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

< 본문 – 요한복음 5:14-18 >

   미국의 여류작가 엘리자베스 토마스(Elizabeth M. Thomas, 1931-)가 쓴 『세상의 모든 딸들』(Reindeer Moon)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영문학과 인류학을 공부한 그녀가 문화인류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부시먼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그들의 삶을 연구한 후에 쓴 소설입니다. 이 소설로 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2만 년 전인 후기 구석기시대의 시베리아 지역입니다. 한 소녀가 어린 나이에 여인에서 아내, 그리고 어머니가 되기까지의 생을 리얼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야난은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를 여의고 동생을 데리고 생존을 하다가, 누구의 아이인지를 의심받는 상황에서 홀로 아이를 낳다가 산고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 야난이 홀로 아이를 낳기 위해 준비하던 중 예전에 엄마가 자신의 머리를 빗겨주면서 한 말을 떠올립니다. “야난, 너도 언젠가 자라서 한 사람의 어머니가 되겠지. 남자가 고기를 지배하고 오두막을 지배해서 여자보다 월등히 위대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위대하다면, 여자는 거룩하단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란다.”

   철저한 남성중심사회였던 원시사회에서 한 가족을 이끌어가는 아버지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합니다. 사냥을 하여 고기를 구해야 하고, 오두막을 지어 가족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어야 햡니다. 계절에 따라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먹을 거리와 생활공간인 오두막을 마련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비해 여자들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종족번식의 수단이며 집안일을 하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고작해야 오두막을 따뜻하게 하거나 고기를 구워 먹기 위한 땔감을 준비해야 하고, 남자가 잡아 온 짐승의 가죽으로 가족의 옷을 짓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항상 남자들에게 무시당하고, 생존을 위해 다른 가족과 연대할 목적으로 정략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인공 야난의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엄마가 된다는 것만큼 거룩한 것은 없노라.’고, 그리고 그것은 남자들이 하는 그 어떤 위대한 일들보다도 더 위대하다고 말해 줍니다. “남자가 위대하다면, 여자는 거룩하단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란다.” 어쩌면 이 말이 작가가 해주고 싶은 가장 중요한 말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소설은 야난이 아직 어린 나이에 홀로 축복받지 못한 출산을 하면서 죽고, 영혼이 되어 죽은 자의 땅에서 자신의 삶에 모델이 되었던 어머니를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남자가 위대하다면 여자는 거룩하단다.” 저는 이 말을 이렇게 고치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위대하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거룩하다.” 그렇습니다. 어느 시대를 살았든, 또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았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대하고 거룩합니다. 우리는 때로 그 아버지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되어보면 자식을 위한 부모의 사랑과 희생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지 조금은 압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목욕탕엘 갔다. 아버지가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아들에게 “아들, 이리 들어와라. 아주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 녀석은 ‘뜨거워서 못 들어간다.’고, ‘뜨거운 물에 안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놈아! 사내녀석이 뜨거운 물에도 들어오고 참기도 해야 사람이 되지.”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들 녀석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휴! 싫어요. 난 이 다음에 제 자식에게 절대로 뜨거운 물에 들어오라고 안 할 거예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아들이 아들을 낳아 3대가 함께 목욕탕엘 갔습니다. 아들이 자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뜨거운 물에 들어오너라. 아주 좋다.” 그러자 손자녀석이 그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전 뜨거워서 못 들어가요. 안 들어갈래요” 그러자 그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야, 이놈아! 사내녀석이 뜨거운 물에도 들어오고 참는 법도 배워야 바로 되지” 손자녀석이 대답합니다 “싫어요. 전 이 다음에 제 아들에게 절대로 뜨거운 물에 들어오라고 안 할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손자녀석이 물었습니다. “왜들 웃으세요?”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아버지가 되면 안다.”

