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인간?

지난달인 9월 25일 한 중국집 배달원이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습니다. 생업을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가던 중 사고를 당한 지 3일만입니다. 대통령이 페이스북을 통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대통령의 영부인이 직접 그의 빈소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유명 정치인들의 조문행렬도 이어졌습니다. 또한 그의 죽음은 매스컴에서도 관심을 갖고 보도했고, 그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올해 52세인 ‘김우수’라는 분입니다.

중국집 배달원의 죽음이 왜 그렇게 세간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세상을 숙연하게 만들었을까요? 그는 7살 때에 고아원에 버려졌고 외롭게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12살 때에 보육원에서 탈출하여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의 생활 역시 녹녹하지 않았습니다. 시장바닥을 떠돌며 노숙해야 했고, 생활이 너무너무 힘들어지자 구걸하며 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순간의 실수로 교도소에서 1년 6개월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교도소에서 나온 후 그는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집 배달원 월급으로 70만원을 받았지만 그것 중 일부를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데 기쁘게 내놓았습니다. 가족도 없이 창문도 없는 월세 25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살면서도 아이들을 돕는 일에는 인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삶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만 같은 각박하고도 고달픈 현실을 살면서도 어려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희생하는 마음을 가졌던 그는 그 어떤 부자들보다도 행복하고 값진 삶을 살았습니다.

요즘 미국 뉴욕 월가(Wall Street)의 시위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뉴욕의 월가는 미국의 주요 금융기관들이 위치한 뉴욕 시 맨해튼 구의 남부 구역에 있는 거리를 말합니다. 미국 경제의 축을 이루고 있는 곳을 지칭하기도 하고,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 월가에서 젊은이들이 시위를 벌인 이유는 최근에 겪는 실업난 등 금융 침체와 위기가 월가의 탐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서 오는 분노 때문입니다.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계속된 금융위기로 수없이 많은 영세사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아야 했고, 수많은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실업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금융권은 천문학적인 국가지원을 받으면서 부실자산을 처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고, 고액의 보너스 파티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정서를 반영하듯 워런 버핏(Warren Edward Buffett)을 비롯한 소수의 부자들은 세금을 더 내겠다고 나섰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메아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위에는 많은 부자들이 그들의 시위에 공감하며 동조했고,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학자들까지 합세하면서 시위대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미국의 경제가 침체되면서 전 세계에 경제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자국민까지 어려움을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파장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인간의 탐욕이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되었든 나만 살면 되고, 다른 사람이 굶어죽든 나만 배부르면 된다는 인간의 탐욕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우리 시대 최대의 적입니다. 힘들 때 고통을 조금씩 나눠지고, 남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멋진 신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우수 씨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에 진한 감동을 남겨줍니다. 자신을 위해서 쓰기에도 부족한 월급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깊은 사랑의 마음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희생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움켜쥔 손을 펼 수 없고, 이웃을 향해 닫혀진 마음을 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가진 것이 적다 할지라도 탐욕이 아닌 사랑의 마음을 품으면 나눌 수 있는 것이 있고,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양극화 현상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대기업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은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고액의 연봉을 받는 사람의 수입은 점점 늘어나지만 신입사원을 비롯한 월급쟁이들의 월급은 제자리에 머물거나 오히려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만을 그 원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개운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들을 조금만 더 배려한다면 지금의 위기는 결코 위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그 위기가 분노로 분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 귀감이 됩니다. 결혼 한 후 그녀는 잡화점을 열게 되었는데, 친절하고 성실한 그녀의 가게는 날로 번창하게 되자 그 주변에 있는 가게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녀는 남편의 권유로 가게의 규모를 축소하고 상품의 일부를 일부러 진열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가게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남은 여유로운 시간에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 때 쓴 글이 『빙점』이라는 아주 유명한 소설입니다. 그녀는 그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하늘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야 한다는 권리를 부여했다네.”

우리의 마음에서 탐욕을 조금만 걷어낸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99마리의 양을 가진 자가 남의 양 한 마리를 빼앗는 사회는 죄악된 사회입니다. 한 마리의 양에 목숨을 거는 가난한 이를 위해서 99마리의 내 것 중 하나쯤 내어줄 수 있다면, 아니 내가 가진 것이 비록 한 마리의 양에 불과할지라도 양털 한 움큼이라도 나눌 수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따뜻해질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 움켜쥔 내 손을 내밀지 못하는 ‘고장난 인간’이 많은 이 시대에 사랑을 배달한 김우수 씨, 넉넉하기 때문에 나눈 것이 아니라 나누기 때문에 넉넉한 삶을 살았던 그분의 사랑을 우리가 조금이나마 배웠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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