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토요일) 아침의 묵상 – 5.18을 기억하며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 있습니다. 1910년 8월 29일은 한일합병조약으로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던 날입니다. 1919년 3월 1일은 일본제국의 지배에 항거하여 우리나라가 자주독립국임은 선언하며, 국권을 되찾기 위해 봉기를 든 날입니다. 1945년 8월 15일은 그렇게도 애타게 갈망하던 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그리고 1980년 5월 18일은 군사반란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정권을 잡은 군부에 저항하고 우리나라에 민주화를 염원하는 광주시민들의 대대적인 항쟁이 일어났고, 이를 막기 위한 군부가 무차별적 학살이 자행된 날입니다.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벌써 4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때의 아픔과 그 정신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아타까움이 있습니다.

5.18을 기억하게 하는 김태준(1948-) 시인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는 5.18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시의 일부를 읽어드립니다.

“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 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을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 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서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 백 번을 죽고도

몇 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5.18 당시 전남고 독일어 교사였던 시인은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군인들의 집단 발포로 젊은이가 눈 앞에서 죽어가는 현장을 목격하고, 집 대문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임신 8개월의 동료교사 부인이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 사건을 접하면서 신문사의 요청으로 이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시의 일부가 발표되고 난 후 그는 보안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교사직에서 파면당하고 맙니다.

시인의 서술처럼 5.18로 인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은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임에 분명합니다. 불의에 온 몸으로 저항하고, 죄악과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 스러져 죽어가신 예수님의 마음이 오늘도 우리에게 살아 있기를 소망합니다. 5.18을 기억하는 날, “이것을 기억하라!”(눅 16:25)는 주님의 음성을 겸허히 들어야 합니다. 언젠가 먼 훗날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누군가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기억되기를 소망하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