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위기 앞에 서서

< 본문 - 출애굽기 4:18-26 >

   오스트리아 출신의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의미치료요법’(Logotherapy)를 주창한 사람입니다. ‘의미치료요법’을 아주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살아야 할 의미를 갖고 살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살 용기가 생기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찾아 나선다고 행복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야 할 ‘삶의 의미’(logos)를 찾으면 행복은 내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됩니다.

   빅터 프랭클이 이런 의미치료요법을 주창한 데에는 그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는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빈 의과대학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하는 그는 빈에서 자신의 정신신경과 병원을 개원했습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에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면서 유대인인 그의 의사 자격증을 박탈해 버렸습니다. 유대인은 전문직에 종사할 수 없고, 건물이나 기업을 소유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다닐 자격까지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나 마차를 타고 다녀서도 안 되었습니다. 강제로 거리 청소 등에 동원되어도 항의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그들을 상징하는 노란색 별을 옷에 붙이고 다녀야 했고,<사진1> 문명사회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축제나 의식에 참여할 자격도 박탈되었습니다. 그러자 오스트리아에 있는 유대인들은 망명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여동생은 뉴질랜드로 떠났고, 그도 미국으로 떠나기 위해 신청한 비자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빈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9월 그는 나치 체포되어 임시수용소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의 아내는 물론이거니와 부모님과 장모님, 그리고 형까지도 모두 임시수용소에 끌려갔습니다. 아버지는 그 수용소에서 병사했고, 장모님은 가스실에서 죽었습니다. 1944년 10월 프랭클은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는 열차에 오르게 되었고, 이송명단에 없던 아내는 자청해서 남편과 함께 열차를 타고 아우슈비츠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 부부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그들 부부는 남녀로 분리 수용되면서 떨어져야 했고, 얼마 후에 아내는 베르겐벨센 수용소로 이송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와 형도 얼마 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어 왔지만 만나지 못했고, 어머니와 형 역시 강제노역 도중에 최후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야 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면 수감자들은 일단 남녀로 분류되고, 그 다음에 친위대 장교 앞에 서야 하는데 그가 아무 말 없이 오른쪽을 가리키느냐 왼쪽을 가리키느냐에 따라서 생사의 갈림길이 결정되었습니다. 왼쪽으로 간 사람은 곧바로 가스실로 들어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왼쪽(죽음의 가스실)으로 분류되었고, 잘 부려먹을 수 있을 만한 사람만 오른쪽으로 분류되어 생명을 연장했습니다. 그런데 프랭클은 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았는데 오른쪽으로 분류되어 살아남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맞아 죽을 뻔 한 상황에서 공습경보가 울려 죽음을 모면하기도 했고, 가스실로 가는 명단에 들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별일 없이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보낸 6개월은 그의 생애에 최악의 고통과 불안과 절망의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적인 욕설과 폭행, 비위생적인 환경과 혹독한 추위, 끊임없이 이어지는 굶주림,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강제노동 등 외적인 환경은 물론이거니와 옆에서 죽어가는 동료와 가스실로 불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에게도 언제 그런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심, 죽었을지도 모르는 가족들에 대한 연민과 불안감 등이 가슴 깊숙이에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 프랭클에게 삶에 대한 용기, 그런 극심한 고통을 견디어낼 수 있게 한 힘은 바로 그가 살아 있어야 할 ‘의미’였습니다. 그는 그런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틈만 나면 글을 썼고, 헤어져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아내를 위해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살아야 할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매일 얼굴을 깨끗이 씻고, 작은 유리조각으로 수염을 깎았습니다. 또 얼굴에 핏기를 내기 위해서 스스로 뺨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건강하게 보여야만 쓸모없는 인간으로 판명되어 가스실로 보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1945년 독일이 패망하면서 그는 수용소에서 나올 수 있었고, 그 다음 해에 3년 간의 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그가 1997년 9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 세계 24개의 언어로 번역출판 되어 약 1억 권이 팔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빅터 프랭클 박사와 같은 경험은 아닐지라도 우리도 우리의 삶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위기의 순간을 맞게 됩니다. 그것이 죽음의 위기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그런 위기를 만날 때 그 위기를 극복할 힘을 얻는다면 우리는 그 위기를 이겨낼 것이지만, 그 위기를 극복할 힘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위기의 무게 아래 깔려 신음하다가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위기를 극복할 힘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위기를 극복할 힘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위기를 극복할 힘을 가질 수도 있고, 갖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이 말한 것처럼 살아야 할 삶에 대한 의미를 가진다면 죽음의 위기를 극복할 힘을 스스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큰 위기 앞에서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기 않고 삶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그것을 신앙이라고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위기를 극복할 힘을 얻는 분명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무가치해 보이는 삶이라 하더라도, 그 삶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무가치한 인생을 가치있는 인생으로 볼 수 있는 눈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찬양할 수 있었던 이유도 고난 속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무거운 인생의 무게에 눌려 고통할지라도, 그래서 몸부림치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인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명확하게 알 순 없지만 그 속에 분명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곧 죽음의 위기입니다. 죽음의 위기를 극복해낸다면 그는 그 어떤 시련과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오늘 본문의 모세가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모세는 그의 인생에서 세 번 큰 죽음의 위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첫 번째 죽음의 위기는 태어날 때였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인의 아들로 태어난다는 것은 당시 곧바로 죽음으로 가는 길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노예였던 히브리인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자 애굽의 왕인 바로는 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그 숫자가 많아지고 그 민족이 강성해지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자신의 대적과 손을 잡고 애굽을 위협하고 결국 애굽에서 도망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노예였던 히브리인들에게 더 극심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노역에 힘들면 아이를 적게 낳을 것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히브리인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게 되자, 결국 바로는 히브리인이 아이를 낳으면 남자 아이는 반드시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 시대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남자아이로 태어난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부모는 남자아이 모세가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습니다. 석 달 동안이나 자신의 집에서 몰래 키우다가 더 이상 집안에서 키울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갈대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태어난 지 석 달 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넣고는 나일강 갈대 사이에 버려야 했습니다. 나일강은 악어가 아주 유명합니다. 지금도 ‘나일악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악어가 많이 사는 곳이 나일강입니다. 이 나일악어는 바다악어에 이어 두 번째로 거대한 악어로, 수컷의 경우 평균 3-5.5m의 크기로 자라고 몸무게는 무려 900kg까지 나가기도 합니다. 그런 악어가 득실거리는 나일강에 갓난아이를 가져다놓는 것은 곧 악어밥이 될 게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악어의 밥이 된 것이 아니라 애굽의 왕자가 되었습니다. 때마침 나일강에 목욕하러 나온 바로의 공주의 눈에 띠어 바로의 왕궁에서 자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왕의 명령에 의해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할 운명인 모세는 히브리인의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바로 그 바로 왕의 궁전에서 왕자로 40년을 지내게 됩니다.

