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들의 겉옷을!

< 본문 – 마가복음 11:7-10 >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교인들을 부르는 독특한 호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약도’(Covenanters)입니다. 그들을 그렇게 부르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종교개혁자 장 깔뱅(Jean Calvin, 1509-1564)의 영향을 받은 존 낙스(John Knox, 1513-1572)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청교도의 창시자’라고 불리기도 한 존 낙스는 교황중심의 서방교회와 국가중심의 영국 국교회가 바른 복음 위에 서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깔뱅처럼 바른 복음 위에 교회를 세우고자 노력했던 종교개혁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존 낙스를 비롯한 개혁자들에 의해서 스코틀랜드 의회는 로마 가톨릭의 신앙과 제도를 철폐하고 종교개혁 교회를 세우기 위해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게 하고, 작성된 신앙고백서를 승인했습니다. 그런데 제임스 1세(James I, 1566-1625)와 그 뒤를 이은 찰스 1세(Charles I, 1600-1649)에 의해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 두 왕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권이 통합된 1603년 이후, 국가와 교회를 손에 쥐고 마음대로 하려 하는데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걸림돌이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찰스 1세는 ‘왕인 자신은 신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부여받은 자이기에 자신이 교회의 머리이며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다’는 왕권신수설(Divine Right of Kings)을 주장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찰스 1세는 자신의 충직한 신하인 켄터베리 주교 윌리엄 로드(William Laud, 1573-1645) 등을 통해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강단 설교를 금지시키고, 의식 및 예복을 통일시키려고 기도예식서와 교회예식서를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 강압적으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1637년 7월 23일 존 낙스의 무덤이 있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성 자일스 성당(St. Giles Cathedral)에서 진행된 미사에서 국교회의 예배규범이 낭독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미사에 참석했던 제니 게디스(Jenny Geddes, 1600-1660)라는 여인이 일어나서 “마귀가 당신의 배 속에 가득한, 거짓말하는 도둑, 어떻게 감히 내 귀에 미사가 들리게 하는가?”라고 외치면서 사제를 향하여 의자를 집어 던지게 됩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국교회화에 대한 저항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되었고, 다음 해인 1638년 2월 28일 그레이프라이어 교회당(Greyfriars Kirk)에 모여 ‘영국 국교회의 강요 정책에 굴복하지 않고 종교개혁 정신을 따라 탄생한 장로교회 신앙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국가 언약’(National Covenant)이라는 문서에 서약하게 되고, 스코틀랜드 국민 약 30만 명이 이 문서에 서명하게 됩니다. 이 문서에 서명한 사람들을 ‘언약도’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로부터 시작해서 50년 동안(1638-1688년) 종교개혁 신앙을 지키기 위한 이 언약도들과 영국 정부 사이에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교회의 독립성을 무시한 찰스 2세(Charles II, 1630-1685)의 학정과 종교탄압은 갈수록 강도가 높아져갔고, 결국 언약도들의 봉기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 전투로 인해 약 4-500 명에 이르는 언약도들이 거룩한 피를 쏟으며 전사했고, 1200명의 언약도들은 포로가 되어 그레이프라이어 교회 뜰에 있는 지붕 없는 감옥<사진1>에 갇히게 됩니다. 이 지붕 없는 감옥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국 정부에 대항하는 자들의 처참한 결과가 무엇인지 보고, 정부에 대항하지 말라고 언약도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에게 가혹한 고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스코틀랜드 날씨는 너무나도 험악하여 밤마다 비가 오기에, 지붕 없는 감옥에 갇혀 있던 언약도들은 헐벗고 굶주린데다가 맹렬한 추위와도 싸워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너희들이 배교하고 도망치고 싶으면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다’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배고픔과 추위에 떨면서 죽어가느니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담장을 넘어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지 몰라도, 담장을 넘는 순간 그것은 곧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밤마다 비가 내리고 극심한 추위에 몸을 떨어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언제 굶주려 죽을지, 아니면 목이 잘려 죽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극심한 상황에서 감옥의 담장을 넘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갇혀 있던 1,200명의 언약도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감옥의 담장을 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냈고, 목이 잘려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그렇게 1661년부터 1668년까지 불과 7년 사이에 스코틀랜드에서만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무려 18,000명의 언약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언약도! 우리에게 참 많은 도전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지붕 없는 감옥에 갇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탈출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탈출하는 대신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내며 순교의 길을 기꺼이 갔습니다. 그들의 신앙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가 평안하게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도전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서 과연 무엇을 얼마나 포기하며 살았나?’ ‘어떤 순간에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다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발걸음으로 여리고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오시기 전날 베다니에서 하룻밤을 머무신 후에 종려주일 아침 베다니에서 출발하여 벳바게게 이르렀을 때에 제자 둘을 보내시며 ‘맞은편 마을로 가서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가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는 그 나귀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벳바게에서부터 나귀를 타시고 감람산을 거쳐 기드론 시내를 통과하여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그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 환영하는 무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펴놓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무리의 대다수가 그렇게 했다.’(마태복음 2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다수’라는 말은 대부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들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나귀타고 오시는 길에 자기들의 겉옷을 펼쳐 놓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왜 제자들은 나귀의 잔등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었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을 환영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왜 자기들의 겉옷을 길바닥에 펼쳐놓았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그들이 외친 말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놓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이 말 뜻을 우리는 잘 압니다. ‘호산나’라는 말은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메시아이신 당신께서 지금 자기들을 구원해 주시라는 소망을 담은 노래입니다. 그들이 기대하고 바라고 소망하는 나라는 10절에서 말씀한 것처럼 ‘다윗의 나라’입니다. 다윗의 나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복하고 싶은 온전한 나라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야만 회복이 가능한 나라가 다윗의 나라입니다.

