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목요일) 아침의 묵상 – 사랑에 빚진 자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은평평화공원에 군복차림을 한 외국인 동상이 하나 서 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9월 22일, 서울수복작전 때 녹번리 전투에서 29세로 전사한 미국 해군 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1922-1950)의 동상입니다. 그 동상에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는 요한복음의 말씀이 한글과 영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며 현재의 대전 목원대학교를 설립했던 윌리엄 얼 쇼(William Earl Shaw, 1891-1967)의 외아들로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평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웨슬리언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해군 소위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1947년 한국으로 돌아와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며 한국 해안경비대 창설에 기여했습니다. 제대 후에는 하버드대 박사 과정에서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국에 선교사로 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터지자 부인과 두 아들을 처가에 맡기고 한국을 돕기 위해 가겠다고 재입대했습니다. 이 때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공부만 하고 있겠는가? 공부는 전쟁이 끝난 뒤에 해도 늦지 않아!” 그리고 아버지께는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지금 한국인들은 전쟁 속에서 자유를 지키려고 피를 흘리고 있는데, 제가 흔쾌히 도우러 가지 않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린 후 선교사로 가려 한다면 그것은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를 ‘조국’이라고 여겼던 그는 대위의 계급장을 달고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고,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국 지리에 밝았기 때문에 UN군 최고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을 보좌하며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뒤, 해병대로 보직을 바꿔 서울 탈환에 나섰다가 인민군 매복조의 습격을 받아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9세였습니다.

그의 숭고한 사랑에 감명받은 미국 교인들은 아버지 윌리엄 얼 쇼가 공동창립한 현재 목원대에 ‘윌리엄 해밀턴 쇼 기념교회’를 건립했고, 2010년에 은평평화공원에 그의 동상이 건립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을 위해 평생 헌신한 아버지와 함께 서울 합정동 양화진의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인은 남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와 이화여대 교수와 세브란스 병원 자원봉사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를 지키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이런 희생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를 친구라고 생각했고, 친구인 우리나라를 조국이라 부르며 목숨을 내놓았던 그의 한국 사랑에 진한 감동을 느낍니다.

여러분, 윌리엄 해밀턴 쇼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그랬기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국에 선교사로 가려고 하버드대학교 박사과정에서 공부도 했고, 전쟁에 참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사랑에 빚진 자’(롬 13:8)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사랑의 빚진 자처럼 살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몸부림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되어 사랑에 빚진 자로 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더 아름답고 멋진 세상이 될 것입니다. 한민족의 혈통이 전혀 아님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되어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았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가 보여준 그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