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토요일) 아침의 묵상 – 우리는 연극의 조연들

수필가 이경희(李京姬, 1932-) 씨가 쓴 ‘현이의 연극’이라는 수필의 내용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 현이가 연극에 참여한다고 보러 오라는 말에 엄마는 시민회관으로 갔습니다. 그 동안 현이가 매일 학교에서 늦게 오고, 휴일에도 학교에 나가 연습을 하곤 할 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공연하는 날이 되니 엄마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현이가 출연하는 연극 ‘숲속의 대장간’은 2부의 첫 순서였습니다. 2부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마음이 초조해졌습니다. 혹 딸아이가 무대에서 실수나 하지 않을까, 무대 경험이 처음인데 너무 아이가 흥분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2부가 시작되고, 막이 오르자 무대 가운데 조명 속에 선녀가 서 있었습니다. 물론 현이는 선녀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후 무대 한 가운데 대장간이 생겼고, 그 뒤에 숲이 울창했습니다. 현이가 언제 나올까 열심히 지켜보던 엄마의 눈에 현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대장간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숲속에서 합창단원 모양의 대열을 짓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풀잎들 사이에서 현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딸 현이는 많은 풀잎 들 중에 하나로 끼어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대장간 앞에 토끼도 나오고, 포수도 나오고, 동네 사람들이 나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풀잎 역을 맡은 현이는 양손에 풀잎 그림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고, 가끔씩 풀잎을 흔들 때에만 살짝살짝 현이의 얼굴이 보였을 뿐입니다. 그렇게 연극이 끝났고, 엄마는 현이를 찾으러 아래층을 내려갔습니다. 엄마를 본 현이는 “엄마! 나 하는 것 보았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응, 현이가 어느 쪽에 앉아 있었지?”라고 되물었고, 현이는 의외의 밝은 표정으로 “둘째 줄 끝쪽에 앉아 있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그럼 나 못 보았지? 아유, 난 내 뒤에 있던 참새가 앞으로 나가면서 건드리는 바람에 모자가 벗겨져서, 그것을 엄마가 보았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딸 현이는 비록 눈에 잘 띄지 않는 풀잎 역을 맡았지만 풀잎으로서의 자기 역할에 충실했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엄마가 꼭 보아주리라 확신했기 때문에 열심히 연기를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엄마가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비록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역할이지만, 묵묵히 그 일을 해 준 누군가가 있기에 연극은 완성됩니다. 그건 연극만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삶에서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조연들이 있기에 주연이 빛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주인공에게 쏠리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이 잘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조연들은 주인공들 못지 않게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합니다. 조연일지라도 작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삶은 조연과도 같습니다. 나의 행동에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을 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연극 무대의 숲속 풀잎처럼 남의 눈에 띄지도 않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곤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을 대충 살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작은 역할일지라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나의 삶이 조연이어도 괜찮습니다. 아니 조연이기에 더욱 그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무대에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조연 역할을 잘하면 주연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더욱 멋지게 드러나실 것입니다. 우리를 조연으로 쓰시는 하나님께서 후회하지 않도록 멋지게 하루를 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