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에서 형제로
< 본문 - 빌레몬서 1:8-21 >
1392년 고려가 멸망하고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시대가 시작됩니다. 그 조선시대 초기 200년 동안, 그러니까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까지 우리나라에 양반은 전체인구의 약 10%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끝나면서 우리나라 신분제에 일대 동요가 일어나게 됩니다. 양반들은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도망치기에 바쁜 반면, 일반 농민과 상민, 서민들이 의병을 조직해 관군보다 더 큰 전과를 올리게 되자, 백성들 사이에 양반과 지배층에 대한 회의와 저항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비롯한 지배층이 한양을 비우고 평양과 신의주로 떠나자 가장 먼저 불태워진 것은 노비문서가 보관되어 있던 관청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후에는 전쟁으로 인해 바닥난 재정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돈 많은 서민과 양민들에게 돈을 받고 양반직을 파는 공명첩(空名帖)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공명첩이라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임명장인데, 그 임명장에 이름을 적시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해 많은 토지가 황폐화되면서 농사를 짓지 못해 세금을 내지 못하는 농민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모자란 세금을 충당하기 위해서 전쟁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돈을 많이 바친 상인들에게 공명첩을 팔았습니다. 심지어는 공명첩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강제로 판매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공명첩을 사면 자신의 신분이 달라집니다. 노비들도 일정량 이상의 양곡을 바치면 공명첩을 살 수 있었고, 그러면 노비는 평민으로 신분이 상승됩니다. 그래서 돈 좀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공명첩을 사서 신분상승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조선 초기에는 전체인구의 40%에 달했던 노비의 숫자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10% 이하로 떨어지게 되었고, 반대로 양반의 숫자는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조선 초기 양반의 숫자는 10%에 지나지 않았지만, 임진왜란이 끝나고 약 100여년이 지난 숙종 때에는 양반의 수가 30%정도로 증가했고, 그 후 약 150년 정도 지난 철종 때에는 양반의 수가 무려 50%를 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서 신분제도가 폐지된 이후 족보 위조가 성행하게 되어, 대부분의 노비들은 자신의 출신성분을 감추고 양반인 주인의 성씨를 따가다 자기의 족보를 만들게 됩니다. 물론 1894년에 신분제도는 폐지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문화 속에는 양반과 평민 그리고 노비와 같은 신분이 오랫동안 남게 됩니다.
그렇게 한 사회에서 신분이 바뀐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시간이 흘러야 됩니다. 오래된 문화나 제도가 바뀐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사회에서도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9월 22일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 선언문을 발표하고, 다음해인 1863년 1원 1일부로 노예해방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문이 공표됩니다. 그렇게 해서 미국에서는 흑인을 노예로 삼고 살았던 노예제도가 완전히 철폐되었습니다. 그럼에도 100여년 넘게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고, 노예해방선언문이 발표된 후 146년만에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게 됩니다. 제도를 바꾸는 것도 어렵거니와 오랫동안 지속된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기, 아직 제도도 바뀌어지지 않았고 문화도 여전하지만 과감하게 당시의 제도에 반기를 들었던 한 사상가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당시 로마사회는 철저한 노예제도가 존재했습니다. 당시 노예는 주인에게 예속된 하나의 물건처럼 취급되던 사회였습니다. 그런 사회적인 제도와 문화에서 노예를 노예가 아닌 형제요 동역자로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할 당시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감옥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성경학자들은 아마도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였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왜냐하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사도 바울은 상당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지 않고,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해서 로마로 압송되어 갑니다. 비록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긴 했지만, 아직 죄가 확정되지 않는 미결수의 몸이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로마황제의 재판을 받을 때까지 상당히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8:16절에 의하면, 당시 사도 바울은 로마 군인 한 사람의 감시를 받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도행전 28:30-31절에서는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그렇게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생활하면서 복음을 전하던 중에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던 사람 가운데 특별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네시모라는 사람인데, 그는 지위가 높고 학식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는 남은 생애를 복음을 위해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 일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사도 바울은 굉장히 기뻤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그가 노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주인의 집에서 몰래 도망쳐 나온 노예였습니다.
