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왕이시여!

< 본문 – 누가복음 2:1-14 >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평강과 은총이 우리 모든 교우들의 삶 가운데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지난 10월 7일에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전쟁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엊그제 뉴스의 보고에 의하면 전쟁이 시작된 지 석 달도 되지 않은 현재 팔레스타인에서만 2만여 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인구의 약 1%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어린아이 등 민간인들의 희생이 너무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현재까지의 통계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에서 약 22,000명이 사망했는데, 그 가운데 전투 요원은 불과 1,500여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반인들입니다. 부상자는 5만 명이 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도 1,200여 명이 사망했는데, 군인과 경찰 등은 사망자의 절반 이하인 530여 명입니다. 이스라엘에서도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일반들입니다. 이스라엘의 부상자도 4,700여 명이나 됩니다. 우리 교회가 후원하고 있는 선교사님의 소식에 의하면 가자 지구에서 가까운 브엘세바 병원에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의 부상자들이 실려 오고 있다고 합니다.

전세계인들이 안타까워하는 이 상황을 끝낼 방법은 없을까요? 지난 12월 8일 유엔 안정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논의하고 표결에 붙여졌지만 미국의 반대로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4일 후인 12월 12일에는 유엔 회원국 186개국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총회를 열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와의 전쟁을 당장 멈추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여전히 실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명령 한 마디로 꼬일 대로 꼬인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 상황을 끝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그럴만한 힘을 발휘할 명령권자는 없습니다.

만일 이런 일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풀어가기 힘든 문제에 대해 로마 황제가 명령을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로마 황제의 명령이라면 모든 문제가 잠잠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2: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여기서 말하는 가이사 아구스도는 주전 27년부터 주후 14년까지 무려 41년 동안이나 통치했던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를 말합니다. 그를 흔히 ‘아우구스투스 황제’라고 부릅니다. 그는 로마 제국에 속한 속국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인구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세상을 다 지배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제국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온 천하가 로마제국에 속해 있고, 로마 제국 황제의 말 한마디면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명령에 따라 유대라고 하는 작은 나라에서도 호적하기 위해서 각각 고향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만큼 로마 황제는 명령 한 마디면 천하가 벌벌 떠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부터 약 200년의 기간을 흔히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부릅니다. ‘로마의 평화’라는 뜻입니다. 그 200년 동안 로마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룬 평화를 누리는 시기였고, 로마의 속국들도 로마에 완전히 복종하는 한 최대한의 권한을 부여받고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즉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는 로마가 주는 평화라는 의미입니다. 로마제국에 밉보이면 평화는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저항했던 이스라엘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당하면서 끔찍한 최후를 맞아야 했습니다. 반면 로마에 복종하면 로마의 보호 아래 평화를 누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로마가 주는 평화, 로마가 평화를 주는 한도 안에서 평화를 누리야 했던 시대에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로마 황제의 말 한 마디로 온 천하가 움직이는 그런 시대에, 유대의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노래하면서 천군과 천사들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본문 14절) 이 땅에 평화를 가져다주실 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아기 예수님 뿐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기 예수님! 로마 제국에 비해서 아주 작은 나라 유대, 그 가운데서도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아무런 권력이나 힘을 갖지 않고 태어나신 예수님이 온 세상에 평화를 주실 유일한 분이십니다. 이 천사들의 노래를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네가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지금 세상을 통치하고 있는 사람은 나야! 나 말고 누가 평화를 논할 수 있어?’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외에는 어느 누구도 평화를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에, 진정한 평화는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이 말씀은 로마 황제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참된 평화는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얼토당토않은 말씀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 허황된 말인 것처럼 보이지만, 평강의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 외에 이 세상에 참된 평화를 가져다주실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이지만, 그가 외친 평화는 200년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로마의 평화’ 위에 세운 로마 제국은 어느 순간엔가 이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외치신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그 나라는 영원합니다. 어느 누구도 그 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월에 시작되어 지루할 정도로 오래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통치해야 가능합니다. 불과 석 달도 지나지 않았으나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도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그곳에 임할 때 그곳에 평화가 깃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가져오신 평화가 그곳에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간에 벌어지는 전쟁의 현장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강대국의 이익 앞에서 약소국가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권리를 침해당하는 서글픈 현실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유혹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알지 못해 방황하는 우리의 마음에도, 참과 진리를 따르지 못해 상처나고 찢긴 우리의 마음에도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면 아무리 소용돌이치는 상황에 놓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평화를 누리를 수 있고, 평화를 노래할 수 있습니다. 꿈꾸는 것이 이뤄지지 않아 고달플지라도,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고 쓰라림으로 눈물 흘릴지라도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면 우리는 그 고달픔과 쓰라림을 극복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에도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해야 합니다. 사랑하고 신뢰해야 하는 부부 사이에 생겨난 갈등을 이길 수 있는 방법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 극복되지 않고 남아 있는 쓴 뿌리와 같은 갈등을 이길 수 있는 방법도 오직 하나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할 때 가정이 하늘의 평화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도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여전히 존재하는 수많은 갈등, 그것을 치유하고 이겨낼 방법도 오직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세대 간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 남녀 간의 젠더 갈등, 빈부의 갈등, 이념의 갈등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시대입니다. 마치 갈등을 일으키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오늘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평과가 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그 모든 갈등을 평화로 메꾸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도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평화는 세상의 힘이나 권력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평화는 자기 희생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이 평화인 이유는 당신의 자리, 영광의 자리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낮춰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기 때문에 주님의 평화가 참된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평화를 만드신 방법은 당신이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입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주님께서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정죄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상에 평화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것만이 평화를 이루는 방법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평화가 깨어지는 이유는 자기들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희생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겨난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희생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손의 것을 포기하지 않고 움켜쥐고선 결코 평화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면서 당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리도 이 땅에 사시면서 희생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에서는 당신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놓으셨습니다. 그것만이 이 땅에 평화를 만드는 방법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만들어놓으신 주님의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뿐만 아니라, 우리도 주님을 닮아 때론 포기하고, 때론 희생하며 평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이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립보서 2:5-11) 자기를 낮춰 이 땅에 오시고, 자기를 낮춰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평화의 왕이시여, 우리에게 오시옵소서. 우리에게 주님의 평화를 주시옵소서!’ 이 기도만이 우리가 평화를 누리는 방법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Pax Romana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만들어질 Pax Christus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만이 이 땅에 참된 평화이시기 때문입니다.

< 2023년 12월 25일 주일낮예배-성탄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