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투스의 함정

지난 6월 문정인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년퇴임 고별강연에서 ‘박근혜 정부가 타키투스의 함정(Tacitus Trap)에 빠졌다.’고 진단했습니다. 문정인 교수는 외교 안보 및 국제정치학계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분이 말한 타키투스의 함정이라는 것은 ‘신뢰를 잃은 정부는 무슨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나쁘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한 로마의 최고지도자이자 집정관이었던 코넬리우스 타키투스(Cornelius Tacitus)의 경고입니다. ‘정부가 한 번 신뢰를 잃으면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타키투스의 경고처럼, 지금 우리나라의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했을 때 박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청와대가 여러 차례 해명을 했지만 그 해명이 명확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유언비어들이 나돌고 있습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세월호 참사가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에 출석해서 ‘그 시간에 대통령이 어디에 이었는지 나도 모른다.’고 대답을 하면서 대통령의 7시간이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어느 호텔에 있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더니, 최근 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면서 ‘최태민 사망 20주기’(2014년 4월 20일)를 맞아 청와대에서 천도제라는 굿판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최순실이 다니던 성형외과에서 피부과 시술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청와대는 그날 대통령이 관저집무실에서 정상적인 집무를 봤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상적인 집무를 봤다는 그 말을 고지 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청와대는 그 동안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그날 ‘외부인이나 병원 차량이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최근 밝혀진 것들에 의하면 머리를 손질하는 미용사가 청와대에 가서 1시간이 넘도록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몇 번에 걸친 대국민 담화문에서 자신이 밝힌 것조차 지키지 않고 말을 자꾸만 바꾸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다 보니 타키투스의 경고처럼 국민들은 정부나 청와대, 그리고 대통령의 말까지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6개월 전에 문정인 교수가 지적한 그대로 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배경에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감추기에만 급급하고 작은 사실이 드러나면 거짓말로 변명하려는 청와대의 태도가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유독 ‘7시간’ 이야기만 나오면 청와대는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막은 이유도 대통령의 7시간을 조사하려는 것 때문이라고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욱 부풀려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책임에 교회가 면죄부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아파하는 사람을 끌어안아야 하고, 어둠에 눌려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주어야 합니다. 그것과 아울러 교회는 힘 있는 사람들의 권력과 그들이 행하는 불의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외쳐야 합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외쳐야 하고, 죄를 죄라고 외쳐야 합니다. 교회는 제사장적인 사명과 동시에 선지자적인 사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정교분리라는 명목에 매몰되어 선지자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정부의 정책이나 잘못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들을 종북이나 좌파라는 말로 낙인찍어버리는 현 시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비판적이고 잘못을 지적하는 일에는 한 발 물러서 있었습니다. 정교분리라는 명목이 오히려 정교가 정치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권력의 애완견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오늘날의 한국 교회를 향해서 세상은 더 이상 교회에는 소망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특별히 냉철한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젊은이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제 교회가 타키투스의 함정에 빠져버리고 만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난 9월 이스라엘 성지순례 도중 예루살렘에 있는 야드 바셈(Yad Vashem)을 다녀왔습니다. 독일 나찌에 의해서 대량으로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 세운 홀로코스트 기념관입니다. 거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 나찌가 유대인들을 600만 명이나 학살한 배경에 기독교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거스틴을 포함해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그리고 나찌 독일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유대인들을 ‘돼지’로 표현하면서 죽어도 될 존재,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설교했습니다. 유대인들의 활동을 제한하며 게토(Ghetto)라 불리는 한정된 지역에서만 살게 만든 것도 유럽의 기독교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데올로기화 된 복음은 그런 유대인 멸시와 학살에 근거를 만들어준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안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먼저는 교회 자체이고, 그 다음은 혼란에 빠진 우리 사회입니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교회됨의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끌어안고 기도하고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제사장의 사명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불의를 보면서 사자처럼 울부짖고, 잘못된 권력과 그에 아부하는 자들을 향해서는 담대하게 심판을 선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외칠 수 있게 한국교회가 바르게 서야 합니다. 타키투스의 함정에 빠진 정부가 감추기에 급급하다가 사실이 드러나면 거짓말로 변명하는 그런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교회는 투명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진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타키투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신앙인들은 스스로 타키투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내 상황이 힘들어지고 불이익을 당한다 하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하고, 진리를 따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