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용서입니다.

< 본문 – 누가복음 23:33-38 >

  산티아고 순례길 노중에 ‘용서의 언덕’(Alto de perdon)이라는 곳이 있습니다.<사진1>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서 ‘프랑스길’이라고 불리는 길을 걷다 보면, 순례길의 첫 출발지인 생장에서 약 80km쯤 걸었을 때 나타나는 곳입니다. 그곳의 이름을 왜 용서의 언덕이라고 붙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순레길의 걷는 순례자는 마음에 용서하지 못한 아픔을 끌어안고 가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2016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으면서 5일째 되던 날 용서의 언덕에 올랐습니다. 언덕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언덕이라기보다는 작은 산등성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해발 약 700m에 이르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엄숙하게 자기 자신을 돌아봅니다. 용서하지 못한 마음으로 순례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한 무거운 마음으로 순례길을 걷는다면 육체적인 피곤함보다는 마음과 정신의 곤핍함이 더욱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용서할 것이 많은 존재, 아니 용서받아야 할 것이 많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고슴도치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용서는 너무나도 절실한 문제이고, 꼭 필요한 것입니다.

  순례길 도중에 용서의 언덕이 있다는 것에서 참으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갈아가는 삶을 순례라고 한다면, 그리고 인생의 순례자로 이 땅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용서를 결단해야 할 순간에 마주하게 됩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용서해야 할 수없이 많은 시간 속을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용서해야 하고, 때로는 나로 인하여 마음 아파하는 이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고, 때로는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성경에 용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종개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5)는 우리 신앙인들을 ‘용서받은 죄인’(forgiven sinner)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인이 된 출발점은 용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용서받았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용서받았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용서는 단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매일같이 계속됩니다. 매일 용서받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탕자의 비유’라고 말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탕자는 아버지께로부터 받게 될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여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 품에서 멀리 떠나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그 많은 재산을 다 허랑방탕으로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가진 것을 다 잃은 아들은 남의 집에 머슴으로 들어가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돼지를 치면서 살아가는데,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 먹지 못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집이 그리워 상거지가 되어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물려받은 재산을 다 탕진한 아들이 돌아올 때에 아버지는 아들을 극진한 사랑으로 받아주십니다. 그 아들에게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습니다. ‘왜 유산을 미리 달라 했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 많던 재산 다 어디에 썼느냐?’고도 묻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 고생해 보니 어떻더냐?’고도 묻지 않았습니다. ‘이제 무슨 낯짝으로 나를 찾아왔느냐?’고 호통을 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었습니다.

그게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용서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법 재판이요 증거불충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막음먹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예수님은 사형언도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로마 총독인 빌라도의 재가를 받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4복음서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상태에서 하신 말씀 7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밤새도록 대제사장의 재판정과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힘겹게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곤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못 박히신 후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본문 3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여기서 말하는 ‘저들’ 곧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신 대상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일차적으로는 로마의 군병들이고, 35절에 기록된 ‘관리들’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는 것은 이미 예수님의 마음에는 그들을 용서하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용서의 간구는 단순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그 기도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까지도 포함합니다. 비록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결정했고, 로마 총독 빌라도가 재가를 해주었다 하더라고, 궁극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사실 우리들입니다. 이사야서에서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이사야53:5) 그렇습니다. 우리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실 때, 그 용서의 대상에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만든 우리들까지 포함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 모습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들’에 해당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주님께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이 입으셨던 옷을 서로 가지려고 제비를 뽑기도 하고, 신포도주를 주면서 예수님을 희롱하기도 했습니다. 관리들은 예수님을 향해 비웃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백성들은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 골고다 아래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자기들의 잘못을 회개했다거나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용서를 빌어야 용서를 하든 말든 하지!’ ‘자기가 잘못한 줄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용서를 해!’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용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용서의 교훈이 있습니다. 그건 잘못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용서를 빌지 않아도 먼저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먼저 용서해 주는 것이 진정한 용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용서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요구하시는데도 우리가 용서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잘못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용서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 때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취하든 상관없이 용서는 내가 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일방적인 것입니다.

  심지어 내가 한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용서해야 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용서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용서해도 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하지?’라고 생각하며 용서를 주저합니다. 또 내가 용서한다고 말하는데 상대방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네가 나를 용서한다고 해’ 라고 말하면 용서한다고 말한 내가 무안해지니까 선뜻 용서한다는 말을 꺼내기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상대방이 용서를 빌지 않아도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가 주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마태복음 18:21)라고 물었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다. 베드로는 ‘주님, 형제가 내게 용서를 구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줘야 합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형제가 내게 용서를 구하는 것과 상관없이 죄를 범했을 때, 상처를 주고 나를 억울하게 했을 때 용서해 주는 것을 전제로 한 물음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것과 상관없이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용서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할 후에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알지도 못할 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함을 잘 알면서도 용서가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책으로 유명해진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는 그의 또 다른 책 『내면소통』에서 ‘분노를 숭배하는 문화’ 때문에 우리가 용서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려서 많이 읽고 보았던 만화나 영화 또는 드라마에 보면 선한 주인공과 나쁜 악당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줄거리상 대부분 악당은 강하지만 주인공은 악당에게 늘 당하는 약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답답하리만치 악당에게 당하지만, 결국에는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주인공이 승리를 거둡니다. 권선징악의 교훈을 주기 위해서 주인공이 결국에는 이기는데, 우리는 그런 스토리를 읽거나 보면서 우리 자신을 그 주인공과 일치시킵니다. 그러면서 나쁜 놈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은 여지없이 맞아 떨어집니다. 우리는 그렇게 어려서부터 악당은 벌을 받아야 마땅한 놈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왔습니다. ‘나쁜 놈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용서하기보다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벌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 생각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분노를 숭배하는 문화입니다.