그들은 불과 며칠 전에 그 다윗의 나라를 회복할 메시아의 모습을 예수님에게서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 마가복음 10:46절 이하에 나오는 바디매오의 사건을 통해서 말입니다. 시각장애인이자 거지로 살던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자신을 고쳐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을 향해 거듭거듭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고, 예수님은 그렇게 부른 바디매오를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그의 눈을 고쳐 보게 해 주셨습니다. ‘자손의 자손’이라는 말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나라’라는 말과 맥을 같이 합니다. 하나님의 메시아가 통치하시는 나라가 다윗의 나라라고 한다면, 그 나라를 이루실 분은 다윗의 자손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4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메시아가 오시면 하실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눈 먼 사람이었고 가난한 사람이었던 바디매오를 고쳐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바디매오의 일을 본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기대하던 메시아가 맞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자, 사람들은 마치 새로운 왕을 맞이하듯이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예수님께 기대하는 바가 무척이나 컸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겉옷을 나귀의 등에 얹은 것입니다. 백성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길바닥에 펼쳐놓았습니다.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맞이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왕을 영접하거나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 백성들이 왕에게 보여줄 수 있는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최고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열왕기하 9장에 보면,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후를 새로운 왕으로 모실 때에 자기들의 옷을 가져다가 예후의 발 밑에 깔며 ‘예후는 왕이라!’고 외쳤습니다.(열왕기하 9:13) 마찬가지로 지금 제자들이나 무리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맞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자들이 예수님이 타신 나귀에 등에 얹어드렸던 겉옷,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목에 펼쳐드렸던 그 겉옷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겉옷은 생명만큼이나 중요한 것입니다.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구약시대나 예수님 시대나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겉옷과 속옷을 한 벌씩만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율법에서는 겉옷을 저당잡았을 때는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22:26-27절입니다.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낮에는 자신의 몸에 걸치는 겉옷이지만, 추운 밤이 되면 그것은 자신의 알몸을 가릴 이불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 겉옷이 없으면 그는 추위에 떨어야 하고, 그런 추위 속에서 원통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옷을 저당잡은 사람에게 벌을 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에게 겉옷은 생존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겉옷은 재산 1호이자, 생명이나 다름이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중요한 겉옷을 벗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중요한 분으로 인정한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내 생명을 다 드릴만큼 당신은 내게 소중합니다.’라는 고백이 겉옷을 벗어 드리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동안 로마의 압제로 인한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바리새인들은 정치와 야합해서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의를 내세워, 자기들처럼 하지 못한다고 백성들을 정죄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최고의 종교지도자라고 하는 대제사장은 장인과 사위가 서로 번갈아가며 대제사장 직을 수행하느라 동시대에 대제사장이 두 명이나 존재하는 희안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은 로마 황제와 왕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하층민들이었습니다. 일터에 나가 일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어 굶주려야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벳새다에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 남자만 오천 명이 모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그렇게 모인 것이 아닙니다. 밖에 나가 일해서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사람들이 일거리가 없으니까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여주시니까, 그 다음 날에도 먹을 것을 기대하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한복음 6:26) 그만큼 그들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너무나도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가난을 염려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 정치 지도자들, 가진 자들, 어느 누구도 그런 백성들의 아픔이나 고통을 헤아리지도 않았고, 공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던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내어놓는다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내어놓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런 마음으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서 말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자신들의 생명만큼이나 중요한 겉옷을 벗어드리며 예수님을 맞이했다면 그런 마음을 계속 간직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마땅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변하고 말았습니다.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드디어 메시아의 나라가 오겠구나’ 생각했던 제자들은 에수님께서 붙잡히실 때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맞으며 다윗의 나라가 회복되기를 꿈꾸던 사람들은 불과 며칠 만에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변했는지 아십니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뭔가 큰 권력의 자리에 오르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던 노상에서 ‘누가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을 것인가?’를 놓고 자기들끼리 다투기도 했습니다.(마가복음 10:35-45) 그런데 예수님께서 권력의 자리에 오르시기는커녕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군병들에게 붙잡혀 가시자, 더 이상 예수님께 기대할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도 붙들려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모두 주님을 버려두고 도망쳐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자기들의 왕이 될 분으로 기대했습니다. 특별히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고 난 후에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요한복음 6:15) 그때 예수님께서 조용히 그들을 피해버리셨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분이 우리의 임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들어오시기 바로 직전에 바디매오를 고쳐주시면서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불러도 예수님께서 바디매오를 꾸짖기는커녕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지금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면 뭔가 개벽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입니다. 다윗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예수님께서 뭔가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겉옷, 목숨과도 같이 소중한 그 겉옷을 벗어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에 펴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자기들이 기대하는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고, 어쩌면 ‘이런 사람을 우리가 왕으로 기대했단 말인가?’라는 배신감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은 늘 한결같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뜻하는 신약성경의 언어가 ‘피스티스’(πίστις)인데, 이 말은 신실함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신실함이란 늘 한결같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늘 주님을 향해 신실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신실함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가졌던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며 사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나 논리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고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순종하여 따르는 것이 신실함이고 믿음입니다.

