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욕 – 수치인가 기쁨인가?

< 본문 – 사도행전 5:33-42 >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표현주의 화가인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이 그린 ‘이삭의 희생’(The sacrifice of Issac)이란 제목이 붙은 그림이 있습니다.<그림1> 이 그림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창세기 22장을 배경으로 그린 것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창세기 22:2)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에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가서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하고, 그런 아브라함의 모습에 하나님께서도 감동하셨는지 이삭 대신 숫양을 번제로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하였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샤갈은 그 말씀을 다른 각도에서 읽어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했듯이 이삭도 아브라함에게 순종했고, 그래서 이 번제는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드려진 번제가 아니라 아들 이삭의 순종으로 드려진 번제였다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할 때 이삭의 나이가 정확하게 몇 살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야살의 책』에서는 그 때 이삭의 나이가 37세였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27세, 또는 ‘번제할 나무를 짊어지고 갈 정도’였으니 17-20세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삭의 나이가 몇 살이었느냐가 아니라, 100세가 훨씬 넘는 아버지 아브라함보다 젊은 이삭의 힘이 더 컸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만일 늙은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하여 번제로 드리려 할 때, 이삭이 자신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의 뜻에 거절하여 힘으로 저항했다면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결박하는데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순순히 번제단 위에 올라갑니다. 이 그림에서 샤갈은 그런 이삭의 순종을 강조하기 위해서 번제단 위에 누워있는 이삭의 손을 결박된 상태가 아니라 묶여 있지 않는 상태로 그렸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았다.’고 말씀하는데, 샤갈은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삭의 손을 결박되지 않은 모습으로 그린 것입니다. 이삭이 아버지에게 저항할 수 있음에도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벌거벗겨진 상태로 번제단 위에 누위 있는 이삭은 한쪽 눈은 뜨고 있고 한쪽 눈은 감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삭이 번제로 드려진 자신의 운명을 체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음 앞에 내몰린 두려운 순간에도 아버지가 하신 일을 다 보고 있으면서도 순종했음을 보여줍니다.

샤갈이 이 그림을 그린 이유가 있습니다. 샤갈은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내 벨라(Bella, 1895-1944)가 1944년 세상을 떠나자 피폐한 살을 살게 됩니다. 당대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복잡한 여성 편력과 문란한 사생활에 빠졌던 것에 비해 샤갈은 30여 년을 오직 아내 벨라만을 사랑하고, ‘평생토록 그녀는 내 그림이었다.’(샤갈이 벨라의 무덤 비문에 남긴 글)고 할 정도로 벨라는 그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런 아내를 떠나보낸 사걀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겪어내야 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던 딸 이다(Ida)는 직접 수소문하여 아버지의 새로운 반려자 바바(Vava, 1905-1993)를 소개해 줍니다. 바바는 샤갈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딸 이다가 아버지의 모든 것에서 손을 떼 것을 요구했습니다. 딸에게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으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너무나도 황당한 요구조건이었지만, 딸 이다는 아버지를 위해서 그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이 사실을 안 샤갈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의 남은 인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딸 이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 ‘이삭의 희생’이라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것입니다.