당시 노예가 주인 몰래 도망쳐온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노예의 몸에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사진> 지금 보고 계신 것이 노예의 몸에 찍었던 낙인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 시대의 것은 아니지만, 근세에 한 노예무역회사가 노예의 가슴에 찍은 것입니다. 노예선에 태워지기 전에 이 낙인을 뜨거운 불에 달궈 노예의 가슴에 찍었기 때문에 그 낙인은 평생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노예로 팔려가는 흑인들 가운데는 노예의 낙인이 찍혀진다는 수치와 뜨거운 불로 가슴을 태운다는 공포 때문에 노예선에 태워지기 전에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고대사회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노예라는 낙인이 찍혀지면 그는 어디를 가든지 노예라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노예가 이유 없이 주인의 손에서 벗어나 도망친다면 그 노예는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주인이 가만 둘리도 없거니와 당시 사회에서는 도망친 노예를 다른 사람이 죽인다 하더라도 죽인 사람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노예였던 오네시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첫 번째는 노예인 그가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노예 중에는 주인이 은혜를 베풀어 자유를 허락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주인이 자유를 주어서 주인에게서 떠나온 사람이 아니라, 주인에게서 도망을 쳐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주인에게 뭔가 해를 입혔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오네시모가 그의 주인에게 어떤 해를 입혔는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진 않지만, 오네시모가 주인에게 해를 입혔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문 18절에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이 말은 ‘오네시모가 주인인 너에게 잘못한 것이나 손해를 입힌 것이 있으면 내가 나중에 계산해 주마’ 라는 말입니다. 이로 보건대 오네시모는 주인에게 손해를 입히고 그에 따른 형벌이 무서워 도망친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망친 노예인 오네시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사도 바울이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오네시모의 주인을 사도 바울이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빌레몬입니다. 빌레몬은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빌레몬은 전도에 힘썼으며, 자기 집을 교회당으로 개방했습니다. 아마도 골로새 교회가 이 빌레몬의 집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었기 때문에 빌레몬은 사도 바울을 영적인 스승처럼 생각했습니다.
도망친 노예인 오네시모가 이 빌레몬의 소유라는 것을 안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제 시간이 얼마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재판을 받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잘 알 수 없거니와, 이제는 몸도 많이 약해져서 언제 죽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빌레몬서를 쓴 후 몇 년 못 되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런 상황에서 복음의 동역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에게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 중에 오네시모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본문 11절에서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가리켜 ‘내게 유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12절에서는 ‘내 심복’이라고 말합니다. ‘심복’이라는 말은 심장이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가 자신의 심장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소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마 만큼 지금 오네시모는 사도 바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요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의 원래 주인인 빌레몬에게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를 그의 원래 주인인 빌레몬에게 보내기로 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14절에서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에게 오네시모는 지금 상황에서 아주 절박하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종이었다는 사실을 안 이상 오네시모를 그냥 자신의 동역자로 쓰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인인 빌레몬의 허락을 받고 오네시모를 복음의 동역자로 쓰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삶과 신앙의 원칙을 배우게 됩니다.
그 하나는 어떤 일을 하든 정당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일을 위한다 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밝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8-9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빌레몬에게 마땅히 ‘이렇게 해 달라’ ‘내가 이렇게 할테니 그렇게 알아라.’ 하고 요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정중하게 빌레몬에게 간청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충분히 빌레몬에게 ‘이렇게 해 달라’고 명령할 수 있습니다. 빌레몬보다 나이도 많습니다. 또 빌레몬이 자신에게 복음의 빚진 자입니다. 더구나 오네시모를 자신의 개인적인 몸종처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동역자로 일하게 하겠다면 당연히 빌레몬의 입장에서는 사도 바울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명령하지 않고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또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편지를 써서 오네시모를 만난 전후 상황과 오네시모가 지금 자신에게, 그리고 복음 사역에 얼마나 귀한 일꾼인지를 알려주고 ‘내가 오네시모를 내 곁에 두고 이렇게 함께 사역하고 싶으니 허락해 달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렇게 편지만으로 빌레몬에게 요청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냅니다.
이것은 큰 모험입니다. 사도 바울이 편지만 써 보냈다면 빌레몬이 자연스럽게 사도 바울의 의도를 따를 것입니다. 어차피 도망친 노예입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사도 바울 뜻대로 하라고 답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자신 앞에 나타나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망친 노예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면 빌레몬의 마음에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덜 할 것입니다. 그런데 눈으로 보면 사람의 마음이 달라집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내게 큰 손해를 끼쳤거나 내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 정말로 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에 분노가 일어납니다. 밥맛이 없어집니다. 그래도 참을 만합니다. 일단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면 내 마음 속에 있는 분노가 요동을 칩니다. 당장 달려가서 멱살을 잡든지, 아니면 꼴 보기 싫으니까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다른 길로 가버립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실로 엄청난 차이입니다.