  자신들의 겉옷을 펴드렸던 제자들이나 환호하는 무리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그들은 자기들이 처한 상황이 바뀌자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등졌습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께 한결같은 믿음을 보여야 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맨 처음에 말씀드린 스코틀랜드의 언약도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그들은 엄청난 변화의 회오리 한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로마가톨릭와 영국의 국교회의 억압 속에서 올곧은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냈습니다. 얼마든지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게끔 지붕 없는 감옥에 가두었지만, 그들은 어느 한 사람도 신앙을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목 베임을 당하는 순교의 길을 묵묵히 참아냈습니다. 그들은 현실과 타협하지도 않았고, 탈출하고 싶은 욕망과 타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권력에 무릎 꿇지도 않았고, 혹독한 환경에 자신을 굴복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누구를 더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입니까? 한때는 자신의 전부와 다름이 없는 겉옷까지 벗어 주님을 맞이했지만, 상황이 바뀌자 주님을 버리고 배신한 제자들이나 군중들의 모습이 혹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기도에 응답해 주실 때에는 좋은 하나님이라고 힘껏 목소리를 높여 찬양하다가도, 내 삶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들이닥치면 찬양하던 목소리가 원망의 소리로 바뀌어버립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큰 은혜를 경험했을 때에는 내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드릴 것만 같다가도, 그 감격이 식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이기적인 태도로 돌변해버립니다.

  여러분, 신앙은 한결같아야 합니다.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은 늘 성숙해져야 합니다. 환경 때문에 흔들리고, 감정 때문에 흔들리는 것은 온전한 신앙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위해 우리의 겉옷을 벗어드릴 수 있습니까? 나의 가장 소중한 것, 내 생명과도 같은 것, 내 재산 목록 1호와 같은 것을 기꺼이 벗어 드릴 수 있습니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런 믿음과 마음을 끝까지 간직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끝까지 변함없는 믿음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런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믿음, 상황에 맞춰가려는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볼 때 때때로 속상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잘 하고 싶은데 잘 안되는 안타까운 마음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믿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분노하기 앞서 그런 나의 모습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인정해야 합니다. 내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인정하고, 그런 나의 모습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겉옷을 내어드린 제자들, 겉옷을 길에 펼쳐드린 군중들, 그들이라고 배신하고 싶었겠습니까? 자신들의 연약함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비극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사십시다. 겉옷을 내어드린 그 신앙이 변함없는 신앙이 되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그런 연약한 우리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으로 사십시다. 우리를 하나님께 맡겨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실 것입니다.

< 2022년 4월 10일 주일낮예배-종려주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