  여러분, 나쁜 사람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그 벌에서 제외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언제나 선하고 착하고 좋은 일만 하는 주인공 같은 사람일까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고 우리는 선한 사람일까요?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 하고 우리는 선하니까 구원을 받은 것일까요? 성경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만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죄 속에서 살아가는 죄인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자 스프라울(R.C. Sproul)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죄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살아갈 뿐입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만 죄를 짓는 게 아닙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악당이고, 나는 착한 주인공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 살아가고 있는 ‘용서받은 죄인’일 뿐입니다.

  나도 용서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같은 놈도 용서하셨는데, 내가 누구인들 용서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용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다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았기에,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처럼 우리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죄를 용서받았기에 우리도 마땅히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건 다 압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서 용서가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업 성공의 귀재’라 불리는 폴 마이어(Paul J. Meyer)는 그의 책 『용서의 심리학』에서 자신의 성공 비결이 용서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아버지는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늘 용서하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렸을 적 어느 날, 어미니가 하루 종일 가족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날 저녁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몹시 기분이 상한 상태로 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어머니가 차려놓은 음식을 식탁보에 모두 싸 담아 뒤문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왜 아버지에게 냄비를 집어 던지며 맞서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네 아버지와 결혼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단다. 그 동안 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다른 쪽 뺨을 돌려대곤 했단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일흔 번씩 일곱 번을 하려면 아직도 멀었구나.”라고 덧붙이셨습니다. 그건 어머니의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늘 평화와 기쁨이 샘물처럼 솟아는 삶을 사셨습니다. 용서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 아래서 그는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용서하지 않는 삶과 용서하는 삶, 둘 중에서 용서하며 사는 것이 더 낫기에 그렇게 살겠다고 말입니다. 어느 날 그가 어머니에게 “어머니의 삶이 더 좋아요. 어머니는 행복하고, 또 친구들도 많지만 용서를 모르는 아버지는 어머니만큼 친구들이 많지 않아요.”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얘야, 너는 기로에 서 있단다. 용서하는 삶과 용서하지 않는 삶 가운데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가 앞으로 네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게다.” 그래서 그는 늘 용서하며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폴 마이어는 그의 책에서 ‘용서라는 것은 연습을 많이 할수록 더 잘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우리 힘으로 어찌 해 볼 수 없는 삶의 이치이다. 바람을 멈출 수 있는가? 없다. 하지만 풍차를 만들 수는 있다. 파도를 멈출 수 있는가? 없다. 하지만 배의 돛을 조정할 수는 있다.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가? 없다. 하지만 용서하는 법을 배울 수는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용서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하는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죄인인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용서하는 법을 배워갈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코리 템 붐(Corrie ten Boom, 1892-1983) 여사의 이야기에 그 답이 있습니다.

  네델란드 출신의 코리 텐 붐 여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인을 숨겨주었다는 죄명으로 가족 모두가 독일 나치에게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 수용소에서 부모님과 언니는 가혹한 고문을 겪다가 죽고, 그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이후 신학을 공부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는데, 그녀의 마음에 ‘패전한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라는 강력한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녀는 주저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죽인 그 원수와 같은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강권하시는 성령의 이끌리어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들 독일이 나의 부모님과 언니를 죽였지만 주님은 당신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다.’고 전한 후에, 강단에서 내려와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허름한 외투를 걸친 남자가 그 앞으로 다가오는데, 그 모습을 본 순간 그녀는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남자가 바로 수용소에서 자신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긴 악명 높은 간수였기 때문입니다. 수용소에서 있었던 기억들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가며 온 몸이 떨려오는데, 그 남자가 자신 앞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조금 전 강단에서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용서하신다고 외쳤지만, 그 사람을 용서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있는데 ‘나는 당신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순간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의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딸아! 나는 십자가에서 나를 못 박고 죽이고 침 뱉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았느냐? 너도 용서해 주어라!”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 저는 절대 못합니다.” 그러자 또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가 도와주마!” 그녀는 손을 내민 남자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나는 당신을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시니 나도 당신을 용서하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감정, 우리의 믿음, 우리의 용기를 가지고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내 힘으로는 용서가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용서를 간구하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십자가 사랑의 힘을 빌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은 주님처럼 용서할 수 없는 존재임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못난 우리의 모습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이 흘러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내 힘으로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의 힘으로 용기를 내어 용서하며 사십시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십자가는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용서하신 용서의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 2023년 9월 10일 주일낮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