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목요일) 아침의 묵상 – 생각나는 한 사람

함석헌(咸錫憲, 1901-1989) 선생의 유명한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읽어 드립니다.

만 리 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은 독립운동가이면서 기독교 문필가요 민중 운동가로 평생을 산 분입니다. 당시의 지식인들이 5.16군사쿠데타를 ‘무능한 장면 내각을 물리친 혁명’이라고 인식하고 칭찬하기 바쁘고 대중들조차 5.16을 환영하는 분위기였을 때, 함석헌 선생은 516 군사정변을 정면으로 공격했습니다. 그렇게 정의를 위해서 올곧게 같은 길을 걸어갔기에 그의 인생은 참으로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외로움을 이겨낼 한 사람이 그에게도 있었습니다. 그의 스승 다석 류영모(柳永模, 1890-1981) 선생이 그 ‘한 사람’이었고, 종교를 뛰어넘어 교류했던 법정 스님도 그에게는 그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한 사람’이 있었기에 그는 힘든 길, 외로운 길을 묵묵히 감내하며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함석헌 선생의 물음을 우리에게도 물어보십시다. ‘나에게도 그런 한 사람이 있습니까?’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 탕자를 생각해 보십시다.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여, 그것을 가지고 먼 타국으로 떠나갑니다. 아버지의 제약과 눈길을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은 그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낭비”(눅 15:13)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낭비하다’는 말은 곡식을 알맹이로부터 분리하기 위해서 공중으로 던지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가 돈을 그렇게 썼다는 말입낟. 그럴 때 그 돈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었을까요? 아마도 돈냄새를 맡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양을 떨며 친구인 양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진 돈을 다 잃고 난 후에 그는 비로소 혼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사람 취급해 주지 않았습니다.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조차 먹지 못할 정도로 그는 철저히 외톨이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 그에게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아버지입니다. 그가 그토록 멀리하고 싶었던 아버지가 홀로된 그에게는 ‘생각나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께로 돌아와 아버지의 품에 안겼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외톨이가 된 탕자를 품어준 이는 아버지였습니다. 그 아버지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비유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다 버려도 버리지 않고 기다리시며, 돌아오는 이를 사랑의 품으로 품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십시다. 내가 그렇게 인생의 실패자가 되고 외톨이가 되었을 때 내 생각 속에 마지막으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실패자라 하더라도, 낙오자요 외톨이라 하더라도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받아주고 품어줄 수 있는 마지막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혹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그렇게 용납받은 것처럼, 외톨이가 된 누군가를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마지막으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바로 그 사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