   성경의 말씀들은 대부분이 은유로 그 의미를 전달해 줍니다. 은유라는 것은 실재를 다른 무언가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은유를 쓰는 이유는 그 의미와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은유로 설명하면 그 안에 다양한 내용과 의미를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쓰인 은유 가운데 가장 심오한 은유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로마서 8장에서는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로마서 8:15) ‘아빠’라는 말은 아람어로, 우리말 뜻 그대로입니다. 우리의 아빠이신 아버지는 친밀하신 아버지, 우리의 절대적인 보호자이신 아버지를 말합니다. 우리들 중 어떤 사람에게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무뚝뚝하고 강압적인 이미지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거나 거부당한 경험이 있는 경우에는 아버지라는 말이 가슴 아픈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가부장의 절대권력이 중시되던 고대 사회에서 아버지의 이미지도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고대사회의 가부장적 아버지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진 아버지의 이미지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이 구약에서는 단 열한 번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170번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미지를 엄격하고 절대권력자의 모습이 아닌 사랑의 아버지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는 탕자인 아들을 무한히 용납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입니다. 우리 예수님께 아버지는 그런 사랑의 아버지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요한복음 5:1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찾아가신 곳은 베데스다 연못이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연못의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간혹 연못의 물이 움직이면 그들은 천사가 내려와서 연못의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그 때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면 어떤 병이든 낫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연못에 수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병자들을 제쳐두고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가서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리고는 그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던 것입니다. 유대교 장로들의 전통에 의하면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엇습니다. 38년 동안 병으로 고생한 병자는 그날이 안식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예수님께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에 고침을 받은 것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병이 고침받았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 자신을 고쳐주신 분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그는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병고침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알아보시고는 그에게 다가가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 때서야 그는 자신의 병을 고쳐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본문 15절에 ‘유대인들’이라고 표현된 종교지도자들에게 자신을 고쳐주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보고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안식일 법을 어긴 부정한 사람으로 계속 낙인찍힐 것이 너무나도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비난의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병고침 받은 사람을 정죄하던 종교지도자들은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본문 16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박해했습니다. 박해했다는 말은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쫓아내려 했다는 뜻입니다. 안식일 법을 어긴 사람은 곧 율법을 어긴 것이고, 율법을 어긴 죄인은 성전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담대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 말은 종교지도자들을 자극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첫 번째는 ‘이제까지 일하신다.’는 말씀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일하신다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당신의 뜻하신 일들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에 쉬셨기 때문에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전히 일하신다고, 안식일에도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으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제7일(안식일)에 안식하신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은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사람이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을 만든 것입니다. 불을 피워서도 안 되고, 병을 고쳐서도 안 되고, 일정 거리 이상을 걸어가서도 안 되고 등등, 수많은 규정들을 두어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안식일에도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지금까지도 가장 엄격하게 지키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안식일법입니다. 그렇게 그들이 아주 엄격하게 지키는 안식일법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시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그냥 놔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8절에 보면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안식일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한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불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라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우리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들이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지칭한 것은 열한 번입니다. 그 중에서 단 한 번도 개인적인 의미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적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아버지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신성모독, 자신을 하나님으로 여기는 불경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에서는 결코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로마서 8:15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양자의 영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된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선택하시고, 지명하여 불러 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당신께 돌아서기만 하면 조건 없이 용서하시고 우리를 품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마음이 아파 남몰래 눈물 흘릴 때 조용히 다가와 우리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우리와 함께 눈물 흘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가 때론 넘어지고 쓰러질지라도 우리를 나무라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일어나 걷고 뛰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이 너무 커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때 기적 같은 방법으로 그 장애물을 뛰어넘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너무나도 힘들고 지쳐 기도할 힘조차 없을지라도 우리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총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고 높고 넓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세상의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까지도 기꺼이 주시는 분이시고, 세상의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한 우리까지도 품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아버지보다 더 위대하고 거룩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여인이 젖먹는 그 자식을 잊을지라도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이사야 49:15)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아버지로부터 혹 사랑을 다 받지 못했을지라도 하늘의 아버지께서 주신 사랑으로 인해 용기를 얻을 수 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늘 고백하며 그 사랑의 품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 품 안에 거하면 세상의 그 어떤 풍파 앞에서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체적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그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씩 발견해가야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신 분들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답게, 그 사랑을 마음에 품고 그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나의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보여지도록 말입니다.

   『좋은 생각』에 올라온 글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퇴근하려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더니 금세 비가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 보니 저쪽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목처럼 여윈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웃고 계신 분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말없이 나에게 우산을 하나 건네주고는 당신 먼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셨다. 얼떨결에 우산을 받아 든 나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 다음엔 할말이 없어 잠자코 뒤따라갔다. 그 뒤 비가 올 때마다 아버지는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우산을 건네 주셨다. 그러자 나는 아버지의 마중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날, 그날도 나는 아버지가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와 계실 거라 생각했는데 웬일인지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중 나오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그대로 비를 맞으며 집으로 갔다. 비에 흠뻑 젖은 채 집에 들어선 나는 잔뜩 부어오른 얼굴로 아버지를 찾았다. 그런데 잠시 뒤 나는 가슴이 뜨끔해졌다. 아버지가 갈고리 같은 손에 우산을 꼭 쥐신 채로 누워 계셨던 것이다. "그렇게 말렸는데도 너 비 맞으면 안 된다고 우산 들고 나가다가 그만 몇 발자국 못 가 쓰러지셨단다."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밭고랑처럼 깊게 패인 주름살에 허연 머리카락을 하고 맥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나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워졌다. 마중 나온 아버지께 힘드실 텐데 그럴 필요없으시다고 말하기는커녕 아주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못내 부끄러웠다. 나는 그날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뒤늦게 깨달으며 한참을 울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때가 떠올라 가슴이 아파온다.

   그게 어찌 그 아버지만의 모습이겠습니까? 상황은 달라도, 모습은 달라도 우리의 모든 아버지들이 그런 마음으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시인 김현승은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에 숨겨 놓으셨듯이, 아버지의 눈물에도 그 사랑을 담아놓으셨습니다. 늘 묵뚝뚝한 것만 같은 아버지, 그러나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어버이날이면 늘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버이날에 부모님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답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위는 현금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받고 싶은 선물 2위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고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위는 당연히 현금이었고, 2위는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감사로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을 표현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모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따뜻한 말 한 마디입니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 보십시다. 평소 우리가 부모님께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준 적이 너무 없었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고 수고하시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어버이날에 받고 싶은 선물 가운데 하나가 ‘따뜻한 말 한 마디’입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씀을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 소리를 들으신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너무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이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똑같이 불러 보십시다.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비록 아버지 어머니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더라도 조용히 마음 속으로 불러 보십시다.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 2021년 5월 9일 주일낮예배-어버이주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