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과 꼬리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이 급하여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요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리려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를 써 봐도 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당황하였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안전띠를 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전띠를 맨 채 내리려고 기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택시 기사가 이렇게 한 마디 했답니다. “아주머니, 차는 놔두고 가셔도 돼요.”

택시 기사의 재치 있는 말 한 마디이지만 참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들었던 난센스 퀴즈가 생각납니다. ‘돼지가 꼬리를 흔드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정답은 ‘꼬리가 돼지를 흔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시대에는 난센스와 같은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돼지꼬리가 돼지몸통을 흔들지 못하기 때문에 돼지가 꼬리를 흔든다는데, 오늘 우리 시대에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엇인 중요한지, 무엇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이지를 놓쳐버리고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움켜쥐고서 그것을 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온 국민들은 남한과 북한의 화해 분위기 속에서 평화정착을 위해서 기도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 이념 성향과 상관없이 바라는 바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정치적인 작은 이득 때문에 북한의 핵폐기와 평화정착을 오도하거나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음에 안타깝습니다. 물론 정당의 목적이 ‘정권을 획득하는 것’일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나 국민을 위한 정권획득이라는 대전제가 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역사 앞에 큰 과오를 범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 것입니다. 어떤 집단이나 개인의 정치적 야욕을 이루기 위한 작은 이득이 휘둘리는 목적이라면 언젠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지난날 우리나라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너무나도 작은 이익을 위해서 국민이라는 이름을 들먹거리고, 자기들의 작은 이득을 얻기 위해서 나라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건 비단 정치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때로 교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가 가장 큰 가치로 추구해야 할 것은 분명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서 교회는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교회의 모습은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고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교회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비판을 넘어 비난의 소리를 끊임없이 듣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그 사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무게 중심이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온데간데없고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앞세우는 일들이 너무 많이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장로교회에서 가장 큰 교회라고 하는 서울의 한 교회가 세습을 강행한 이유도 결국 ‘하나님의 나라 구현’이라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잃어버리고 교회의 안위와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다면, 그리고 교회의 머리는 인간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교회를 온전히 주님의 손에 맡겨드려야 합니다. 담임목사라는 리더십의 자리가 바뀌었다고 해서 교회가 흔들리고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미리 예단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설혹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개혁되지 못한 채 전임목사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위임되었기 때문에 찾아오는 현상일 뿐입니다. 담임목사의 리더십 자리가 바뀜으로 인해 찾아오는 위기는 교회를 더 교회답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두려워서 아들에게 세습해야만 교회가 안정된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 인간임을 스스로 선언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분명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한 존재입니다. 이 가장 큰 가치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구성원 개인적인 욕망이나 목사의 사욕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가치를 뒤흔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돼지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을 갖고 사는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불러주신 이유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믿음의 가치를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신앙인이 신앙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답게 산다는 것은 곧 우리의 생각과 판단의 가치가 ‘신앙’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으로 판단하고 신앙으로 생각하여 신앙적 결단을 가지고 사는 것이 신앙이고, 그렇게 살 때에만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반성해야 합니다. 나의 작은 성공을 위해서 신앙을 도구화하는 것이나, 나의 작은 이득에 걸린 문제 앞에서 신앙인임을 포기하는 것은 신앙의 가치에서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기 위한 도구이지 나의 유익을 위한 도구가 결코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놓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길입니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화한다 하더라도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 신앙의 가치입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복음이 입는 옷은 분명 다릅니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은 어느 시대에나 동일합니다.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서 복음의 본질까지 변질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난센스 중에 난센스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절대 진리’를 거부하고 ‘보편적 진리’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을지라도 교회만은 복음의 절대진리를 꾸준히 지키며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회는 ‘돼지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거짓된 가치를 분명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꼬리’인 인간적 욕망이 ‘몸통’인 하나님의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