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화요일) 아침의 묵상 – 순교자적 신앙으로

어제 아침에 말씀드린 것처럼,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 국가는 아르메니아입니다. 아르메니아가 기독교 국가가 된 데에는 그레고리 루사보리치(Gregory Lusavorich)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레고리가 12년 동안 깊은 동굴에서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목숨을 걸고 그에게 매일 떡을 가져다준 이름 없는 과부 때문이었습니다. 아르메니아에 그런 신실한 과부가 있었던 이유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최초의 기독교 여성 지도자 가운데 가야네(Gayane)라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로마에서 소규모 헌신된 여성들을 이끌던 지도자였는데,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가 기독교를 박해하자 로마를 탈출하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아르메니아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녀가 이끌던 여성 중에는 흐립시메(Hripsime)라는 왕족 출신의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절세의 미인이었습니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그녀를 왕비로 삼고자 했는데, 그녀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황제의 아내가 되기를 거절하고, 가야네가 이끄는 공동체에 합류하여 아르메니아까지 오게 됩니다. 황제는 흐립시메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아르메니아 왕인 티리다테스 3세에게 압력을 가해 흐립시메를 로마로 압송하라고 명합니다. 아르메니아 왕은 황제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흐립시메를 왕궁으로 데려오는데, 그녀를 본 왕이 그녀에게 한눈에 반해 황제의 명을 어기고 자신과 결혼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흐립시메가 이교 신앙의 추종자인 왕의 아내가 되기를 거절하자, 왕은 그녀가 속한 공동체의 지도자인 가야네를 왕궁으로 불러 흐립시메를 설득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가야네마저 왕의 요구를 거절하자, 왕은 그 두 여인을 왕궁에 구금합니다. 그러나 가야네와 흐립시메는 왕궁을 탈출하게 되고, 이에 분노한 왕은 가야네가 이끄는 공동체의 모든 여성들을 체포합니다. 그런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가야네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가진 믿음을 확고하게 지켜냅니다. 결국 왕은 가야네와 흐립시메를 비롯한 여인들에게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고, 마침내 여인들의 혀를 뽑고 눈을 찔러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자, 여인들의 목을 자르고 사지를 절단한 후 화형에 처하게 됩니다.

이처럼 아르메니아에는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되기 전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았던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그 때 순교를 당한 30여 명이 넘는 여인들 가운데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가야네와 흐립시메 두 사람뿐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순교정신이 살아 있어 그레고리에게 매일 떡을 제공해 주는 이름 모를 과부도 생겨난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순교의 역사입니다. 초대교회의 교부인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라고 말했습니다. 순교를 통해서 이 땅에서의 생명은 끝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 12:24)는 주님의 말씀처럼, 순교의 씨앗으로 뿌려진 생명은 수많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기독교 역사는 그렇게 부흥해왔고, 그 생명을 지탱해 왔습니다.

순교란 믿음을 흔들어 부인하게 만드는 압력 앞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신앙인으로 산다고 해서 우리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흔들려는 수없는 유혹들이 있습니다. 그런 유혹을 이겨나가는 것이 순교자적인 신앙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믿음이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그래서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온전히 살도록 순교자적 신앙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