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

< 본문 - 로마서 7:18-25 >

  심리학에 다중인격(多重人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중인격이라는 말은 한 개인의 의식 속에 두 개 이상의 다른 성격이 공존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두 개의 다른 의식이 어떤 경우에는 서로를 의식하면서 공존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서로를 의식하지 못한 채 한 개의 의식 속에 공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사람이 이런 다중인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만 그 다중인격이 정상적으로 통합되지 못했을 경우 다중인격장애, 또는 해리성장애라고 불리는 장애를 겪기도 합니다. 해리(解離)라고 하는 것은 어떤 두 개의 물질이 서로 분해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우리 안에 있는 두 개의 인격이나 정체성이 통합되지 못하고 분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중인격장애를 겪는 사람은 다른 하나의 인격이 말하고 행동했던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을 경험하기도 하고, 상황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멍하게 있는 순간들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어떤 장소에 가 있는데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도 모를뿐더러,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의 의식이 한 것을 다른 의식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인격성장애를 알지 못할 때에는 그런 사람을 귀신들린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만 그것이 통합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인격이 개별적으로 의식될 때 삶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켜 치료받아야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누구나 다른 인격을 가진 채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가 있어야 성장하고 발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심리학자는 우리 인간의 뇌가 복잡한 세상에서 그때그때 적응하고 융통성을 발휘하여 생존하기 위해 발달시킨 생존전략 가운데 하나가 다중인격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는 내가 의식하고 있는 자아가 있는가 하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또 다른 자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또 다른 자아를 주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심리학자의 말처럼, 또 다른 나, 또 다른 자아가 있기에 우리는 성장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는 자아가 있는가 하면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여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또 다른 자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장해갈 수 있습니다.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려 하는 자아에 끌려 살아간다면 분명 우리는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것처럼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바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성숙한 믿음의 모습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고백에서 사도 바울은 아주 절망적인 탄식을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사도 바울이 그렇게 탄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일평생 주님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의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31)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라는 말은 우리의 작은 일상을 말합니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먹고 마시는 일에서부터 자신이 살아가는 모든 삶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아니 그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진 삶의 목적은 분명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는 늘 그렇게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함에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놓은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놓겠다는 선언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목숨을 건 사람에게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함에 이미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주님을 위해서 산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빌립보서 3:5)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라는 말은 이방인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히브리인의 혈통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히브리인의 전통과 관습을 그대로 지킨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킨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살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런 바리새인의 습관이 몸에 밴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도 철저하게 신앙생활했습니다. 지독하리만큼 철저한 자기 관리로 믿음을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도 바울의 입에서 전혀 뜻밖의 고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대충 신앙생활했던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대충대충 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먹고마시는 작은 일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했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인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내어놓은 사람입니다. 먹고 마시는 작은 일부터 자신의 생명을 내놓은 거대한 사역까지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며 사는 것이 몸에 밴 사람입니다. 그런 사도 바울인데, 그런 사도 바울이 악을 행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사도 바울처럼 좋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일평생 헌신하며 목숨까지 내놓은 절대 신앙으로 산 사람이라면 그는 매일 죄와 싸워 이기는 승리자라고 고백해야 맞지 않겠습니까? ‘나는세상의 그 어떤 유혹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으로 사노라.’라고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선을 원하지만 내가 행하는 것은 악한 것뿐입니다.’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선과 악이 싸우고 있는데, 그래서 자신은 선을 행하려고 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늘 이기는 것은 선이 아니라 악이라는 고백입니다.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이 신앙생활을 대충대충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살아왔던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신앙의 열정과 헌신적인 믿음으로 그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악을 이기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늘 악에게 지며 살 순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악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가장 먼저는 우리 내면에 있는 악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깊숙이에 뿌리박혀 있는 악한 생각들과 싸워야 하고, 우리의 몸에 배여 있는 악한 습성들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거 아세요? 우리에게는 악과 싸워 이길만한 힘이 없다는 것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믿음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악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으로 무장하고 아무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에게는 악과 싸워 이길 능력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악한 생각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잘못된 생각이 떠오를 때 ‘안 돼!’라고 우리 스스로 다짐하면 그런 잘못된 생각이나 악한 마음이 우리에게서 떠나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럴 힘이 없습니다. 아무리 ‘악한 생각을 하지 않아야지’라고 마음먹는다 하더라도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안에는 또다시 악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때론 잘못하고 실수해서 다시는 이런 실수 하지 않아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얼마 되지 않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 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오늘 본문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본문 22절에서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즐거워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마음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예수 믿는 사람답지 못한 말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좋을텐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속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것을 즐거워하는데도 자신의 마음속에 자신을 죄의 법 아래로 끌고가는 또 다른 자아가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3절에 표현되고 있는 ‘사로잡는다.’는 말은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이 승리자의 포로가 되어 손과 발이 밧줄로 꽁꽁 묶여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끌려가는 모습을 연상하는 단어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말을 타고 당당하게 앞서서 가는데, 그 뒤에는 밧줄에 매인 포로들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힘없이 끌려가는 그런 비참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신이 죄의 포로가 되어 죄 아래로 끌려가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연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데도 그렇게 죄의 포로가 되어 죄에게 끌려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 한다면 능히 죄를 이겨야 하는데, 자신은 죄를 이기지 못하고 포로가 잡혀가듯 끌려가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하는 사람도 그렇게 힘없이 죄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내 욕망과 내 헛된 꿈만을 좇아 산다면 더 쉽게 죄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믿음으로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 마음에 큰 기쁨이 되어 기쁘게 그 믿음의 길을 달려가는 사람도 죄의 노예가 되는데, 믿음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살 때에는 얼마나 더 비참한 모습으로 죄의 노예가 된 채 살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늘 그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닮아간다 하면서도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된 채 살아가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신앙의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고백하지만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또 다시 죄에 빠지고 맙니다. 그게 우리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했던 그 탄식은 사도 바울만의 탄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탄식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내면을 정직하게 성찰한다면 사도 바울의 절규가 우리의 절규이고, 사도 바울의 탄식이 우리의 탄식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늘 그렇게 탄식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란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한 24절로 끝이 났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의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굳이 믿음으로 살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심에 거리낌이나 가책을 받지 않고 죄에 대해서 무덤덤하게 살면 되니까요. 오히려 그렇게 사는 것이 더 편하니까요.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거기에서 끝이 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여러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던 사도 바울이 왜 갑자기 감사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것입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에게는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죄의 세력에 맞서 싸울 힘도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죄에게 져서 죄의 포로가 된 채 살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게는 죄를 이길 힘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십자가에서 모든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하신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그 주님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죄를 이기신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믿는 그 주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죄와 싸워 내게 승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한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진 죄라 하더라도 결코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나는 죄를 이길 수 없지만, 내가 믿는 그 주님께서 죄를 이기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감사한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죄를 이길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죄를 이겼습니다.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말입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님을 붙들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처럼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내게 힘이 있기 때문에 내가 죄와 싸운다 하더라도 나는 충분히 이길 수 있어’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길 원하는 사람들은 내게는 죄와 싸워 이길 능력이 없음을 발견하고,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신앙이 능력을 나타냅니다. 참으로 부족한 나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나는 어리석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인정할 때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지혜에 내 삶을 맡기며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내 자신 안에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십자가 외에는 내가 구원받을 방법이 없음을 알고 십자가의 주님을 믿으며 살게 됩니다.

