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은 아버지입니다.

< 본문 - 창세기 16:15-16 >

시인 이채 씨가 쓴 ‘아버지의 눈물’이란 시가 있습니다.

남자로 태어나 한평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며

떳떳하게 정의롭게

사나이답게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

남자보다 강한 것이 아버지라 했던가?

나 하나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위해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더라.

오늘이 어제와 같을지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희망으로

하루를 걸어온 길 끝에서

피곤한 밤손님을 비추는 달빛 아래

힘없이 걷는 발걸음 소리

소주보다 더 쓴 것이 인생살이더라.

변변한 옷 한 벌 없어도

번듯한 집 한 채 없어도

내 몸 같은 아내와

금쪽같은 자식을 위해

이 한 몸 던질 각오로 살아온 세월

애당초 사치스런 자존심은 버린 지 오래구나.

하늘을 보면 생각이 많고

땅을 보면 마음이 복잡한 것은

누가 건네준 짐도 아니건만

바위보다 무거운

무겁다 한들 내려놓을 수도 없는

힘들다 한들 마다할 수도 없는 짐을 진 까닭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도 소리가 없고

소리가 없으니 목이 멜 수밖에.

용기를 잃은 것도

열정이 사라진 것도 아니건만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이 더 많아

살아가는 일은 버겁고

무엇하나 만만치 않아도

책임이라는 말로 인내를 배우고

도리라는 말로 노릇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눈물이 없으니 가슴으로 울 수밖에.

아버지가 되어본 사람은 안다.

아버지는 고달프고 고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가정을 지키는 수호신이기에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약해서도 울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아버지는 혼자서 운다.

아무도 몰래 혼자서 운다.

하늘만 알고 / 아버지만 아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여러분은 어떤 아버지이십니까? 오늘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아버지로서의 권위가 거의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정에서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이고, 심지어는 가정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한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엄마에게 대들면서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엄마! 엄마는 왜 사람을 차별하세요? 아빠하고 밥 먹을 때에는 반찬이 5-6가지씩 놓고 먹으면서 나하고 밥을 먹을 때에는 달랑 두 가지만 주냐고요? 너무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러자 엄마가 아들에게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고 합니다. “아들아! 너는 내가 낳은 아들이잖니? 너는 내가 어떻게 해도 다 이해할 수 있지만, 아빠는 그렇지 않단다. 아빠는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데려온 아들이거든!” 그러면서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너는 내가 낳은 아들이니까 엄마가 어떻게 하든지 다 이해해 줄 수 있잖아. 그런데 데려온 아들은 그렇지가 않아. 데려온 아들은 눈치도 많이 봐야 하고, 삐지기도 잘 하거든. 내가 낳은 아들하고 데려온 아들하고 똑같이 하면 데려온 아들은 금방 시무룩해지고 삐지고 그러니 어떡하니. 그러니 네가 이해해 주어야지.’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들어보니까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러니까 뭐 하러 아들을 데리고 와서 그 고생을 하세요!”

  성경에 나타난 아버지들은 한결 같이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니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땅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에서도 감동을 받지만,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이삭의 모습도 깊이 생각할수록 감동이 됩니다. 당시 이삭이 몇 살이나 되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15살에서 20살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삭이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서 번제를 드릴 때 필요한 나무를 등에 지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갑니다. 짐승을 태우기 위해서 필요한 나무라고 한다면 그 짐이 제법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아버지가 등에 그 나뭇짐을 지워주는 데에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그 짐을 지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겠다고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는데도 이삭은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결박을 당합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백세가 훌쩍 넘은 노인입니다. 젊은 이삭이 ‘왜 내가 제물이 되어야 하느냐?’고,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고 반항했다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저항하거나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결박을 당해 줍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데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결박당한 채 번제단 위에 누워 있습니다.

   여러분, 아들 이삭의 입장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십시다. 아들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결박한 아버지가 정상적으로 보이겠습니까? 어린 이삭의 생각으로도 자신을 죽이려 하는 아버지가 결코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았을 것입니다. 혹시 아버지가 늙어서 노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을 수 있습니다. 왜 이삭이라고 살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살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습니다. 이삭이 도망친다면 늙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붙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하는 아버지의 행동이 너무나도 부당합니다. 당연히 이삭은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서 반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행동이 부당하게 보여도 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자신의 몸을 맡겼습니다. 아버지에게 ‘왜 이러시느냐?’고 항변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시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다 맡겼습니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말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권위였습니다.

