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회복입니다.

< 본문 – 에베소서 2:11-20 >

미국의 실존주의 심리학자인 롤로 메이(Rollo May, 1909-1994)는 그의 책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불행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첫 번째는 공허감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욕망이나 자신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텅 빈 공허감을 안고 살아가며, 때로는 극심한 무력감에 빠진 채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불행의 두 번째 원인은 고독입니다. 인간은 원래 다른 사람과 관계 맺음을 통해서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는데, 아무도 없이 고독하게 존재할 때 자아를 상실하게 되고 그것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공허감으로 가득한 인간 군상들이 아무리 서로를 기대어 고독을 해결하려고 해도 고독감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현대인들을 불행하게 하는 더 근본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안입니다. 불안은 ‘자아로서의 우리 존재가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때 오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 불안이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인인 이유는 공허감이나 고독감이 이 불안이라 불리는 특이한 심리적 고통이나 곤경과 결부될 때에 한해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불안을 극복하면 공허감이나 고독감을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불안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인간은 결코 자기 스스로 불안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불안이 찾아온 이유가 죄로 인함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극복하면 우리 인간은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는데, 우리 인간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스스로 불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3장과 4장은 우리 인간이 처음 죄에 빠졌을 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살게 하시면서 딱 한 가지만 금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뱀의 유혹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 열매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죄악에 빠진 아담과 하와가 한 행동이 두 가지로 나옵니다. 하나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입니다. 처음 인간이 창조될 때, 그들이 죄에 물들지 않았을 때에는 벌거벗었지만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니까 누가 지적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수치심을 느낀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지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은 사라지고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부끄러우니까 하나님을 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낯을 피해 스스로 숨은 것입니다. 누군가가 ‘너희들 죄지었으니 하나님을 피해 숨어야 돼!’라고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죄는 결코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죄의 모습으로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죄에 빠진 인간은 하나님의 얼굴 뵙는 것이 두려워서 숨어버렸습니다.

