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블랙리스트

요즘 우리나라 문화계에서는 블랙리스트(blacklist)가 뜨거운 이슈가 되었습니다. 청와대가 지난해 문화예술계에서 검열해야 할 블랙리스트를 작정했다는 주장과 자료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이나 ‘세월호 시국선언’에 동참했던 사람들과 ‘문재인, 박원순 등 야권정치지도자 지지자’들 약 1만 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공연이 거부되는 등의 불이익을 받았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그런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경악할 일이지만, 문학이나 예술의 질에 의해서 판단받지 못하고 불이익을 당한 일이 있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정부의 부당성에 항의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는 얼마 전 광화문광장에서 규탄집회 및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항운동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청와대 블랙리스트에 오르도록 노력하겠다.’ ‘영광입니다. 각하! 일개 요리사를 이런 데 올려주시고.’(요리연구가 박찬일)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을 축하합니다.’ 심지어는 이런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이 과거 독일 나찌정권의 탄압에 비유하는 글도 있었습니다. 시인 장석주 씨는 ‘히틀러 블랙리스트에 빠진 작가들이 오히려 블랙리스트에 제 이름이 없는 것에 분노하고 항의했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도 조만간 그런 황당한 상태가 일어날 듯싶다.’고 말했습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을 축하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라면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의롭지 못한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 것입니다. 여권 내에서조차도 ‘이건 나라도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비극이 어디까지 왔는지 가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국가나 정부 그리고 사회가 부패할수록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가 그만큼 부패하고 정의가 살아있지 못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가진 희망은, 그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통해서 사회가 그나마 조금씩 나아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언급된 대표적인 블랙리스트는 아마도 엘리야일 것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가장 타락하던 시긴인 아합왕 때 예언자였던 엘리야는 왕비인 이세벨에게 블랙리스트 명단 첫줄에 그 이름이 올랐던 사람입니다.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을 처단한 후에 왕이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선포합니다.(열왕기상 19:2) 그래서 엘리야는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됩니다. 물론 그 전에도 엘리야는 아합 정권에서 이미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엘리야는 블랙리스트를 넘어서 현상수배자였습니다.(열왕기상 18:10) 엘리야뿐만 아니라 아모스 선지자나 예레미야 선지자도 모두 당시 정권에 의해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라고 외친 선지자들, 하나님을 떠나 정권의 야욕을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백성들을 억압하고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와 정의를 이루라고 외친 선지자들은 거의 모두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이나 정부가 바르게 서려 한 시대에는 그런 예언자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하지만, 부정을 일삼고 부패한 정권일수록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생명의 위험을 느껴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당시에 블랙리스트에 오른 분이었습니다. 당시 권력의 중심에 있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파견했습니다.(마가복음 7:1) 당시 예수님은 기득권층에 의해서 ‘체제를 부정하는 사람, 사회선동가, 반사회적-반체제적 의식화 교육의 주동자, 불온사상 유포자’로 낙인찍혀 제거 대상자(블랙리스트) 1호에 올라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회에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의 상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나라가 곧 멸망당할 것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종교개혁자들 역시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천년의 세월동안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던 로마카톨릭은 자신들의 체제와 신앙과 신학에 도전하는 종교개혁자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온갖 협박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블랙리스트에 오른 종교개혁자들을 통해서 왜곡된 복음이 진정한 복음으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거대한 권력(신앙권력)에 저항한 사람들을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릅니다.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은 ‘저항하다’(protestatio)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로 ‘저항하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저항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불의에 저항하고 부패에 저항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복음을 왜곡하는 세력에 대해서 저항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거짓에 저항하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블랙리스트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적당히 체제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신앙인의 본질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라면 저항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 비성경적이겠지만, 불의가 있는 구석에서는, 부패가 깊어지는 부분에서는, 평등이 깨어지는 모습에서는, 그리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부당함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프로테스탄트(저항하는 사람들)가 되어야 합니다.

저항은 우리보다 힘이 강한 것에 대처하는 진리의 몸부림입니다. 우리의 선포나 작은 행동이 권력 앞에서 비참함을 느낄 정도로 약할지라도 저항이라는 몸짓과 사고는 우리 사회에 희망이 될 것입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자랑스럽다.’는 예술인들의 선언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바른 신앙을 위해서 우리 역시 블랙리스트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교계에서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