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은총 안에 사는 성도

<본문 - 이사야 53:5>

지금 지구촌은 전쟁의 공포 속에 있습니다. 지난 2022년 2월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생한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 전쟁으로 인해 세계는 식량 공급 부족으로 인해 곡물 가격이 급등했고, 러시아에서 가스를 들여오지 못한 유럽에서는 물가가 치솟기도 했습니다. 정확한 통계가 나와 있진 않지만 2년여의 전쟁 기간 동안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러시아에서는 병사 20만 명이 사망했고, 우크라이나에서도 약 7만여 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전쟁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또다시 전세계에 충격을 주는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하마스 사이에 발생한 전쟁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하마스를 완전히 박멸하기 전까지는 전쟁을 멈출 의지가 없다고 밝힘으로써, 이 전쟁 역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전쟁의 특성상 민간인이나 어린아이들이 희생의 대상이 되고 있기에, 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까지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두려운 상황에서 우리라고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경제적인 어려움이 곧 우리 사회를 몰아칠 것이라고 예고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올해 4월에 치러질 총선 때문에 수면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만, 총선을 치르고 나면 건설사를 중심으로 대량 부도 사태가 벌어질 것이고, 올해 하반기에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오늘날의 세계를 ‘글로벌 시대’라는 불렀습니다. 세계가 이제는 먼 이웃이 아니라, 마치 내 옆집처럼 가까워졌다는 뜻입니다. 경제활동이나 문화의 교류 등이 국가적 장벽 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라는 말이 우리에게 희망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전세계인들이 더욱 친밀하게 연결되어 서로의 벽이 허물어져 더욱 가깝게 느껴지고, 먼 나라가 이웃 나라처럼 느껴질 것이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까워질수록 지구촌은 더욱 대립과 갈등을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문화는 글로벌화되어 가고 있는데, 나라마다 민족주의를 앞세워 자기들의 이익에는 철저하게 장벽을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도,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싸움을 걸고 거기에 맞서 이스라엘이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감행한 이유도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건 비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국 내에서 갈등과 폭동과 피비린내 나는 내전도 있었습니다.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 그리고 우리에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인도 북동부에서 일어난 폭동 등으로 같은 나라 안에서도 서로에게 총부리를 대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 간의 전쟁, 내전, 폭동 등으로 인해 세계 곳곳에는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난민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2023년 현재 난민의 수는 무려 3,683만 명이 넘어섰습니다. 그들은 무고한 피해자들입니다.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사이에만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 타국에서만 갈등이 문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이념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젠더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 빈부의 갈등 등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같은 시대에 같은 민족으로 같은 땅에 살고 있는 우리조차도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해 갈등이 생겨나고, 서로에게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아픔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새해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마냥 기쁨과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가 더욱 깊이 느껴야 하는 것은 책임감입니다. 전쟁의 고통을 안타까워하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갈등 상황을 비판하고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전쟁을 막을 힘은 없습니다. 사회적 갈등을 내 힘으로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세계 평화를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있습니다. 그것은 그런 문제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는 것입니다. 우리 힘을 풀어낼 숙제는 아니지만, 그것이 우리의 숙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왜 우리에게 숙제일까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갈 주체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시대의 아픔을 풀어낼 능력이나 지혜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 갈등과 아픔을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고민입니다.

그 고민을 풀어갈 시발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걷어내는 것입니다. 이 땅에 이런 고통이 찾아온 까닭은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 인간의 죄악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고통은 인간의 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죄성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욕심과 탐욕과 거짓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아픔을 가져오고, 갈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피조물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마치 자기들이 지구촌의 주인이고 자아의 주인인 양 하나님 노릇을 하려 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때를 따라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시고 모든 것을 섭리하실 수 있는 지혜가 있으시고 능력이 있으시기에 주인이 되셔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혜도 부족하고 능력도 없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 노릇을 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도자 자질이 없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 나라와 그 공동체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그 앞날에 먹구름만 잔뜩 끼게 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 속에 신음하고 아파하고 절망에 사로잡힌 이 땅을 긍휼히 여기서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 가운데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 땅을 치유하시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악과 허물로 인해 죽음을 향해 가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찔림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하늘 백성을 삼아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당신의 몸으로 다 받아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구원이 우리에게 치유의 시작입니다. 죄로 인해 찢겨진 마음이 회복되고,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우리를 가깝게 하시고, 죄악된 마음에 가득한 욕망을 걷어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도록 우리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면서 우리 인간은 마음과 영혼에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 깨어진 마음으로 인해 우리는 고통을 안고 세상에 태어나 고통 중에 세상을 살다가 고통 중에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고통 중에 살아가는 우리 인간을 치유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보내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으셨고,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죄의 값을 대신 치르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 일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이 겪고 있는, 그리고 우리 시대에 남겨진 그 고통을 치유해 주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치유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죄악의 고통에서 해방되었고, 마음의 상처를 싸매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그 치유의 경험을 계속해 이어나가야 합니다. 우리 내면의 상처나 삶에서 주어지는 상처는 매일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치유의 자리입니다. 찬송은 치유의 통로입니다. 기도는 치유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면서 매순간 치유의 경험하는 치유의 은총 안에 살아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받은 우리는 세상을 치유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신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 치유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고 말씀하시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 12:3)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신 이유는 우리를 통해서 세상이 복을 받게 하시려 함입니다. 그 복 가운데 하나가 치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세상과 이웃을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것처럼, 우리도 먼저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신 것처럼, 우리도 아픈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치유의 은총 안에 살아가는 성도의 당연한 삶입니다.

  이번 한 해는 우리의 아픔이 먼저 주님의 은혜 안에서 치유 받고, 그 치유 받음의 은총으로 이웃을 사랑하여 여전히 고통과 아픔 속에 신음하는 나의 이웃을 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나 자신이 온전한 신앙인으로 회복되기를 기도하고, 그런 나를 통해서 누군가의 아픔을 치유해가는 치유자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전쟁이 그치도록, 테러나 살인의 비극이 멈추도록, 자연재해로 고통당하는 이웃이 없도록, 차별당하는 이가 없도록, 정의가 살아나도록, 치유의 은혜가 온누리에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나의 작은 신앙의 몸짓을 통해 누군가에게 내가 경험한 치유의 은혜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게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과 오늘의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나는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전쟁을 멈추게 해 주시도록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내 마음에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작은 전쟁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경쟁이 만든 사회에 희생자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사회적 갈등을 풀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이 땅에 갈등을 사라지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기도할 뿐만 아니라, 주님이 그러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 수는 있습니다. 주님은 당시 사회로부터 심하게 차별받던 여인들, 나병환자들, 세리들, 창녀 등을 차별하지 않고 만나주셨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내 주변의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함으로, 차별로 인해 마음 아파 눈물 흘리고 고통당하는 그들의 치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올 한 해 우리, 더욱 깊은 치유의 은혜를 경험 하십시다. 예수님을 십자가 내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안에 온전히 머무르십시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의 은혜 안에 머무르며, 나를 치유하시는 주님을 깊이 경험 하십시다. 내가 치유되면 나는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는 치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헨리 나우엔의 표현처럼 ‘상처받은 치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상처를 치유받은 경험을 통해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 치유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가득하여, 내 죄가 용서받음으로 내 마음이 치유되고, 우리의 가정도 치유되고, 세계 열방도 치유되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상처받은 치유자입니다. 상처받은 치유자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