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람 데오(하나님 앞에서)

‘쇼펜하우어 증후군’(Schopenhauer Complex)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흔히 ‘염세주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독일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에 매우 집착하여, 누군가를 만나면 ‘오늘 나를 만났으니 당신에게 몹시 영광스러운 날이라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정도로 자기애가 강한 사람입니다. 그는 헤겔(Hegel)이 생존해 있을 때에는 큰 빛을 보지 못하다가 말년에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는 자신에 대해서 쓴 모든 기사를 읽었고, 친구들에게 ‘자기를 논평한 인쇄물을 보면 우송료를 물테니 모두 보내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자기 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지나치게 집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명성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며 집착하는 경향을 ‘소펜하우어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쇼펜하우어가 얼마나 자신의 명성에 집착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가 있습니다. 그가 철학자로 활동을 시작할 때 그는 별로 알려지지 않는 무명의 사람이었고, 그랬기에 가난에 쪼들린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반면 헤겔은 베를린 대학에서 가장 잘 나가는 철학교수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에게 베를린 대학의 교수 자리를 부탁하여 교수직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보다 헤겔의 명성이 더 뛰어난 것을 견디지 못한 그는 헤겔과 같은 시간에 강의를 개설했습니다. 결과는 쇼펜하우어의 참패였습니다. 헤겔의 강의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린 반면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에는 강의가 불가능할 정도로 적은 인원만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 상한 쇼펜하우어는 교직을 그만두었고, 은둔생활을 하면서 연구와 집필에만 몰두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삽니다. 또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한다면 그에게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진단이 내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나치게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면 그는 자신의 의지나 판단력을 잃어버린 채 ‘시선의 노예’가 되어 주체성을 상실한 삶을 살게 됩니다.

신앙을 갖고 산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의식하며 산다는 뜻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존재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 선 존재(coram Deo)로 사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 Luther)는 그의 저서 여러 곳에서 우리 신앙인의 존재양식을 ‘'coram Deo'(하나님 앞에서)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깔뱅(J. Calvin) 역시 자신의 일생을 지배했던 중요한 삶의 좌우명 가운데 하나가 ’코람 데오‘(coram Deo)였다고 합니다.

이 코람 데오(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인의 가치와 신앙인의 삶의 방향성을 규정해 주는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코람 데오'의 정신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coram hominibus) 또는 ‘세상 앞에서’(coram mundo) 사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을 너무 많이 의식하고, 세상의 가치에 물들어 하나님의 가치를 상실한 채로 말입니다.

늘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던 사람의 한 예가 바로 요셉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고된 노예 생활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성공(?)의 자리에 앉았을 때, 주인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고 두 사람만 입을 다문다면 달콤한 제안을 받아들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요셉은 유혹을 거절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세기 39:9) 요셉은 분명히 하나님을 의식했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했습니다. 집안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보는 사람은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시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유혹하는 유혹의 손길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에게 때로는 큰 어려움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요셉처럼, 사람들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증언한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려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당신의 손으로 보호해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주어지는 작은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시선보다는 세상의 시선이나 사람들의 눈을 의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최종적으로 우리를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들을 평가하실 때 늘 하신 말씀이 “여호와 보시기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해야만 선한 왕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할 때에는 악한 왕입니다. 정치를 얼마나 잘했느냐? 얼마나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잘했느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신명기 6:22-23) 우리의 판단이나 사람들의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정직하고 선량한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코람 데오!’(하나님 앞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에 우리 신앙인들이 회복해야 할 신앙의 본질 가운데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