   모세가 겪은 두 번째 죽음의 위기는 그의 나이 40세 때입니다. 히브리인이라는 자의식이 가득했던 모세가 히브리인들이 노역하는 현장을 찾아갔다가 자기 동족 히브리인 한사람이 애굽인에게 맞는 것을 보고는 분을 참지 못해 그 애굽인을 죽이고 맙니다. 동족인 히브리인의 편에서 히브리인을 돕겠다고 한 행동이었지만 그는 히브리인에게 거부를 당하고 맙니다. 애굽 사람을 죽인 다음날 같은 히브리인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고는 ‘왜 싸우느냐?’고 ‘왜 동포끼리 주먹다짐을 하느냐?’고 말리려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이 탄로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애굽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어 모세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굽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되고 거기에서 40년을 살게 됩니다. 그는 거기에서 철저하게 무명인으로 살아갔습니다. ‘내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떠돌이 양치기로 살아야 했습니다. 비록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기도 했지만, 장인인 이드로에게 속하여 이드로의 양을 치는 목동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저지른 그 살인이 자신에게 오히려 죽음의 위기를 불러왔고, 그는 왕자라는 화려한 신분을 다 내려놓고 무명의 목동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모세에게 세 번째 죽음의 위기가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40년 후입니다. 모세가 80세 때에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던 어느 날, 양떼를 이끌고 호렙산에 이르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철저한 무명인 목동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동족 히브리인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처음 그 사명을 받았을 때 모세는 거부했습니다. 자신은 그 사명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40년 전이면 혹시 모릅니다. 40년 전의 모세는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왕자라는 지위도 있었고, 젊음이라는 힘도 있었습니다. 왕궁에서 배운 학문과 무예도 있었습니다. 한 민족의 지도자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80세의 모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세울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40년 전 왕자라는 지위와 다르게 지금은 아무런 지위도 없습니다. 가장 힘없는 목동입니다. 젊음도 사라졌습니다. 80세의 노인입니다.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40년 전에 가졌던 학문과 무예는 다 무용지물이 되었고, 그의 머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를 부르셨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 항복을 하고 애굽에서 고된 노동으로 신음하는 동족 히브리인을 건져내기 위해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이고, 모세가 당한 세 번째 죽음의 위기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모세가 장인 이드로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모세의 그 말에 40년을 함께 살았던 장인 이드로도 모세의 소명을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기꺼이 보내줍니다. 이제 모세는 자기 가족들, 미디안 광야에서 얻었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있습니다. 양을 칠 때 쓰던 평번한 지팡이였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고, 그 지팡이가 곧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지팡이를 쥐고 굳은 마음으로 애굽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애굽으로 가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해야 할 일을 자세하게 알려주십니다. 오늘 본문 21-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지팡이로 이적을 행하여 내 백성을 건져내라.’는 것입니다. ‘비록 바로가 마음이 강퍅해서 쉽게 승낙하진 않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바로 왕국의 장자를 죽이심으로 결국 바로가 항복하여 히브리인을 보내주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에 용기를 내어 애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가다가 한 숙소에 머물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십니다. 이것이 모세가 만난 세 번째 죽음의 위기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는지 그 이유는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당시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다. 80세의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그렇게도 가지 않겠다고 거부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거의 강제로 모세를 애굽으로 모내셨습니다. 이제 모세가 하나님의 강요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를 거부하고,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또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애굽으로 갔는데, 애굽에서 모세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하지 않아 일을 그르쳤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면 그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것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모세가 불순종한 것도 아닙니다. 일을 하다가 일을 그르쳐 망친 것도 아닙니다. 이제 막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죽이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본문 25-26절에서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시자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가 모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으로 보아 아마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야 할 모세가 40년 동안 미디안 땅에 살면서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인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례를 행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회복하라는 뜻으로 그렇게 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리 모세가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엄청난 사명을 띠고 애굽으로 가는 길목에서 모세를 죽이려 하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할례를 행해야만 한다면 젊잖게 ‘모세야! 네가 이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데, 지도자인 네가 네 자식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언약의 증표인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서기 전에 네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사명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 하더라도 모세가 ‘하나님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없지 않습니까? 나는 내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젊잖게 말씀하셔도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죽이려 하셨습니다. 죽이려 하지 않으시면 안 되는 이유를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의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젊잖게 타일러 자식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길을 가야 합니다.

