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는 커야 하는가?

어느 스승이 제자들과 함께 강에 목욕을 하러 갔습니다. 일행이 강으로 내려가는데, 강둑에 있던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여자가 목욕을 하다가 목걸이를 분실했는데, 남자가 이를 심하게 질책하자 언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스승이 걸음을 멈추고 제자들을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화가 나면 왜 소리를 지르는지 아는가?” 제자들은 여러 가지 대답을 합니다. “평정심을 잃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닐까요?” “분노에 사로잡혀 이성이 마비되기 때문 아닐까요?” 스승은 다시 상황을 일깨워줍니다. “상대방이 바로 앞에 있는데 굳이 소리를 크게 질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큰 소리로 말해야만 더 잘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말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 있지 않는가?”하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스승은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사람들은 화가 나면 서로의 가슴이 멀어졌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 거리만큼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소리를 질러야만 멀어진 상대방에게 자기 말이 가닿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화가 많이 날수록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소리를 지를수록 상대방은 더 화가 나고, 그럴수록 둘의 가슴은 더 멀어진다. 그래서 갈수록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면 두 사람의 가슴은 아주 멀어져 마침내 서로에게 죽은 가슴이 된다. 죽은 가슴에겐 아무리 소리를 쳐도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더 큰소리로 말하게 되는 것이다.”

류시화 시인은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나오는, 그의 영적 스승 메허 바바가 들려주었다는 우화입니다. ‘화가 나면 서로의 가슴이 멀어져 작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말에 깊이 공감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작은 소리로 부드럽게 속삭입니다. 그래도 자기의 마음이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전달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심지어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이 통합니다. 사랑하면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화가 나면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마음을 닫으면 상대방이 굉장히 멀게 느껴집니다. 그러면 언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교통사고가 나면 먼저 큰소리를 쳐야 주도권을 잡는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져보기도 전에 말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회사에서나 공적 기관에서도 대형집회를 열고 목소리를 높여야 자기들의 주장이 관철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서로가 가슴을 열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거나 존중해줄 마음이 없어, 서로의 가슴이 멀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목소리를 높여야만 그 소리를 듣는 것일까요? 우리가 경험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다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귀를 닫아버립니다. 그 소리를 내가 들어야 할 말로 듣지 않고, 소음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서로의 가슴이 가까워지는 관계였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모든 상황이 조용조용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게 긴급한 문제가 발생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때에는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SOS를 보내야 할 때는 귓속말을 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한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비단 사회적인 문제에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생각해 보십시다. 크게 소리를 내어 기도해야 할 때도 분명 있습니다. 다급하게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할 때, 내 마음이 답답해질 때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듯 통성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우리를 위해 늘 당신의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 기도할 때 늘 소리를 높여 기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곁에 가까이 다가와 나를 품어 주시는 주님을 느끼며 기도할 때에는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됩니다. 조용히 속삭이듯이 기도를 해도 되고, 주님 품 안에 안겨 있는 그 느낌을 그대로 느끼며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럴 때 더 깊은 주님과의 교제와 교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목소리를 높여야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게 응답하신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하고 있다면 그건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요? 목소리의 크기는 가슴과 가슴 사이의 거리와 비례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바람 가운데도, 지축을 흔드는 지진 가운데도,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 가운데도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세미한 소리 가운데 엘리야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엘리야와 가까이 계셨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죽음의 위협 앞에 답답하고 절망적이었지만,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미한 음성 가운데 엘리야에게 ‘내가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가까이 계십니다. 내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실 정도로, 나의 묵상에도 열납하시고 응답하실 정도로.

교회 안에서나 사회 구석구석에서 너무 목소리가 커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