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수요일) 아침의 묵상 – 은혜와 당연한 삶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때에 프랑스의 한 노인이 코로나에 감염되어 쓰러졌습니다. 90세가 넘은 노령인 탓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오랜기간 치료를 받아야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후유증 없이 완치되었습니다. 퇴원 수속을 밟고 병원비 청구서를 받은 노인은 의사 앞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입원해 있는 며칠간 산소치료만 받았을 뿐인데 ‘수천만 원’이라는 엄청난 치료비가 청구서에 적혀있었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노인을 위로하며 의사가 말했습니다. “비용이 너무 많다는 건 압니다만 무사히 퇴원하시는 걸 기쁘게 여기셔야 합니다.” 그러자 노인은 자신에게 돈은 충분히 있다며, 자신이 눈물 흘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우는 이유는 며칠간 단지 산소를 마신 금액이 수천만 원이라는 사실입니다. 90년 동안 매일 산소를 마시면서 저는 한 번도 하나님께 돈을 지불한 적이 없습니다. 그 큰 은혜를 지금껏 모르고 살아온 것이 너무 슬퍼서 우는 것입니다.” 노인의 고백을 들은 의사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양 가운데 ‘은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아이 시절과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오늘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우리의 삶을 가만히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혜’라는 말로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것들입니다.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주신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너무나도 많이 누리며 살고 있으면서도 그게 은혜라 생각하지 못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곤 합니다. 내가 노력했기에 지금의 자리에 앉을 수 있고, 내가 수고했기에 오늘의 열매가 내 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 많은 노력도 하고 수고도 했습니다. 때론 절제하기도 하고, 때론 힘든 것도 참아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런 노력과 수고도 모두 헛될 뿐임을 우리를 압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살아온 모든 삶의 자취가 하나님의 은혜로 점철된 것이라는 진솔한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누구보다도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고 힘을 썼던 이유는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수고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럴 때에는 우리의 삶에 감사도, 감격도 없습니다. 90세의 프랑스 노인이 90년 동안 살았던 삶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내 삶에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면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이고 감격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은혜임을 고백하는 삶이면 좋겠습니다. 은혜로 사는 삶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사는 삶보다 훨씬 가치 있고, 감격적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