   선을 행하고자 하는 내 안에 죄에게 포로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내가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런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내 삶을 잘 살 수 있다는 헛된 교만에 빠져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는 나를 믿음의 삶으로 이끌어주는 은혜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가 죄인임을 보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나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고백한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선을 행하고 싶으나 그 선한 마음처럼 선을 행하지 못하는 연약한 나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그 믿음을 잃어버린 채 믿음 없는 자처럼 살기도 하는 나 자신임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은혜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정용철 시인이 쓴 자기 고백적인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마음이 쉬는 의자』 라는 제목의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 의심도 합니다.

    나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잘난 체도 합니다.

    나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 닫기도 합니다.

    나는 정직하자고 다짐하면서 꾀를 내기도 합니다.

    나는 떠난다고 하면서 돌아와 있고 다시 떠날 생각을 합니다.

    나는 참아야 한다고 하면서 화를 내고 시원해 합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다가 우스운 일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는 외로울수록 바쁜 척합니다.

    나는 같이 가자고 하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라 하면 같이 가고 싶어집니다.

    나는 봄에는 봄이 좋다 하고 가을에는 가을이 좋다 합니다.

    나는 남에게는 쉬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 계속 일만 합니다.

    나는 희망을 품으면서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나는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 소속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변화를 좋아하지만 안정도 좋아합니다.

    나는 절약하자고 하지만 낭비할 때도 있습니다.

    나는 약속을 하고나서 지키고 싶지 않아 핑계를 찾기도 합니다.

    나는 남의 성공에 박수를 치지만 속으로는 질투도 합니다.

    나는 실패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내가 실패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나는 너그러운 척하지만 까다롭습니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지만 불평도 털어놓고 싶습니다.

    나는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하지만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흔들리고 괴로워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이 있습니다.

    그 내일을 품고 오늘은 이렇게 청개구리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시인의 참회와 같은 글입니다만, 그 분의 참회가 아니라 우리의 참회이지 않습니까?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때에 나오는 참회입니다. 시인은 그의 글에서 ‘오늘은 이렇게 청개구기로 살고 있습니다.’라고 글을 맺었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결론은 조금 다릅니다. 우리도 시인처럼 참 많은 거짓된 가면을 쓴 채 살아가고, 청개구리의 심보로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의 마지막 결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왜요? 우리는 오늘도 승리하거든요. 내 힘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죄를 이기며 살거든요. 나는 죄의 포로가 되어 끌려갈지라도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우리 주님께서 나를 건져주시거든요. 나는 죄를 이길 수 없어도 주님께서 내 편이 되셔서 나를 대신해 죄와 싸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니까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의 약함을 알고 고백하며, 그 모습 그대로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 2018년 2월 25일 주일낮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