   모세를 보십시다. 모세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에서 ‘만나다’는 말은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덤벼들다, 돌격하다는 뜻입니다. 마치 전쟁을 하려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상황과 같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우연히 만나 죽이려 하신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모세의 숙소에 급습하듯 찾아오셔서 갑작스럽게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갑작스럽게 그런 일을 당한 모세의 입장에서 ‘하나님, 왜 그러십니까? 이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가는 나를 이렇게 죽이려 하실 수 있습니까?’ 하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아내 십보라가 아들의 포피를 베어 자신의 발아래 갖다 대며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입니다.’라고 소리쳐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일을 우리 인간이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난날 바로의 왕궁에서 40년, 미디안에서 40년 동안 지낸 것도 자신의 머리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80이 다 된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애굽으로 가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애굽의 바로가 누구입니까? 당시에 가장 강대국이 애굽입니다. 그 애굽에서 신처럼 추앙받던 사람이 바로 왕입니다. 자신은 아무런 힘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 자신이 바로에게서 항복을 받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시니까 가는 것입니다. 애굽에 가서 일어날 일도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는 계산이 나오지 않습니다. 자신의 모든 일, 과거나 미래나 모든 일이 이해되지 않는 일들뿐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당한 일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항변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 그게 모세의 마음일 것입니다.

   여러분, 어디 모세만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 가운데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쩌면 매 순간순간 우리가 만나는 상황이 우리의 머리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 이게 뭡니까? 왜 이래야만 합니까?’라고 항변할 수 없습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그저 순종하며 살 뿐입니다. 내 자존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인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신 또 하나의 교훈은 위기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세는 이제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도 죽음의 위기가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우리의 삶에 위기가 없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찬송하며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산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에 순간순간 위기는 찾아옵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죽음의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예수를 믿었기에 우리의 삶에 위기가 더욱 심각하게 찾아오는지도 모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죽음의 위기는 필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위기를 겪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예수 믿지 않았다면 받지 않아도 될 고난이나 시련이나 위기가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않았다면 굳이 고난의 길을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예수님을 따라가려 하니까 고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셨다면 굳이 십자가 고통과 죽음을 당하지 않으셔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셔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라가기 때문에 고난이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위기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우리의 머리로는 다 이해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위기가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견디며 가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세는 세 번에 걸쳐 죽음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첫 번째 위기는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위기였고, 그 위기 후에 모세는 왕자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위기는 자신이 분노를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찾아온 위기였고,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무명자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세 번째 위기는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찾아온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 위기 후에 모세는 이스라엘의 온전한 지도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위기는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것이 누구 때문이든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하더라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묵묵히 나가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선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승믿는 자가 가야 할 길임을 잊지 마십시다.

< 2018년 7월 15일 주일낮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