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을 이루는 신앙

< 본문 – 히브리서 12:14-16 >

  오늘은 5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여러분, 5월 한 달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해서 여러 의미 있는 날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기억하는 것으로 5월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5월 8일은 어버이날이고, 5월 17일은 성년의 날입니다. 그리고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스승의 날이라고 알려진 5월 1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가정의 날’(International Day of Families)이기도 합니다. 유엔은 급변하는 세계에서 가정의 역할과 책임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1994년에 매년 5월 15일을 ‘세계 가정의 날’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5월은 우리의 가정을 생각할 수 있는 날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인 우리 어린 자녀들을 위해서는 어린이날을,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어버이날을, 그리고 이제 막 성년이 되는 청소년들이 사회적으로 독립적 인격을 가진 존재로 인정을 받는 성년의 날을 지킵니다.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부부이기에 21일을 부부의 날로 지키고, 오월 한가운데 있는 날인 15일을 가정의 날로 지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렇게 우리 가정을 생각하며 지내온 5월 한 달 여러분의 가정은 안녕하셨습니까? 평안하셨습니까? 다른 때보다도 더 행복하셨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가정을 통해서 행복을 꿈꿉니다. 세상에서는 피곤하고 지칠지라도 가정에서는 쉼을 얻고 평강을 누리길 원합니다. 그런데 때로 행복의 복음자리여야 할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고, 평안을 누려야 할 가정이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가장 뻔뻔한 새’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주로 호주와 파푸아 뉴기니에 서식하는 바우어 새가 있습니다.<사진> 이 새는 아주 독특한 구애 행동으로 유명합니다. 바우어 새의 수컷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 몇 달에서 길게는 1년까지 공을 들인다고 합니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 하는 독특한 행동 가운데 하나가 호화로운 둥지로 만드는 것입니다. 약 1m 높이의 둥지를 지어놓고, 각종 열매나 꽃, 조약돌이나 조개껍데기 등을 물어와 내부를 잘 꾸밉니다. 그리고 달콤한 향내를 내기 위해서 과일즙으로 외벽을 칠하기도 합니다. 둥지의 장식물이 시들거나 낡으면 새로운 것으로 계속해서 바꿔주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바우어 새는 숲속의 작은 정원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암컷을 유혹하는데 성공하고 난 후에는 돌연 폭군으로 돌변합니다. 암컷을 부리로 쪼아대며 못살게 괴롭히고, 새끼도 돌보지 않고 새로운 짝을 찾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가장 뻔뻔한 새’라고 별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소중하게 얻은 것을 너무나도 하찮은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암컷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도 노력하고 오랜 시간 공을 들였으면서도 정작 자기의 짝이 되었을 때에는 부리로 쪼아대며 쫓아내는 ‘뻔뻔한 새’처럼, 우리도 정말 소중하게 얻은 가정을 때로는 별거 아닌 것처럼 여길 때가 있습니다. 소중하게 얻었으면 소중하게 지켜내야 하건만,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무관심하거나 정성을 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정은 유리잔과 같습니다. 유리잔은 늘 닦아내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내가 사용하고자 할 때 필요에 따라 꺼내쓸 수 있습니다. 그 유리잔은 조금 힘을 주어 세게 쥐면 내 손에서 깨어지기도 하고, 내 손에서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손에서 떨어뜨려 깨지기도 합니다. 또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으면 시커먼 먼지가 끼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가정도 그렇게 소중하게 다루어야만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이치가 비슷합니다. 가정생활과 믿음생활의 이치가 비슷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과 이치가 통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일 때는 늘 나 중심적입니다. 내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셨으면 좋겠고, 내 앞에 놓인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고... 모든 것을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기도할 때도 나 중심적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성숙한 신앙이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 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기도를 할 때에도 하나님을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의 마음이나 그 은혜를 헤아리지 못하다가 철이 들면 조금이나마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철든 신앙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경은 부부의 관계를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비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며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은 아내를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 아내들도 남편들에게 그렇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에베소서 5:22-28)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것처럼, 가정생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믿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아주 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생활을 하려 할 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믿음생활, 아름다운 가정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화평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서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를 때에 우리는 주님을 뵈옵는 영광을 맛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화평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평화입니다. 