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여주셨습니까?

< 본문 – 열왕기하 20:12-15 >

  히브리대학교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1976-)는 현생하는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꿈꾸는 미래의 인간을 호모 데우스(Homo Deus)라고 정의했습니다. ‘호모 데우스라’는 말은 신이 되려는 인간, 신이 되고 싶은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불멸과 신성을 추구하며 점점 신의 경지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유발 하라리의 발칙한 정의에 도전하는 정의를 내린 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작가인 한민수 씨입니다. 그는 2018년 작품전시회를 하면서 그 주제를 호모데웁스(HOMODEOOPS)라고 정했습니다.(사진1) ‘호모데웁스’라는 말은 ‘실수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유발 하라리가 인간을 신이 되려는 인간인 호모 데우스라고 정의한 것에 빗대어 인간은 ‘호모 데우스’가 아니라 ‘호모 데웁스’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 이전의 작품에서도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의 모습에서 눈이나 코나 입을 그려 넣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인간을 그렇게 묘사한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종종 실수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실수가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수는 우리 인간에게 때로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실수를 통해서 새로운 제품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실수를 통해서 성장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엉뚱한 실수가 분위기를 반전시켜 유쾌하게 만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의 실수를 통해서 큰 교훈을 얻기도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실수는 그런 큰 의미를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신이 되려는 호모 데우스이기보다는 그냥 실수하는 인간(호모데웁스)로 남는 것이 더 인간답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참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실수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실수할 때마다 죄책감에 빠지거나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래 실수하니까 나는 인간이지’라고 스스로 위안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실수하지 않고 산다면, 그래서 누군가에게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 완벽한 모습만 요구한다면 우리들의 세상 사는 삶이 굉장히 팍팍할 것입니다. 팍팍한 세상살이에서 때론 실수하고 때론 허물을 갖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 삶에 여유를 주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에 뭔가 빈 공간이 있고 때로는 뭔가 허접해 보이는 것이 누군에겐 큰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수하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실수하는 것을 너무나 지당한 것처럼 정당화할 수만은 없습니다. 정작 중요한 일에서는 실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실수가 모두 실패는 아니지만 때로는 실수가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기고 하고, 작은 실수가 엄청난 손해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실수하려 하기보다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실수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간의 이야기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400년 동안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광야생활 40년을 마치고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처음 점령해야 할 성읍이 여리고였습니다. 여리고 성읍은 가장 오래된 고대도시 가운데 하나였고, 당시에도 성벽이 두 개의 층으로 두껍고 견고하게 쌓여져 있는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전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기적 같은 방법으로 성벽이 무너져내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단단히 당부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과 그 가운데 있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바치라’(헤렘)는 말씀은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성읍을 점령한 후에 어느 것도 개인 소유로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아간이라는 사람이 여리고 성을 점령하면서 탐욕에 눈이 멀어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의 금덩이 하나’를 몰래 빼돌려 자신의 장막에 감추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은 다음 점령지인 아이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전쟁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아이성 전쟁에서 패한 원인을 찾다가 아간이 헤렘으로 드려진 하나님의 것을 몰래 빼돌린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아간은 아골골짜기에서 백성들의 돌에 맞아 죽고, 그가 훔친 물건들은 모두 불태워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아간이 저지른 짓을 단순히 실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수가 크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실수가 큰 범죄가 되는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히스기야의 모습입니다. 히스기야는 스물다섯 살에 남유다의 열세 번째 왕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된 후 그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열왕기하 18:6-7) 그렇습니다. 성경의 평가대로 한다면 히스기야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 때에 방치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케 하는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역대하 29장) 그러나 그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앗수르 제국이 세력 확장을 하면서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유다까지 침공해 온 것입니다. 그 때 히스기야는 앗수르 제국과 맞서 싸울 힘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여 앗수르 제국의 군사들을 물리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왕이 된 지 14년째, 그가 39세가 되었을 때 죽을 병에 걸리고 맙니다. 그 때도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이사야 39:1절은 조금 다르게 말씀합니다.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무엇이 다른지 아셨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벨론 왕이 사신들을 보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는 ‘병들었다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더 맞는 표현일까요? 똑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역대하 32장의 기록에 의하면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즉 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적이 일어난 후에 바벨론에서 사신들이 와서 그런 이적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들었다가 나음을 입은 후에 바벨론의 사신들이 히스기야를 방문한 것입니다.