   성경에 보여진 아버지들에게는 하나님께 주신 절대적인 권위가 있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훈계하고 양육하며 축복하는 권위입니다. 권위라는 것은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자신의 힘과 자리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권위가 아닙니다. 기꺼이 가족을 위해서 희생할 줄 아는 권위입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가족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풀어가는 권위입니다. 아버지의 결정에 대해서는 모든 가족들이 다 그 권위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권위를 가진 아버지는 고민이 없었을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람이 아직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입니다. 75세에 하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오랫 동안 머물러 살던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1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 때까지도 아내 사라가 아이를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자신이 데리고 있던 엘리에셀이라는 종을 자신의 상속자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엘리에셀이라는 종이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아이도 없지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상속자로 세우는 것도 하나님께서 반대하시지요. 그러자 아브라함으로서는 참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 때 아내 사라가 다른 제안을 합니다.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서 아이를 낳자는 것입니다. 비록 사라 자신의 몸에서 난 자식은 아니지만 아브라함의 핏줄을 이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라의 제안을 아브라함이 받아들이게 되고, 그렇게 해서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이라는 아이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만은 않았습니다. 여주인 사라의 배려로 아브라함의 아이를 가진 하갈이 자신이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는 아이를 갖지 못한 여주인 사라를 멸시한 것입니다. 여종으로부터 멸시를 당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인 창세기 16: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왜 사라가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자신의 몸종이었던 하갈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을 견디다 못해 남편 아브라함에게 하소연을 하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여종이 자신을 멸시했다면 여주인으로서 종을 따끔하게 혼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갈을 혼내지 않고 아브라함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하갈이 아이를 가졌을 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종을 통해서 아이를 갖자고 제안한 사람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내 사라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좋게 여겨 아이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갈이 아이를 가진 후에 사라와 하갈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처신하기가 참 곤란했을 것입니다. 사라는 아내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입니다. 그리고 하갈은 비록 사라의 여종이지만 자신의 아이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것도 사라의 제안으로 아이를 갖게 했습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가장 난처한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누구의 편을 들어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하갈에 대해서 하소연을 하자 ‘당신 눈에 좋을 대로 하라.’고 대답을 합니다. 자신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결국 사라에게 그 문제를 풀어가도록 전권을 위임해 준 것입니다.

  때로 아버지는 그런 존재입니다. 분명 아브라함에게도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를 가진 하갈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고, 멸시를 당한다고 불평하는 사라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가족을 위한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족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상처를 입거나 불편해 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말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참아 줍니다. 가족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기다려줍니다. 때로는 자신이 힘들지라도 그 힘든 것을 자신이 감당할 뿐 그것을 말로 풀어내지 않습니다. 때로는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을 참아낼 뿐 그 아픔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 고통의 짐을 다 짊어지고 갈 뿐입니다. 나로 인하여 가족들이 힘든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감당할 뿐입니다. 그게 아버지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생을 일그러진 얼굴로 숨어살다시피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과 딸 남매가 있었는데, 그는 심한 화상으로 자식들을 돌 볼 수가 없어 고아원에 맡겨 놓고 시골의 외딴집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한편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한 자식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라며 나타난 사람은 화상을 입어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손가락은 붙거나 없는 모습 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낳아 준 아버지란 말이야?”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자식들은 충격을 받았고, 차라리 고아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더 좋았다며 아버지를 외면해 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자식들은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자식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며 혼자 외딴집에서 지냈습니다. 몇 년 뒤 자식들은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왕래가 없었고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고 살았던 자식들인지라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별다른 슬픔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을 낳아 준 아버지의 죽음까지 외면할 수 없어 시골의 외딴집으로 갔습니다. 외딴집에는 아버지의 차가운 시신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을 노인 한 분이 문상을 와서 아버지께서는 평소에 입버릇처럼 화장은 싫다며 뒷산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아버지를 산에 묻으면 명절 때마다 찾아와야 하는 것이 번거롭고 귀찮으니 화장을 하겠다.’고 말하고는 화장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를 화장하고 돌아온 자식들은 다시 아버지의 짐을 정리해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평소 덮었던 이불이랑 옷가지들을 비롯해 아버지의 흔적이 배어 있는 물건들을 몽땅 집 밖으로 끌어내 불에 태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책들을 끌어내 불 속에 집어넣다가 <비망록>이라고 쓰인 빛바랜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불길이 일기장에 막 붙는 순간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얼른 꺼내 불을 껐습니다. 그리고 연기가 나는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들은 그만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일기장 속에는 아버지께서 보기 흉한 얼굴을 가지게 된 사연이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자신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어렸을 때 집에 불이 났는데, 그 때 아이들을 불구덩이에서 구해내려다가 그렇게 심한 화상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 일기장은 먼저 죽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쓰는 편지로 끝이 났습니다.

   아내에게 쓴 글은 이러했습니다. “여보! 내가 당신을 여보라 부를 자격이 있는 놈인지 조차 모르겠소. 그 날, 당신을 업고 나오지 못한 날 용서하구려. 울부짖는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당신만을 업고 나올 수가 없었다오. 이제 당신 곁으로 가려고 하니 너무 날 나무라지 말아주오. 덕분에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다오. 비록 아버지로서 해준 것이 없지만 말이오.”

