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이 없는 신앙

19세기 초 독일의 유명한 조각가 가운데 데네커(Johann Heinlich Dennecker, 1758~1841)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천재들 못지않은 조각가로 인정을 받았던 그는 특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러 신상들을 정교하게 조각했습니다. 그는 세심한 특징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여러 번 신화를 읽을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점점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생긴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그리스도’를 조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작업을 시작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잘 알고 있던 그리스 신화와는 달리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신화에 나오는 신상들을 조각할 때처럼 표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직접 복음서를 읽고 예수님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알아가면서 그는 신앙을 갖게 되었고, 신앙이 성장할수록 그의 그리스도상도 조금씩 완성되었습니다. 마침내 거의 완벽에 가까운 그리스도 상을 조각해 낸 데네커에게 경탄한 나폴레옹은 ‘자신이 좋아하는 비너스 조각상을 만들어주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데넥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며 황제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황제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조각한 이 손으로 더 이상 다른 신은 조각할 수 없습니다.˝

세상과 타협이 없는 아름다운 신앙의 선배들이 가졌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 가운데는 그렇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음으로 믿음의 절개를 굳게 지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초대교회 때에 유대인과 로마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의 선배들은 생명으로 그 신앙을 지켰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대로 그들은 고문을 받을 때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았고, 조롱과 채찍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기꺼이 감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돌로 침을 당해 죽었고, 톱으로 킴을 당해 죽었고, 칼로 목베임을 당해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신앙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타협하려 했다면 그들은 그렇게 고난과 박해와 죽임을 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타협이 없는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려 한다면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어쩌면 참 미련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왜 그리 융통성이 없느냐고 조롱당할지도 모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조차 왜 그렇게 어리석게 세상을 살려 하느냐고 핀잔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의 삶이 그만큼 세상과 타협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타협하면서도 그것이 전혀 비신앙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한 발은 세상에, 그리고 나머지 한 발은 신앙에 들여놓고서 적당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거룩한 절기 대림절입니다. 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동시에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 경건하고 숙연한 절기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께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사는 우리를 향해 무어라 말씀하실지 말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께서 심판의 주님으로 오셔서 우리를 심판대 앞에 세워놓고 우리에게 무어라 질문하실지 말입니다. ˝황제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조각한 이 손으로 더 이상 다른 신은 조각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던 데네커에게 어떤 불이익이 주어졌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황제의 명령에 거부했다는 이유로 어떤 벌을 받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황제의 명령을 따랐을 때 그에게는 어쩌면 더 많은 부귀영화가 주어졌을 것입니다. 역사에 더 많은 예술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황제의 명령을 거부함으로서 그는 우리 주님의 얼굴에 미소를 드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과 타협하기를 거부했던 그를 우리 주님께서는 자랑스럽게 바라보셨을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우리가 자랑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하고 박수 받는 삶은 아닐지라도, 우리 주님께서 칭찬해 주시고 주님께서 고개를 끄덕여주시는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때론 주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손해를 보겠다는 결단, 때로는 불이익을 당할지라도 믿음의 올바른 길을 끝까지 가겠다는 결단, 세상이 주는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더라도 십자가의 길을 가겠다는 결단, 이 결단이 우리로 하여금 타협이 없는 삶을 살 수 있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단할 수 있는 힘은 우리 자신의 의지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가슴에 가득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날마다 넘쳐나야 합니다.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이라는 찬송을 부릅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밤을 노래하는 찬송이지만, 오늘 우리 시대의 암울함을 노래하는 것처럼 들려지는 찬송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주변이 너무나도 고요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의 기쁜 소식이 울려 퍼지지 않고 그저 고요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져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3만불을 이루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누군가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갈수록 깊어지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에도 어두움이 드리워지는 ‘어두움 밤’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라도 우리의 마음에는 ‘거룩한 밤’이어야 합니다. 주변 환경으로는 고요하고 어두운 밤일지라도, 그럴 때일수록 우리의 마음에는 아기 예수님을 모실 구유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사람으로 말입니다. 거룩한 사람, 거룩함을 사는 사람은 결코 세상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타협은 곧 세상의 것을 흡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을 기다리며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룩한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