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본질을 회복하자

한 일간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5월 19일 영국 윈저궁에서 결혼하는 해리(Henry Windsor) 왕자와 약혼자인 메건 마클(Meghan Markle) 커플이 자신들의 결혼을 축하하려는 이들에게 선물을 대신에 자선단체에 기부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해리 왕자의 결혼식에 초대된 사람은 모두 600여 명인데 그 가운데 각국 지도자 등 정치인들을 초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왕위 계승 서열 5위인 해리왕자의 결혼식은 윈저궁 전용예배당인 세인트 조지 채플인데, 이 예배당은 그의 형인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 장소였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비해 좁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결혼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메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초대받지 못했고, 평소 해리 왕자와 친분이 두터웠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결혼식 참석 명단에 빠졌습니다. 해리 왕자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될 600명의 명단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맨체스터 아레나 공연장 테러 당시 부상을 입었던 12세 소녀 어밀리아 톰프슨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직 결혼식이 치러지진 않았지만 이들 결혼식에서 신선한 것은 선물을 받지 않고, 그것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결정했다는 사실입니다. 해리 왕자 커플은 기부할 단체까지 지정해 주었다고 합니다. 인도 빈곤여성지원, 야생환경보호, 노숙인 주거 및 일자리 지원, 보훈 단체 등으로 자신들과 직접 관계를 맺진 않았지만 평소 열정을 가지고 보았던 단체들입니다. 해리 왕자는 육군 복무기간 중에 아프간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고, 이로 인해 참전 군인들의 트라우마 치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메건 마클 역시 월드비전 캐나다 홍보대사로 활동했고, 유엔양성평등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자신들의 활동들을 통해서 지구촌 구석구석엔 아직도 도움과 관심이 필요한 곳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결혼식 선물 대신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기 위해 기부를 당부한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바라는 것은 해리 왕자의 결혼을 통해서 지구촌에 아름다운 기부의 손길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는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기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불우아동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128억을 기부받고 아동을 위해서 쓴 금액은 고작 2억에 불과했던 ‘새희망씨앗’ 사건이나 희귀병에 걸린 땅을 이용해서 12억이나 되는 큰돈을 챙긴 ‘어금니 아빠’ 이영학 씨 사건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지난 2017년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1년간 기부경험자가 26.7%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지난 2011년도의 36.4%에 비하면 1/4이상 감소한 숫자입니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하지만 기부단체를 신뢰하지 못한 이유도 큰 원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준다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간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내가 힘들게 벌었기에 나만을 위해 써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 지극이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세상은 나 홀로 존재하고, 나 홀로 살아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누군가를 향해 도움의 손을 내민다면 언젠가 나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 그 도움의 손은 나에게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내가 다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돕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돕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과 같다면 분명 나도 도움을 받을 때가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돕고 살라고 분명하게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지어 추수할 때가 되면 반드시 밭모퉁이까지 다 베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추수하가다 이삭이 떨어졌으면 그 이삭을 주인이 주어가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레위기 23:22) 포도원 농사를 지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 가서도 안 되고 떨어진 열매를 주어가서도 안 됩니다. 그것 역시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의 몫이기 때문입니다.(레위기 19:10)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절은 ‘거류민’입니다. 거류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땅에 와 있는 외국인 나그네를 가리킵니다. 즉 우리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비록 내 민족 내 백성은 아닐지라도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우리가 관심을 갖고 도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율법의 사랑입니다. 나와 관계가 있고, 내가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 본능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인간적 본능에 기초한 사람에 머물지 말고, 본능을 초월한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인간이 다 인간다움을 누리며 살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 시대에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그런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처럼 모든 인간이 인간다움을 누리며 사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내가 속한 교회의 영향력이 ‘모든 인간’에까지 미치진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기도해야 하고, 내 삶의 주변에 그런 작은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를 위해서 많은 섬김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깊이 있게 물어야 합니다. 교회가 행하는 사회복지나 섬김이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이루기 위함인가? 아니면 그것을 매개로 전도한다는 명목 아래 교인의 수를 늘려 부흥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기고 있다면 그것은 전도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함이 목적이어야 합니다. 전도를 목적으로 지역을 섬기고 어려운 사람을 섬기다 보니 섬김의 본질이 왜곡되고, 섬김을 받는 사람의 기분이 상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교회가 지역과 사회를 섬기고 있는데도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여 섬김을 섬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섬김에도 본질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좀 더 크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가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