어쩌면 오네시모를 본 순간 아무리 신앙이 좋은 빌레몬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의 제도나 문화에 따라서 오네시모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오네시모를 본 순간 빌레몬이 마음에 일어난 분노 때문에 ‘저 놈 당장 죽여!’라고 한 번만 소리친다면 오네시모는 그대로 죽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굳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냅니다.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만나게 합니다. 그것이 바른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회제도상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소유입니다. 빌레몬의 허락 없이 오네시모를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그것은 빌레몬의 것을 사도 바울이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코 바른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복음을 위해서라 하더라도 그 바른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종종 목적이 좋으면 방법은 틀려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고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방법이 선하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적만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그 목적에 이르는 방법 또한 선한 것이어야 하고, 바른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십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마귀의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반드시 선한 방법을 통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불법과 부정의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그것으로 아무리 많이 헌금을 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정직한 방법으로 번 적은 헌금을 오히려 기뻐하십니다. 학생들에게는 A학점을 받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공부하지 않고 A학점 받는 것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B학점 받는 것이 더 낫습니다. 부끄러운 A학점보다 정직한 B학점이 더 훌륭한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수단과 방법이 정당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정당한 방법과 선한 방법으로 하다가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것이 부정한 방법을 써서 선한 목적을 이루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정당한 방법을 통해 목적한 바를 이루려 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자신의 심복과도 같은 한 사람의 생명을 잃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게 사도 바울 자신에게나 오네시모에게나 바른 방법이기에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직접 빌레몬에게 보냅니다.
본문에서 배우는 또 하나의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신뢰함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빌레몬을 신뢰하지 못했다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본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오네시모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떻게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빌레몬을 믿었습니다. 신뢰했습니다.
그 신뢰는 복음의 신뢰입니다. 빌레몬은 복음에 신실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인 4-7절에서 사도 바울이 알고 있는 빌레몬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빌레몬에 대한 그 모든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진짜 그리스도인이야!’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전에는 자신에게 무익한 종이었고 해를 끼친 노예였지만, 복음 안에서 자신과 같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오네시모를 기꺼이 형제로 받아줄 것을 사도 바울은 알았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답게 살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복음의 마음이 되게 하고, 우리의 삶이 복음의 삶이 되게 합니다. 그게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서 변화된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노예였던 오네시모를 형제로 받아달라’는 사도 바울의 요구는 당시 사회에서는 엄청난 것입니다. 한 번 노예로 낙인찍힌 사람에게 그렇게 쉽게 자유를 허락하지도 않을뿐더러, 더구나 형제라고 불러준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입니다. 더구나 그 노예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고 도망친 노예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노예라면 당장이라도 잡아 죽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종이 아닌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달라고 말합니다. 당시 사회제도나 문화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요구를 한 것입니다. 그런 용납할 수 없는 요구를 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21절)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 달라’고 말하면서 ‘나는 네가 그것보다 더 행할 줄 아노라’고 덧붙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아마도 빌레몬이라면 오네시모를 보면서 전에 자신에게 해를 끼친 무익한 종이요 도망친 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은혜를 끼치고 복음을 전해준 사도 바울의 얼굴을 보는 것같이 대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이 오네시모를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받아줄 것이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빌레몬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 줄 것이라고 빌레몬을 신뢰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원수를 친구로 만들어줍니다. 복음은 종을 형제로 만들어줍니다. 복음은 죽여야 마땅한 도망친 종을 복음 사역자로 인정하고 높여주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가졌던 복음의 신뢰는 오늘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고 기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로 있을 때,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고, 그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였었는데, 이제는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죄인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인데, 이제는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아직도 남아 있는 오네시모를 형제로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손해를 입히고, 우리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 우리가 주인이었다면 마땅히 죽여할 정도로 내 마음에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사람, 그를 종이나 노예가 아니라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의 뜻은 ‘쓸모 있는 사람’ ‘유익한 사람’입니다. 전에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는 쓸모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변화된 오네시모는 이제 이름 그대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전에 빌레몬에게 무익한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11절에서 사도 바울이 자신 있게 말한 것처럼, 사도 바울 자신과 빌레몬 모두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가슴에 원수로 남아 있는 사람은 우리 자신에게 무익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는 형제로 용납할 때에 그 사람은 하나님과 나 자신에게 쓸모 있는 유익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도 유익한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아직도 내 마음속에 도망친 오네시모와 같은 사람이 있진 않습니까? 내게 쓸모없는 사람, 내게 무익한 사람, 내게 손해를 입힌 사람, 내 마음 속에 분노를 만들어주는 사람 말입니다. 내 안에 여전히 그런 사람으로 남겨둔 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나 나 모두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내게 고통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그러나 도망친 오네시모라 할지라도 그를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준다면 그는 내게 유익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내게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유익한 존재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나의 오네시모! 내 마음 속에 있는 오네시모! 그를 어떤 사람으로 받아주시겠습니까? 여전히 도망친 종일 뿐입니까? 사랑받는 형제입니까?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 2013년 7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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