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금요일) 아침의 묵상 – 은총에 눈을 뜨고 사는 것

구상(具常, 1919-2004) 시인이 쓴 ‘은총에 눈을 뜨니’라는 시를 읽어드립니다.

이제사 비로소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이 뜬다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 만상이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

그럴 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

나고 죽고 그 덧없음이

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제사 하늘이 새와 꽃만을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

눈물로써 감사하노라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저녁이면 해가 서쪽으로 지고

때를 넘기면 배가 고프기는

매한가지지만

출구가 없던 나의 의식 안에

무한한 시공이 열리며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소중스럽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

시인은 자신의 신앙을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을 뜬 것이라고 비유합니다. ‘두 이레 강아지’란 태어난 지 두 주밖에 되지 않는 강아지입니다. 아직도 시력이 온전하지 않아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합니다. 겨우 엄마의 품을 찾아 젖을 먹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꼭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두 이레 강아지만큼의 시력이기에 세상 만물을 밝히 보진 못하지만, 그런 눈으로 바라보아도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신령한 빛을 뿜어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만물이 그렇게 저마다의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고 있지만 영원에 비추어 보면 그것조차도 덧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두 이레 강아지만큼의 인식을 가지고 자신을 되돌아보니 창조주께서 자신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놀라운 은총을 깨닫고 눈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 놀라운 은총을 입어도,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프고, 고통의 순간에 서면 힘들기는 매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알고 나니 자신의 의식과 생각 속에 모든 것이 새롭고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고백합니다.

참으로 멋진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두 이레 강아지의 인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무한대이신 하나님을 유한한 우리 인간의 머리도 다 깨달을 수 없을뿐더러, 우리가 경험하고 깨닫는 것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경험하고 깨달은 그 작은 것만 가지고도 우리는 황홀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극히 작은 우리를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이기에, 그 은혜는 아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가슴에 다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의 눈에 비춰지는 모든 것은 새롭고 소중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 안에 산다고 해서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잠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해야 하고, 피곤함을 회복하기 위해서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는 우리의 환경에 지배되지 않는 뭔가 뿌듯함과 기쁨이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말씀한 것처럼, 내 처지와 상관없이 내면을 울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억누를 수 없는 기쁨, 감출 수 없는 감격, 막을 수 없는 감사,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거부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이 두 이레 강아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그런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은혜의 경험이든 작은 깨달음이든, 그것이 우리 안에 있기만 한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기를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십시다. 은총에 눈을 뜬 두 이레 강아지같은 우리까지도 하나님께서는 크신 사랑으로 품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