   그리고 자식들에게는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딸에게. 평생 너희들에게 아버지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이렇게 짐만 되는 삶을 살다가 가는구나. 염치 불구하고 한 가지 부탁이 있구나. 내가 죽거들랑 절대로 화장은 하지 말아다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을 싫어했단다. 평생 밤마다 불에 타는 악몽에 시달리며 30년 넘게 살았단다. 그러니, 제발…!” 뒤늦게 자식들은 후회하며 통곡하했지만 아버진 이미 화장되어 연기로 사라진 뒤였습니다.

  여러분, 아버지들은 그런 사람입니다. 가족들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합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보상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이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갈 뿐입니다. 때로는 가족들로부터 오해를 받는다 하더라도, 때로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해 마음이 아플지라도 그저 자기의 자리에 서 있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믿음의 아버지는 자기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 자신의 아이를 가진 하갈 사이에서 그저 중심을 잡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사라가 하갈을 쫓아내버립니다. 분명 그 하갈의 뱃속에는 자신의 아이가 있습니다. 그 때까지도 아브라함은 그 아이가 자신의 진정한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라와 함께 그렇게 생각하고 하갈에게 아이를 갖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사라가 자신을 멸시한다는 것 때문에 하갈을 내쫓아버렸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갈만을 내쫓은 것이 아닙니다. 하갈의 뱃속에 있는 아브라함의 아들을 함께 내쫓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쫓겨난 하갈이 광야로 도망친 후에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주인에게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듣고, 하갈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브라함은 돌아온 하갈을 아무 말 없이 받아 줍니다. 그리고 하갈이 아들을 낳자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어줍니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사자가 지어준 것입니다. 하갈이 사라에게 쫓겨나 광야로 도망쳤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 아들 이스마엘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해 줍니다.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의 상속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상속자는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앞날을 책임져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이 낳은 아들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었다는 것은 하갈이 광야에서 있었던 그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아이는 자신의 상속자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 그대로 그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줍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대로 지어준 이유는 이스마엘의 앞날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책임을 져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아들의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줍니다. 아들의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는 그 아들을 책임져줍니다. 아들이 자라면서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 주는 것도 아버지의 몫입니다.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의 몫입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책임을 져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기의 아들 이스마엘의 이름을 자신의 의도대로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광야에서 알려준 대로 지어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표현에 의하면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엘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지었는데, 그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 아브라함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기의 아들 이스마엘의 모든 것을 맡기면서도 자신이 아버지로서 감당해야 할 것이 있으면 자신이 책임져주겠다는 뜻입니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식들을 책임져 주시고 그래서 자신의 자식들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잘 커 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랍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 자식들의 앞날을 지켜주시겠다는 믿음만 가지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미뤄놓지 않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식들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맡겨주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 아버지들은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위해서 때로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지만 묵묵히 참아냅니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때로는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한 채 울음을 가슴으로 삭이며 삽니다. 아버지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1997년 8월 31일자 중앙일보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미화원을 하고 있는 아버지가 어떤 날 자신의 아들이 고급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돈을 준 일이 없는데 그렇게 비싼 청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자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너 어디서 돈이 나서 이런 비싼 옷을 사 입었느냐?’고 말입니다. 머뭇거리는 아들을 호되게 나무라자 아들이 사실대로 말해 줍니다. 전철역에서 남의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무리 가난하고 어렵기로서니 남의 돈을 훔쳐서야 되겠느냐?’고 붙들고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을 데리고 파출소로 가서, 아들을 자수시켰습니다. 파출소에서 자술서를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은 아들이 이런 일을 한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안 아버지는 너무나도 기가 막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이 너무 가난하고 어려워서 옷을 사 주지 못한 죄 때문’이라고 자책을 하고는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재판정에서 이렇게 증언을 했습니다. “재판장님! 이 아들 녀석에게 중죄를 내려 주십시오. 이 아들은 나쁜 놈입니다. 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중죄를 내려 주십시오.” 그런데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이 향후에 절대로 잘못될 수 없음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버지는 자식들의 모델입니다. 훌륭한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훌륭하게 사는 방법을 압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로 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압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말입니다.

   여러분, 아버지의 그런 사랑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묵묵한 모습으로 당신의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십니다. 요란하지 않습니다. 햇볕처럼 뜨겁지 않아도 이슬처럼 잔잔한 모습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그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피부에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 사랑이 우리의 삶과 가슴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넓고 뜨거운 사랑이라면, 아버지의 사랑은 차분하면서도 깊은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살고 계십니까? 우리 아버지들의 그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살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 아버지의 사랑으로 지금도 살고 계십니까?

< 2015년 5월 31일 주일낮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