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 (금요일) 아침의 묵상 – 숙맥(菽麥)인가요?

흔히 사리 분별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켜 숙맥(菽麥)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사서오경 중에 하나인 『춘추』의 주석서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말로, 원말은 ‘숙맥불변’(菽麥不辨)입니다. 즉 콩과 보리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콩과 보리는 모양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어지간한 사람은 다 구분할 수 있는데, 그것조차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중국 진나라에 주자(周子)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는 원래 서열상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형이 아둔한 관계로 신하들이 주자를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그렇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 진나라에는 왕권을 둘러싸고 심각한 권력다툼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신하들이 불과 14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주자를 왕위에 앉히자, 백성들이 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러자 주자를 왕위에 앉힌 쿠데타 세력은 “주자에겐 형이 있는데 지혜가 없어 콩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하여 왕으로 세울 수 없다.”고 둘러댄 것입니다.

실제로 주자의 형이 숙맥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주자는 자신의 형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주자가 형님 앞에 콩과 보리를 쏟아놓아 ‘크고 둥글둥글한게 콩이고 작고 납작한 것이 보리’라고 알려줍니다. 동생의 친절한 설명을 열심히 듣던 형은 이제 콩과 보리를 구별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음 날, 주자는 형님에게 “형님, 창고에서 콩좀 꺼 내 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착한 형님은 얼른 창고에 가서 가마니 하나를 들고 옵니다. 그런데 그것은 보리를 담은 가마니였습니다. 그렇게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형을 왕으로 앉힐 수 없어 신하들이 어쩔 수 없이 주자를 왕으로 모시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숙맥이라는 말에서 우리 자신을 생각해 봅니다. 나는 과연 숙맥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특별히 신앙에서 숙맥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것을 구분하고 못한 채 살아가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로마서 12장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우리는 분명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분별하지 못한 채 적당히 세상에 동화되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우리가 바로 신앙의 숙맥 아닐까요?

숙맥이 원래는 그렇게 콩과 보리조차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뜻하는데, 오늘날에는 좀 어리숙하지만 세상에 때묻지 않고 순진한 사람을 가리켜 ‘숙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남들은 다 아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순진하고 변변치 못한 사람, 자신이 얻어야 이익에 둔감하여 제 실속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 현실감이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에 물들지 않는 순진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라면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는 숙맥이어도 괜찮습니다. 너무 이기적인 욕심에 노예가 된 것처럼 돌아가는 세상에 때론 어리숙하게, 때론 바보처럼, 때론 숙맥처럼 사는 것도 우리의 순수함을 유지하는 비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에 숙맥인지는 잘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숙맥인지 세상에 대해서 숙맥인지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세상에 대해서는 적당하게 숙맥처럼 살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절대 숙맥이 아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내는 성숙한 신앙으로 사십시다. ‘숙맥,’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