  샤갈은 딸 이다의 희생을 ‘이삭의 희생’으로 그렸을 뿐만 아니라, 그 희생을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림 오른쪽 위에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 넣었습니다.<그림2> 예수님의 십자가도 아버지 하나님을 위한 희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자신을 번제로 태울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에 오른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처형당하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역시 이삭처럼 그 고통과 능욕의 십자가를 비켜갈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꺼이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한복음 1:29)으로 오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마가복음 10:35) 말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특별히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누가복음 9:31)에 대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데, 가시던 도중에 세 번씩이나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종교 권력자들에게 붙잡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누가복음 9:51) ‘예루살렘을 향하여... 결심하셨다.’는 말씀을 직역하면 ‘예루살렘을 향하여 얼굴을 고정하셨다.’는 뜻입니다.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그 예루살렘을 향하여 얼굴을 고정시키시고,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곧장 올라가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굳은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의 길은 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은 굳은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예루살렘을 향하여 얼굴을 고정시키시고, 굳게 결심하고 올라가셨을까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셨을까요? 그건 바로 십자가 고난을 통하지 않고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걸 아셨기에 힘든 고난의 길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고난의 길을 회피하지 않으시고 당당하게 고난 속으로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그 고난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의 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러 기도하시러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마가복음 14:34)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힘드셨는지는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비록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여기까지 오셨지만, 막상 십자가를 앞에 두고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 예수님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디 그것 뿐입니까? 실제로 예수님은 온갖 고초를 다 당하셨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어내셔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조롱하고 비웃은 소리를 들으셔야 했고,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 외면당하셔야 했습니다. 밤새도록 불법 재판을 받으셔야 했고, 무자비한 채찍에 맞아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무거운 십자가를 친히 지시고 골고다에 오르셔야 했고, 십자가에 달려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고통도 참아내셔야 했습니다. 결국에는 십자가 고통 속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숨을 거두신 후에는 군병들이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그나마 남아 있던 피와 물을 다 쏟아내셔야 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의 길은 주님만 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살아계실 때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가야 할 길도 고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서 죽으신 것처럼, 주님의 제자인 우리도 우리에게 지워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주님의 뒤를 따라가면서 ‘누가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던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마가복음 10:39)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마시는 잔’은 고난의 잔입니다. ‘세례’는 내가 죽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제자인 우리는 주님처럼 고난의 길을 가야 할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나의 자아가 죽고, 내 욕망이 죽고, 내 자존심이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뒤를 따라 고난을 받는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죄악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난의 길’은 곧 믿음의 길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길을 가려는 사람은 고난을 감내해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고난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베드로전서 4:12-13)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불 시험’이라는 극심한 고난을 겪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이어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베드로전서 4:14)라고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고 치욕을 당한다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여기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권력자들이 사도들에게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하고 협박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들은 권력자들과 타협하거나 그들의 말을 따르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고, 자신들은 그 일에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들의 말에 타협하거나 그들의 위협 때문에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증인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도들이 권력자들의 요구를 거절하자, 권력자들은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본문 33절입니다.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감히 우리 말을 거역해!’라는 생각에 종교 권력자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리곤 사도들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말리엘을 통해서 사도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분명 가말리엘은 예수님 편도 아니고 사도들 편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자신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 올바른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조금 더 참고 기다려 보자.’고 제안하고, 상당히 영향력이 있던 가말리엘의 말을 듣고 산헤드린 공회가 사도들을 죽이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풀어줍니다. 그런데 그냥 풀어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40절에 나온 것처럼 그들은 사도들에게 채찍질을 했습니다. ‘채찍질을 했다’는 말이 우리에게는 그렇게 실감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옛날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곤장 몇 대 때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시 채찍은 그 끝에 동물의 뼛조각이나 쇳조각이 달려 있어, 채찍으로 때리면 그 뼛조각이나 쇳조각이 살에 박힙니다. 그리고 채찍을 잡아당기면 살에 박힌 뼛조각이나 쇳조각이 살을 찢어 피가나고, 심할 경우 뼈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 고통은 곤장을 맞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몸만 그렇게 상한 것이 아니라, 그 채찍에 맞으면 아픔에 대한 공포와 트라우마 때문에 채찍만 보아도 치가 떨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채찍질했다’(δερω)는 단어 자체도 원래는 ‘가죽을 벗기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채찍에 맞은 사람은 살가죽이 벗겨지고, 심한 채찍에 맞으면 뼈까지 드러날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채찍질을 한 후에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어쩌면 그 후에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복음을 전할 때마다 채찍에 맞았던 그 순간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런 채찍에 맞은 사도들의 태도가 남달랐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헤드린에서 권력자들에게 채찍질을 당했다면 그것은 굉장한 수치이고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채찍질을 당했다는 것은 죄를 지은 것이나 다름없이 대했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하고,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음에도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그들이 기뻐한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본문 41절)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욕을 받았다는 것에 기뻐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능욕 받는 것이 왜 기쁨이 될까요?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았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았다.’는 말은 ‘자격을 갖추었다’ ‘특권이 생겼다’라는 뜻입니다. 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하고 위협을 당하면서 ‘이제 우리도 진짜 예수의 제자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채찍질을 당하고 능욕을 받았다는 사실이 예수의 제자가 되는 자격, 예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너희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와야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제자가 되려면 내가 고난의 길을 간 것처럼 너희도 고난의 길을 가야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는 그게 무슨 말씀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데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성령 충만을 받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면서 그 말씀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에게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조롱을 당하시고 위협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곤 결국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그분의 제자인 사도들도 주님처럼 채찍에 맞고 위협을 당했습니다. 채찍에 맞으면서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보다 먼저 채찍에 맞으신 주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채찍에 몸이 찢기고 피가 나는 고통을 겪으면서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온 몸을 찢기시고 피를 쏟아주신 주님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리곤 ‘나같은 사람이 주님처럼 채찍에 맞을 수 있다니! 주님을 부인했고,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내가 주님의 진짜 제자가 되다니!’라는 생각에 감격했고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채찍에 맞고 능욕을 당하는 것을 제자됨의 자격을 얻은 것이라고, 그게 제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여기며 기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보다 평안의 때를 살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때론 비포장도로가 아닌 포장도로처럼 형통을 누리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남들보다 더 빨리 승진하게 하시고, 남들보다 더 부유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나에게 제자됨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됨의 자격은 고난 속에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고난을 당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채찍질을 당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제자됨의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에게 아무런 고난이나 희생 없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가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채찍에 맞으신 주님의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기에, 그 은혜는 우리에게도 깊은 고통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나를 힘들게 만들거나 내 마음을 고통 속에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십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마태복음 5:10-12) 천국을 향해 가는 우리의 발걸음에 박해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죄악이 만연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듦이 없다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의롭게 살려 한다면, 불의가 만연된 세상에서 빛의 자녀처럼 정직하게 살려 한다면, 부조리한 세상에 동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 한다면 우리의 삶에 고난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고난이 때론 채찍질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에 깊은 아픔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다. 신앙인의 삶은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이 그리하신 것처럼 고난의 길을 자처하여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번 주를 고난주간으로 보내게 됩니다. 고난주간에 고난받으신 주님만 생각하며 흘러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고난당하신 것처럼,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고난이어야 함을 기억하며 고난의 길을 당당하게 맞이하며 사십시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자신을 번제로 드리려 할 때에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여 아버지께 자신을 맡겼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고난의 길을 묵묵히 가셨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채찍질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그리고 기쁘게 여겼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의 제자로서 고난을 기쁨으로 받으며 살고 계십니까? 사도들처럼 우리도 주님의 이름을 위해 당하는 능욕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고 기쁨으로 받으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난주간에 주님의 고난뿐만 아니라, 나가 겪어내야 할 고난임을 기억하며 말입니다.

< 2024년 3월 24일 주일낮예배-종려주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