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수요일) 아침의 묵상 – 예수를 믿는 이유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초기에는 복음이 주로 서민들과 소외된 계층을 중심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만 신앙인이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가운데는 왕손으로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재형(1871-1947)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고종 임금보다 일찍 태어났더라면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과거 급제 후 풍기 군수를 지냈으나, 일본이 조선에 들어와 득세하고 왕실은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울분을 참지 못하고 군수의 자리를 내놓은 후 풍운아처럼 살아갑니다. 그는 가지고 있던 200석 땅문서를 아내에게 넘겨주고 나머지 재산을 정리하고선 방랑길을 떠났습니다. 그래도 왕손이었기에 한동안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고 방랑하며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재형은 방랑생활을 하면서도 가을이면 충주에 있는 선산을 찾아 성묘를 하곤 하였는데, 그 때 충주 선산까지 마부로 따라갔던 엄귀현이라는 마부가 있었습니다. 엄귀현은 이재형을 극진히 모셨고, 늘 자신의 일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런 마부가 대견해서 이재형은 엄귀현과 친하게 지내는데, 어느 날 엄귀현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나으리, 황송하오나 오늘부터 예수를 믿으소서! 그래야 나리도 죄사람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사옵니다.” 이재형은 마부의 건방진 태도가 괘씸하기도 하여 “건방진 소리 하지 말고 말이나 잘 몰거라!” 하고 핀잔을 주었지만, 마부 주제에 왕족인 자신에게 예수 믿으라고 한 용기와 그 진정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재형은 빈정대는 투로 “예수를 믿으면 마부꾼 신세도 면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엄귀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리, 예수를 믿는 것은 그런 도리가 아닙니다. 저는 마부꾼 신세를 면하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마부꾼 노릇을 더 잘하려고 믿습니다.” 그 말에 이재형은 예수에 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기독교가 그렇게 좋은 것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예수에 관한 것들을 더 자세히 묻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는 예수에 관해 더욱 생각하게 되었고 헤어진 마부 엄귀현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 이재형은 가진 재산을 다 탕진하고 친구들의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전해 들은 부인이 사람을 보내어 집으로 돌아오기를 독촉하자 그는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 때 그의 아내는 이미 승동교회 교인이 되어 있었고, 아내를 비롯한 교인들의 인도로 그는 예배당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승동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리게 되었고, 초신자인 이재형이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마부였던 엄귀현을 만나게 됩니다. 이재형은 엄귀현을 보더니 “형님, 이렇게 만나니 반갑구려. 나에게 전도하던 엄가 아니시오?”라고 그를 반겼습니다. 그 후 믿음의 깊이가 깊어진 이재형은 1914년 승동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이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지금의 남대문교회와 승동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하다가 1947년 77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마부꾼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더 잘 하려고 예수는 믿는다’는 엄귀현의 말은 믿음을 바르게 이해한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우리의 환경이 바꿔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난 후 우리는 더욱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이었고, 청교도들의 정신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삶을 더 진실하게 사십시다. 그렇게 살았던 마부 엄귀현을 통해서 왕족 이재형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우리를 통해서 누군가가 감동을 받고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