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여유를 가집시다.

한 때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말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느림’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이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고, 우리 주변에 느림을 누리며 즐기기 위한 문화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느림’을 즐기며 힐링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젠 우리에게도 ‘슬로 시티’(slow city)라는 말이 결코 낯설지 않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아니라 빠름과 느림, 농촌과 도시, 로컬과 글로벌,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의 조화로운 삶의 리듬을 지키는 것으로 달콤한 인생과 정보 시대의 역동성을 조화시키고 중도를 찾기 위한 처방이 이제는 우리의 삶과 마음을 힐리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제주도의 둘레길, 청산도의 슬로길, 변산의 마실길, 영덕의 블루로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느림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이 속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속도(speed)가 미덕이 되어버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건 스포츠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이 기록경기에 스포츠야 ‘얼마나 빨리 하느냐?’ 하는 것이 기준이 될 수 있지만, 그 외에도 오늘 우리 시대는 속도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빠른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또한 빠른 것이 언제나 옳고 칭찬받아야 할 일도 아닙니다. 마이크 머독(Mike Murdock)은 그의 책 『예수의 리더십 57가지 비밀』에서 예수님의 리더십 가운데 하나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고 설파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는 예수님께 전갈을 보내 예수님께서 빨리 와 주시기를 바랬지만,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그 계셨던 곳에 이틀이나 더 머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틀을 더 머무신 것은 그곳에서 하셔야 할 일이 분명 있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급한 요청에도 예수님께서는 서두르지 않으셨고, 경솔하게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인내는 속임수를 탄로시키는 무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대로 ‘가장 중대한 실수는 조급함 때문에 일어난다.’는 말도 있습니다. 서두르면서 참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법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보는 대로, 그리고 내가 느끼는 대로 쉽게 말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수로 연결될 때가 많습니다. 여기에도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입장이 이해가 될 때까지 기다려 줄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서두르다가는 결국 서로가 상처를 입게 되고, 좋았던 관계가 깨지는 결말을 맞게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 시대는 너무 쉽게 말해버리는 문화로 인해서 깊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서 말하는 ‘조심스러움’이 필요한데, 그런 조심스러움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사이버라는 가상공간에서 나눠지는 이야기들이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충분한 대화나 상황인식이 어려운 사이버에서는 짧은 말 속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건 비단 사이버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요즘 가장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국사 국정교과서’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는 정부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다양성을 근간으로 돌아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문화를 외면한 채 ‘국론분열을 막고 하나가 되게 하겠다’는 허영찬 목표를 내세워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충분한 설명이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많은 역사 교수들과 학교 현장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들까지 반대하고, 집필을 거부하는 있는데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더구나 짧은 시간에 교과서를 만들어내겠다고 하니 더욱 안타까울 뿐입니다.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워 추진하는 국정화가 오히려 국론을 분열시키는 중대한 사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좀 더 여우를 가지고 좀 더 여유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한 박자 늦게 출발한다고 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결코 헛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박노해 시인이 쓴 ‘직선이 없다’라는 제목의 시에서 “그렇게 빨리 어디로 가는가 / 그렇게 앞서 어디로 가는가 / 직선으로 달려가지 마라 / 우리 인생에는 직선이 없다.”고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빨리 가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 잡혀 살곤 합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현대의 문화에 발맞추어 가려면 빨리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빨리 가려 하기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빨리 가려 하기 때문에 정작 보아야 할 중요한 것들을 보지 못한 채 흘려보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빨리 가려하지만, 우리 앞에 놓여진 성공의 기회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빨리 가서 행복을 쟁취하려 하지만, 우리의 삶 주변 구석구석에 놓여 있는 작은 행복들을 보지 못하고 달려감의 불행만을 느낄 뿐입니다.

지금 보기에는 조금 늦어지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갈 때 우리는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있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 빨리 갈 수 있는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멀리 돌아서 가야 하는 ’홍해 광야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출애굽기 13:17) 블레셋 길로 가면 두 주면 가나안 땅에 갈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이나 걸쳐서 가는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돌아서 갔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돌아서 갔기 때문에 율법을 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돌아서 갔기 때문에 요단 동편 땅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돌아서 간다고 불평하지 말고, 돌아서 가더라도 바른 길을 선택하십시다. 그 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복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복을 하나하나 보며, 그 복을 얻어 그것을 누리며 사십시다. 빠른 길보다는 바른 길로 돌아서 가는 여유를 즐기며 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