모든 사람과 평화를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그 모든 사람의 범위를 좀 좁혀 보십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가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사회를 만드는 가장 작은 공동체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에서부터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에서 화평을 이루고, 그 화평을 누리는 사람이 더 큰 공동체에서도 화평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하늘의 평안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이 교회 공동체에서도 화평을 이룰 수 있고, 더 나아가 내 이웃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화평을 이루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화평을 이루고, 그 화평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는데 왜 그것이 잘 안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서로 갈등하고 싸움하면서 불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그런 기대와 바람과는 달리 우리는 살아가면서 화평하지 못하고 불편하게 살 때가 많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끼리 싸우지 않고, 갈등하지 않고 화평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때로는 자주 가족끼리도 갈등을 겪습니다.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한 길을 가겠다고 부부의 연을 맺었음에도 때로는 부부싸움을 합니다. 공경하고 사랑해야 할 부모와 자식 간에 다툼과 소송을 벌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살인을 저지르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왜 우리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그 이유 가운데 하나를 아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바로 우리 안에 ‘쓴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쓴 뿌리’라는 것은 ‘독한 뿌리’라는 말입니다. 독한 뿌리에서 독한 열매가 맺혀 주변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독한 열매’라고 표현하지 않고 ‘독한 뿌리’라고 표현한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가정에 갈등이 생겨나는 이유는 겉으로 드러난 어떤 잘못된 행동이 큰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내면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이나 마음에 상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부정적인 감정이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어느 순간엔가 그것이 자극을 받을 때 잘못된 행동이나 상처를 주는 말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서로 갈등을 겪고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 쓴 뿌리는 아주 어렸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께 받은 상처 때문에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라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거부를 당할 때 받은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생활하다가 예수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일 수도 있고,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행동 때문에 받은 실망감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지은 죄나 실수를 감추고 감추면서 그것이 드러날까봐 두려움에 꽁꽁 마음 안에 쌓아놓은 죄책감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쓴 뿌리를 우리 안에서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라야 주님을 뵈옵는 영광스러움을 맛볼 텐데, 그 쓴뿌리가 우리로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한다고 하는데, 주님의 만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15절의 말씀처럼, 마음에 쓴 뿌리가 남아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합니다. 아무리 은혜를 갈구하고 은혜받기를 소망하지만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쓴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의 쓴 뿌리가 자꾸만 내 자신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너 같은 것에 관심 가지실 것 같아?’ ‘너같이 죄 많은 놈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자꾸만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는 데에도 방해가 됩니다. 가장 신뢰했던 부모로부터 거부당한 상처가 ‘너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못돼!’ ‘너는 언젠가 또 버림받을 거야!’ ‘아무리 그래 봐야 아무도 너에게 관심 가져주지 않아!’ 그런 생각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도 배신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을 멀리합니다. 친하게 지내려는 마음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또 상처받을지 모르니 적당히 거리를 둬!’ ‘사랑하려다가 또 상처받을지 모르니 사랑 같은 것은 하지 마!’ 그렇게 속삭이는 소리 때문에 친하게 지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가족끼리도 그렇습니다. 가장 조건 없이 사랑하고, 그 어떤 허물을 가졌다 하더라도 서로 용납해 주어야 할 관계가 가족 아닙니까? 그런데 내 안에 쓴 뿌리가 남아 있으면 가족에게도 상처를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족끼리도 거리를 두게 되고, 내 맘에 들지 않을 때에는 화를 내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래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쓴 뿌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안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쓴 뿌리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쓴 뿌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안에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쓴 뿌리가 자라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하려면 우리 마음에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부끄러운 우리를 책망하지 않고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흘러넘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은혜를 한 번 맛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사랑과 은혜가 내 마음에 채워지도록 은혜를 사모하며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내 안에서 메마르면 반드시 쓴 뿌리가 고개를 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성처를 주고, 상처를 입게 만들 것입니다. 쓴 뿌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사랑과 은혜로 채우는 것입니다.

