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탓입니까?

돈 쓰기를 좋아하고 일하기를 싫어하는 게으름뱅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헛되이 써버리고, 겨우 양복 한 벌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한 어느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게으름뱅이는 제비 한 마리가 날아드는 것을 보자, 벌써 여름이 온 줄 알고 마지막 남은 양복 한 벌마저 팔아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은 서리가 내리고 날씨도 몹시 추웠습니다. 게으름뱅이는 추위에 몸을 덜덜 떨면서 얼어 죽은 제비의 시체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제비야! 네가 좀 더 따뜻해진 다음에 날아왔으면 내가 이처럼 춥고 비참한 꼴을 당하지 않았을 게 아니냐?”

이것은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때로 우화 속에 나오는 게으름뱅이가 되곤 합니다. 내 스스로 내 삶을 힘들고 어렵게 만들어놓고는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 때문에, 환경이나 상황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모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기도 합니다.

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마지막 양복을 팔아버리고 추위에 떨어야 했던 것은 도대체 누구의 책임입니까? 며칠 일찍 찾아온 제비 때문입니까? 아니면 제비를 보고 양복을 팔아버린 자신 때문입니까?

이제 우리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그리고 나 자신과 양심 앞에서, 역사 앞에서 우리는 좀 더 솔직해져야 합니다. 죄로 오염된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책임 전가’라는 무서운 괴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괴물은 내가 져야할 그 책임을 언제나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고 합니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모든 비리의 책임을 너에게 돌리고 있고,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조차도 남의 탓으로 전가하고 맙니다. 대학 등록금이 OECD 회원국 가운데 3번째로 높다는 통계가 나오고, 여기저기서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바쁩니다. 지난 10년 동안 정권을 잡았던 지금의 야당 탓이라는 여당과,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과 야당이 책임져야 한다는 야당 모두 스스로 책임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비단 오늘 우리 시대 정치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의 작은 삶에서조차 우리는 스스로 책임지려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것 역시 아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일까요? 아담은 ‘왜 선악과를 따 먹었느냐?’는 하나님의 물으심에 ‘하와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하와에게 ‘너는 왜 그렇게 하였느냐?’고 물으시자, 하와는 ‘뱀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고 다른 대상에게 책임을 떠넘길 뿐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가 떠넘긴 그 모든 죄의 짐까지 다 짊어지시고 죽음의 자리 골고다까지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깨에 지워준 바로 그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오늘 내 삶 깊숙이에 터 잡고 있는 사업의 문제, 가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이 모든 문제가 누구의 탓입니까? 누구를 탓해야 합니까? 주님의 제자로 사는 우리는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짐까지도 져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로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라디아서 6:2) 여기서 말하는 짐은 무거운 짐입니다. 누구나 망설임 없이 질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그 짐을 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망설여집니다. 힘이 듭니다. 그럼에도 그 짐을 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사랑의 법입니다. 그 사랑은 말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짐을 지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서로의 짐을 지면 그게 아무리 무거운 것이라 하더라도 감당하지 못할만큼 무겁지는 않습니다. 나 홀로지려 하면 무겁고 짐을 지기가 두렵습니다. 더구나 누군가가 떠넘기는 짐을 져야한다면 더욱 무거울 뿐만 아니라 화가 나서 도저히 짊어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짐을 나눠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살만한 세상, 행복하고 기쁨을 누리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짐을 나눠지기 앞서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각각 자기의 짐을 져야 한다”(갈라디아서 6:5)는 말씀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고 짊어질 수 있는 것은 내가 져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짊은 나눠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인생의 무거운 짐 때문에 지쳐 쓰러지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도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내 탓이오’하는 탄식과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고, 내 짐을 질뿐만 아니라 서로의 짐을 나눠지는 아름다운 행동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멋있게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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