  이렇듯 죄에 빠진 인간이 보여준 모습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불안’입니다. ‘자아를 상실한 인간이 고독에 빠지고 그것이 불안과 결합될 때 인간은 불행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롤로 메이의 지적처럼, 처음 인간 아담과 하와는 죄에 빠짐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인간의 고귀함을 잃어버리고 치마를 만들어 입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버림으로 스스로 고독의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죄에 빠진 자신의 모습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불안이 엄습한 것입니다. 죄에 빠진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날까 봐 불안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4장에 가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다가 거절당한 가인은 결국 동생 아벨을 쳐죽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에 넘어가지 말라고 경고해 주셨음에도 결국 죄에 빠지고 맙니다. 죄를 지은 가인은 이렇게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세기 4:14) 동생을 죽인 자신을 누군가가 죽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의 마음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동생을 죽이고는 감쪽같이 숨겼습니다. 자신의 죄가 드러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죄는 숨길 수 없었고, 누군가가 자신을 죽일 것이란 두려움과 불안이 그의 마음을 엄습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죄에 빠진 우리 인간의 실상입니다. 두렵고 불안합니다. 무화과나무로 치마를 만들어 입어도, 나무 뒤에 숨어도, 자신의 죄를 감추었다고 생각되어도 두렵고 불안합니다. 죄가 그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정상적인 관계를 모조리 파괴합니다. 그러서 더욱 불안하게 만듭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을 거니시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산책하는 것을 즐겨하던 아담과 하와는 죄에 빠지고 난 후 하나님께서 산책하자고 찾아오실까 봐 두려웠습니다. 관계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만드신 사랑의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처럼 여겨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만 깨진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오실 때 아담은 하와를 보더니 뿅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창세기 2:23)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나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범죄한 이후 아담은 하와를 이렇게 부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그가”(창세기 3:12) 사랑하는 아내였던 하와가 이제 ‘그 여자’ ‘저 여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얽히고 싶지 않은 여자, 나를 망치게 한 여자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죄입니다. 죄가 ‘나와 분리될 수 없는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인 여자’를 ‘멀리 하고 싶은 여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하던 관계도 죄가 들어오면 틈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틈은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커다란 장벽에 가로막힌 사이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고통이 생겨나고, 서로에게 아픔을 주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렸고 사람과의 관계를 허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조차 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범죄한 이후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는 뜻입니다. 내의 모습 그대로가 보기가 싫어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자기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죄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로 나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와 나의 자아 사이에 벽을 만들어 나의 나됨을 바르게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내 자신이 싫어지고, 내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우리 안에 죄가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깨뜨리는 또 하나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 세계와의 관계입니다. 범죄한 이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세기 3:17) 우리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땅은 우리 인간에게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라 가시와 엉겅퀴를 냄으로 우리 인간을 수고하게 만든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현상은 너무나도 많이 나타납니다. 우리 인간의 탐욕과 죄 때문에 이상 기후가 나타나 어떤 곳에서는 가뭄으로 흉년이 들고, 어떤 곳에서는 홍수로 고통을 받습니다. 이번 하와이에서 일어난 산불 역시 우리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 결과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준 복수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3년 이상 고생하며 겪어내야 했던 코로나19도 자연을 파괴한 우리 인간의 죄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죄가 우리 안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관계 맺고 살아가야 하는 모든 관계가 뒤틀어지고 깨어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더욱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고, 매일매일의 삶을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견디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그런 고통 가운데,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영원히 살도록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은 죄로 인해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해방시키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파괴된 관계들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오늘 본문은 그것을 분명하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십자가로 회복시켜 주시기 전에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본문 11절과 12절에서 반복되어 말씀한 “그 때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기 전을 말합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소망고 없고, 약속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심으로 깨어지고 뒤틀어진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리스도의 피가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가장 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전에는 이방인과 유대인, 할례자와 무할례자로 나뉘었었는데, 이제는 둘이 한 몸처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관계만 회복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아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남녀노소, 빈부와 귀천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동일한 시민이요,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믿음의 사람과 불신의 사람도 십자가 아래서는 하나가 됩니다. 신앙의 연륜이 오래된 분이나 처음 신앙을 가지신 분이나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족 관계에서 아직도 불편하고 불안한 모습이 남아 있다면 십자가 아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삶의 관계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도록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회복하시는 십자가의 능력이 깨어지고 상한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켜줄 것입니다. 원수도 십자가 아래서는 화해자가 됩니다. 십자가는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하루는 유명한 제지공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여왕은 공장 안을 시찰하다가 휴지와 걸레 같은 너저분한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방을 보고서 너무 놀라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공장장이 ‘깨끗하고 질이 좋은 종이가 될 원료들’이라고 대답을 하자, 여왕은 이렇게 더러운 것들이 어떻게 질 좋은 종이가 될 수 있는지 의아해했습니다. 며칠 후 궁전으로 돌아온 여왕에게 그 제지공장으로부터 아름답고 깨끗한 편지지 묶음이 선물로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편지글이 있었습니다. “그 걸레 같던 종이들이 이 아름다운 편지지로 변화되어 지금 여왕 폐하의 궁전에 가 있듯이 완악한 죄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면 언젠가 주님이 오시는 때에 성결한 주님의 신부가 되어 하나님 나라 궁전에 가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아무리 더럽고 추하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음받으면 우리는 모두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십자가 아래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가 용서되고, 깨어지고 상한 심령과 관계들이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당신의 품으로 부르십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세아 6:1) 여러분, 하나님 품으로 담대히 나아가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더럽고 추해도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모두 품어주시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깨지고 뒤틀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져 치유하여 주시고, 상처를 싸매어 낫게 해 주십니다. 십자가는 회복의 은혜요, 회복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 2023년 8월 20일 주일낮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