  또 하나 가족들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우리 마음에 있는 쓴 뿌리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은 곳이 가정입니다.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용납합니다. 병들었다고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병든 이를 보며 가슴 아파합니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족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족함을 품어주고 용납해 줍니다. 지금은 부족할지라도 점점 성장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린아이같이 연약한 우리를 품에 안으시고 성장하기를 기다려주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가족 간에 서로를 품어주고 사랑하면서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를 이겨내도록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서로가 성처받지 않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화평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어떤 이의 글을 그대로 읽어드립니다. ‘아내의 빈자리’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아내가 어이없이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 지금도 아내의 자리가 너무 크기만 합니다. 어느 날 출장으로 아이에게 아침도 챙겨주지 못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날 저녁 일곱 살 난 아이와 인사를 나눈 뒤 양복 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침대에 벌렁 누워 버렸습니다. 그 순간 뭔가 느껴졌습니다. 빨간 양념국물과 손가락만한 라면이 이불에 퍼질러져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컵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붙잡아 장딴지며 엉덩이며 마구 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하며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의 울음 섞인 몇 마디가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빠가 가스레인지 불을 함부로 켜서는 안 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부어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리려고 식을까 봐 이불 속에 넣어 둔 것이라고... 가슴이 메어 왔습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엉엉 울었습니다. 일 년 전에 그 일이 있고 난 후 저 나름대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얼마 전 아이에게 또 매를 들었습니다. 일하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회사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고... 너무 다급해진 마음에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찾았죠. 동네를 이 잡듯이 뒤지면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놈이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더군요. 집으로 데리고 와서 화가 나서 마구 때렸습니다. 하지만 단 한 차례의 변명도 하지 않고 잘못했다고만 빌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유치원에서 부모님들을 불러놓고 재롱잔치를 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아이는 유치원에서 글자를 배웠다며 하루 종일 자기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글을 써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아이는 학교에 진학했죠. 그런데 또 한 차례 사고를 쳤습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우리 동네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주소도 쓰지 않고 우표도 부치지 않은 채 편지 300여 통을 넣는 바람에 연말 우체국 업무에 지장을 끼친다고 온 전화였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또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불러서 또 매를 들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맞는데도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잘못했다는 말만 하더군요. 그리고 우체국으로 가서 편지를 받아 온 후 아이를 불러놓고 왜 이런 짓을 했냐고 하니 아이는 울먹이며 엄마한테 쓴 편지라고. 순간 울컥하며 나의 눈시울이 빨개졌습니다. 아이에게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그럼 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냈느냐’고. 그러자 아이는 그동안 우체통에 키가 닿지 않아 써오기만 했는데 오늘 가보니깐 손이 닿아서 다시 돌아와 다 들고 가서 넣었다고.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다.’고. ‘다음부턴 적어서 태워 버리면 엄마가 볼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밖으로 편지를 들고 나간 뒤 라이터 불을 켰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 하나의 편지를 들었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했어. 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한테 말하면 엄마 생각날까 봐 말하지 않았어. 아빠가 날 막 찾는 소리에 그냥 혼자서 재미있게 노는 척했어. 그래서 아빠가 날 마구 때렸는데 얘기하면 아빠가 울까 봐 절대로 얘기 안 했어. 나, 매일 아빠가 엄마 생각하면서 우는 것 봤어. 근데, 나는 이제 엄마 생각이 안 나. 아니, 엄마 얼굴이 기억이 안 나. 보고 싶은 사람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자면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아빠가 그랬어. 그러니깐 엄마 내 꿈에 한 번만 나타나 줘. 그렇게 해줄 수 있지, 약속해야 돼.”

  편지를 보고 또 한 번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아내의 빈자리를 제가 채울 순 없는 걸까요? 시간이 이렇게 흘렸는데도. 우리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는데 엄마 사랑을 못 받아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이지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 크기만 합니다.

  세상에는 그렇게 사랑받아야 할 사람이 사랑받지 못한 채 아픈 가슴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사랑 베풀기에 결코 주저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하기를 원하시지만, 동시에 우리 가정에도 그 평화가 이루어지길 원하십니다. 이해와 배려가 가장 먼저 실천되는 곳이 가정입니다. 화평을 이룰 첫 번째 공동체는 가정입니다. 화평이 이루어진 가정, 거기에서 우리는 천국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 2020년 5월 30일 주일낮예배 – 유치부-아동부 주관으로 드리는 전교인연합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