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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10-14 16:37

리셋 신드롬(reset syndrome)

글쓴이 : 안효관

우리나라를 흔히 IT강국이라고 말합니다.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이 거의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개발되거나 업데이트된 새로운 버전이 나오면 가장 먼저 우리나라에서 시험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제 컴퓨터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만큼 컴퓨터는 우리의 삶에 절대적인 한 부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컴퓨터가 우리의 삶에 중심을 차지하면서 편리한 점도 많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 또한 적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리셋 증후군’입니다. 리셋 증후군이란 컴퓨터에 장애가 발생했을 때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살펴보지 않고 리셋(재부팅) 단추를 눌러 시스템을 처음으로 돌려버리는 것처럼, 일터나 인간관계에서 무언가 잘못 되었을 때 그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아예 처음으로 되돌아가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특히 컴퓨터 게임으로 인해 더욱 심각해집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작은 실수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면 게임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해버립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실수도 하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야 다시는 똑같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반성이 없다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질 줄도 알아야 합니다.

리셋 증후군은 그런 반성이나 책임지려는 마음이 없이 마치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일로 인해서 생겨난 피해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삶에 압박해 오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대처하는 인내심을 갖지 못합니다. 청소년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유래합니다. 최근 알려진 교육과학기술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3년과 2007년을 비교했을 때 4년 사이에 초·중·고교생의 청소년 자살률이 42%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복지부에 따르면 2006년에 비해 2007년에 자살과 관련되어 상담을 한 청소년의 수가 4배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자살하면 힘든 자신의 모든 삶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리셋 증후군)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혹 신앙생활에서까지 리셋 증후군이 있지 않나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죄를 지었든지 하나님 앞에 가서 회개하면 모든 죄가 용서받는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용서받는다는 것이 곧 모든 책임을 면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죄는 용서받되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죄에 대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모든 것이 백지장처럼 깨끗한 상태가 된다는 잘못된 생각이 곧 리셋 증후군입니다. 그런 생각이 책임감 없는 신앙을 만듭니다. 도둑질한 후에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빌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도둑질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도둑질함으로서 얻어지는 부당한 이익을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성물이나 이웃에게 물질적으로 손해를 입혔고, 그것이 잘못임을 깨달았을 때에는 20%(1/5)를 더하여 갚으라고 말씀합니다.

예를 들어 이웃에게 1만원어치 손해를 입혔고,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나는 하나님께 속건제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이웃에게 1만 2천원을 갚아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죄가 용서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만큼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짐으로써 또다시 우리의 마음에 찾아드는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기도(속건제)를 드림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면 우리는 똑같은 범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같은 죄를 다시 짓고서도,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신앙인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일부 사회적 지도층에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축복의 자리에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이 요구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요구하시고, 이 시대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기대합니다. 우리에게는 그 요구와 기대에 부응된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데 방해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리셋 증후군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더욱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기 전에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작은 삶 속에서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책임 있는 삶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더욱 성숙해집니다. 그리고 책임 있는 우리의 삶과 교회의 역할을 통해서 한국 교회는 성장을 회복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바르게 인도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