  그런데 방문한 바벨론 사신들에게 히스기야가 한 행동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엄중하게 책망하십니다. 히스기야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들었다가 기적적으로 나았다고 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문제는 방문한 바벨론 사신들에게 히스기야가 궁궐에 있는 창고의 구석구석까지 모두 보여주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왜 그것이 문제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 나오는 표현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13절에서는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들에게 자기의 보물고에서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을 보여주었고,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의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히스기야가 그것을 보여준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것들을 바벨론 사자들에게 보여주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히스기야의 왕궁 창고에 있는 그 보물들이 어디에서 얻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유다를 침공했을 때 말씀드린 것처럼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대적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여러 성읍들이 파죽지세로 앗수르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뿐이었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에게 항복한다는 의미로 온갖 보물들을 바쳐야 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의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열왕기하 18:15-16) 앗수르의 공격을 받았을 때 히스기야는 엄청난 금은보화를 앗수르 왕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비록 나중에 앗수르의 185,000명의 대군을 무찌르기는 했지만, 히스기야의 곳간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벨론 사신들이 방문했을 때에는 히스기야가 자랑할 만큼 많은 보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보물을 곳간에 쌓아놓을 수 있었을까요? 히스기야가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군대를 섬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 나라에서 히스기야를 존경하며 예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자기들은 앗수르 제국의 침공에 속절없이 당해야 했는데,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치자 히스기야가 위대하게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주변 나라들이 히스기야에게 온갖 예물들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역대하 32:23) 그래서 히스기야 왕궁의 곳간 창고에 금은 보화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히스기야의 왕궁 곳간에 그렇게 많은 보물들이 쌓여있게 된 것이 누구 덕분입니까? 히스기야 자신의 공적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 때문입니다. 히스기야 군대가 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보내셔서 하룻밤 사이에 185,000명의 대군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사실상 앗수르 대군을 물리치는데 히스기야가 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기에 앗수르 대군을 물리쳤다는 것 때문에 주변 나라들로부터 히스기야가 존귀하게 되고 많은 예물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들에게 자신의 왕궁 곳간 창고에 쌓여 있는 보물들을 보여주면서 뭐라고 해야 합니까? ‘이 모든 것은 내가 섬기는 하나님, 만군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물리쳐 주셨기에 얻은 것입니다.’ 그렇게 말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에게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왔습니까?’라고 물을 때 히스기야 왕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여러분, 이 말을 할 때 히스기야의 얼굴을 상상하실 수 있습니까? 어떤 얼굴, 어떤 태도였을까요? ‘이렇게 내 명성이 멀리까지 퍼졌습니다. 먼 바벨론에서도 나의 위대함에 존경를 표하기 위해서 이렇게 사신까지 보낸 것입니다.’ 그런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왕궁 곳간의 보물들을 보여주면서 히스기야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 베푸셔서 이런 은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보물들을 보여주면서 이웃 나라들이 나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겼는지, 내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자랑하며 곳간의 구석구석을 소개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신들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물리쳐 주셨고, 그 하나님께서 죽을 병에 걸린 자신을 살려주셨다고 간증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부귀영화, 자신의 존귀함을 바벨론 사신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왕궁 곳간의 창고를 구석구석 보여주었다는 것은 바벨론 사신들 앞에서 자신의 존귀함을 자랑했다는 말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렇게도 좋은 신앙을 가졌던 히스기야가 왜 그런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히스기야는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않은 사람’ ‘모세에게 명령한 것을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바꾼다면 히스기야는 정말 믿음이 좋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의 침공을 물리치고, 주변 나라에서 자신을 존귀하게 여겨주니까 마치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된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자신의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 군대를 섬멸시켜 주신 것이 문제입니까? 아니면 죽을 병에 걸린 히스기야를 고쳐주신 것이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어느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이적을 베풀어주시는 크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크신 은혜를 경험한 후에 그 은혜를 여전히 은혜로 간직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신앙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크신 은혜를 경험했다 하더라도 그 은혜를 은혜로 간직하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실수하고 죄악에 빠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때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브리서 6:4-6) 그렇습니다. 하늘의 빛을 경험하고, 은사를 맛보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했다 하더라도, 또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깊이 경험했다 하더라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신앙을 떠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걸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맛보고도 신앙에서 벗어나 타락하면 그것은 곧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것과 같이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은혜를 경험하지 못해서 문제입니까? 때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깊은 은혜를 경험하고 픈 강렬한 영적 소망이 있어 그 은혜 안에 거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깊은 은혜, 크신 은혜를 경험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죄악에 빠질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큰 은혜를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그 은혜의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했습니다. 그것을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31) 사도 바울이 자신의 인생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복음의 능력을 갖고 살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날마다 자아를 십자가 앞에 못 박았고, 날마다 죽는 경험을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주님만이 나의 전부이고,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만이 나의 자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고백으로 살았기에 그는 마지막까지 교만하지 않고 자신이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교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때는 우리가 약해질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내가 무언가를 가졌다고 생각될 때, 그래서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뭔가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교만이 우리 마음에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내 안에 있는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내가 쌓아놓은 뭔가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히스기야가 그 위기를 넘지 못했습니다.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죽을 병에 들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창고에 금은보화가 가득 차고 먼 바벨론에서까지 자신에게 사신을 보낼 정도로 존귀해질 때, 그 때 히스기야의 마음에 교만에 찾아들었습니다.

  교만해져서 자신을 자랑했던 히스기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자랑하던 모든 것을 그대로 바벨론에 빼앗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바로 이어 나오는 17절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그런 일을 반드시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은혜로 내 안에 담지 못하고 자랑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뽐내며 자랑하는 그것을 언젠가 빼앗기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있는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12절에서 경고하십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 그래서 내 안에 뭔가 자랑할만한 것이 있을 때 조심하십시다. 내게 있는 자랑거리는 나를 자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남들보다 뭔가 특별한 은혜를 경험하셨습니까? 그건 나를 자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뭔가 보여줄 것이 있으십니까? 그런 욕구가 내 안에서 불일 듯 일어납니까? 그 때 조심해야 합니다. 내 안에 뭔가 보여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헤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남들 앞에서 어깨를 우쭐거리고 싶은 때가 있으십니까? 그 때는 나를 더욱 낮추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나의 위대함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나의 능력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내게 은혜 주신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기를 원합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라디아서 6:14)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린도후서 11:30) 나의 약함 속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 2021년 10월 10일 주일낮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