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세월호

요즘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고 계십니까?

권총을 든 은행 강도 패거리가 복면을 하고 은행에 들어왔습니다. 은행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혼비백산하여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데, 강도 중 한 명이 지점잠에게 다가가 권총으로 그를 위협했습니다. 겁에 질린 지점장은 그 강도가 시키는대로 금고문을 열어주었고, 강도들은 돈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강도들이 도망친 후에 도착한 경찰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강도를 보았던 지점장에게 범인들의 인상착의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강도에게 금고문까지 열어주었던 지점장은 강도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강도의 키가 어느 정도 되는지, 얼굴의 생김새가 어떤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등에 대해서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점장은 강도가 자신을 향해 겨누고 있었던 총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총구멍의 크기가 얼마인지, 총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는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세세한 것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오갈 정도로 중차대한 일을 당한 지점장은 누구보다도 강도의 인상착의나 그의 행동 등에 대해서 집중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향해 겨누고 있는 그 총에 대해서만 과도하게 집중한 나머지 그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어떤 단서도 기억해내지 못했습니다.

이런 것을 ‘무기중심효과’(Weapon Focus Effect)라고 부릅니다. 위기 상황에서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얻어내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이 무능력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특정 영역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자기가 듣고 싶고 자신이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서만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건국대학교 정신의학과 하지현 교수가 쓴 『소통의 기술』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현상은 비단 강도를 만나는 것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해도 각자 보고 느끼는 것이 다릅니다. 관심사가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낯선 지역에 가면 목사인 제 눈에 가장 많이 띠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몇 개나 있나? 어디에 교회가 있나? 왜 이런 곳에 교회를 세웠을까?’ 하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돕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처럼 이발사는 사람을 볼 때 머리 스타일을 먼저 보고, 신발 가게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를 먼저 봅니다. 자신의 관심사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정보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으면 그것은 중요하지 않게 여겨져 머릿속 휴지통에 버려지고 맙니다.

‘지금 내가 무엇이 관심을 많이 갖고 사느냐’ 하는 것은 내 삶의 전체 영역을 반영한 것이며, 동시에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가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무엇이 내 마음에 가장 많이 와 닿는지,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는지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특별히 오랫동안 내가 관심을 갖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내일을 방향 짓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우리는 지난 4월 16일 끔찍한 소식을 접해야 했습니다. 온 국민이 안타까워했고, 분노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건에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사실들도 알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생소했던 에어포켓(air pocket)이라는 말도 알게 되었고, 평소 관심조차 없었던 ‘소조기와 대조기’라는 말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5개월 반이 넘으면서 세월호가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세월호 침몰 당시에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소리치던 사람들이 이제는 ‘세월호 피로’에 ‘세월호 알레르기’ 반응까지 일으키고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사람들은 그 아픔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데, 진상규명을 해 달라는 이야기조차 듣기 싫어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종북주의자들로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세월호 사건을 잊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세월호을 끌어안고 살 것이냐 하는 질문에 대답할 말이 적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상규명이 되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면 세월호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일이 언젠가 또다시 우리에게 벌어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매듭짓기가 명확하게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보다도 십자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잊는다 하더라도 십자가 사건만은 매일의 삶속에서, 그리고 매일의 우리 생각과 기억 속애서 되새짐질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을 만남으로 바른 신앙을 유지하며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곁으로 다가오시기도 하시고, 우리가 주님 곁으로 한 걸음씩 다다가기를 기다리시기도 합니다.

그 십자가의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시는 자리는 성공과 승리의 자리가 아닙니다. 내 이웃의 형제의 아픈 마음속에서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시고, 소외되고 외톨이가 되어 홀로 울고 있는 사람들의 어두운 곳에서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가진 손길로 찾아가는 것, 목마른 사람에게 생수 한 컵 들고 찾아가는 것, 나그네 된 사람에게 베푼 작은 친절 하나, 헐벗은 사람에게 겉옷가지 하나 덮어주는 관심, 병들고 옥에 갇힌 사람을 한번쯤 찾아가는 따뜻한 마음, 그것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곳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오늘 우리 사회에서 아쉬운 것 가운데 하나는 보듬어야 할 약자를 강자처럼 여기는 풍토입니다. 자식을 잃고 찢어질듯 아파하는 마음으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강자처럼 여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의 기도에서조차 세월호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지 않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의 관심이 필요한 구석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가 끝까지 관심을 가질 때 그곳에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