럼 인자와 공의는 그리스도의 일에 있어서 연합된다. 인자와 공의는 중보자의 보좌의 영원한 두 기둥을 이룬다. 갈보리 산 언덕에서 인자(仁慈)와 진리가 함께 만나며 의(義)와 평화가 함께 만난다.”

바로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가슴이 깊이 새겨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말입니다. 인자와 정의!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었고, 십자가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인자와 정의의 삶을 살길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