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시간들
< 본문 - 창세기 6:13-22 >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출신의 소설가인 사무엘 베케트(Samuel Barclay Beckett, 1906-1989)가 쓴 작품 가운데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제목의 희곡이 있습니다. 그 희곡으로 사무엘 베케트는 노벨문학상을 받게 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시골길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사람은 할 일이 없이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고도(Godet)라는 사람을 기다립니다. 고도를 기다리면서 두 사람은 서로 싸우고 울고 웃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들이 언제부터 고도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또 왜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저 고도가 나타나면 자기들이 바라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불명확한 희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다가 지쳐 각자 자기의 길을 떠날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지만, 결국 그들은 떠나지 못하고 다시 그 자리에서 또다시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게 됩니다. 고도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초조감과 올 것이라고 생각한 고도가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한 낭패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들은 의미 없는 말만 반복합니다. 그러던 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나타나서는 ‘오늘은 고도가 오지 못하지만 내일은 올 것’이라는 말을 전해줍니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어도 고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막연한 기다림의 허무함에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것마저 성공하지 못하고, 그들은 또 다시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립니다.
그것으로 이 작품은 끝이 납니다. 두 명의 주인공이 고도를 기다리지만, 그리고 ‘고도가 오늘은 오지 못하지만, 내일은 올 것’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졌지만 결국 고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이 미국에서 처음 공연되었을 때, 연출자인 알랭 슈나이더가 저자인 베케트에게 ‘고도는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다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글을 쓴 저자마저도 그렇게도 기다리던 고도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거나 이 연극을 본 사람들은 각각 자기 나름대로 소망하는 것을 ‘고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1957년 이 작품이 미국의 샌퀸틴(San Quentin) 교도소에서 연극으로 공연되었을 때, 그 연극을 관람한 1400여명의 죄수들은 ‘고도’가 ‘바깥세상’이나 ‘빵’ 혹은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반면 1960년대에 이 작품이 폴란드에서 공연되었을 때 폴란드 사람들은 ‘고도’가 ‘러시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진진한 반성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뭔가 자신들이 희망하는 것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그 희망이 무엇인지조차도 알지 못한 채 막연한 희망을 끌어안고 살고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삶 속에서 ‘왜 사느냐?’는 질문은 의미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물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참으로 가치 있는 목적이나 의지도 없이 그저 주어진 날이기에 살아갈 뿐입니다. 그게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실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살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무엇을 희망하며 무엇을 기다리며 살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신앙을 갖고 산다고 하는 우리 역시 세상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왜 사는지’ ‘무엇을 희망하며 사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면 그것은 정말 비극 중에 비극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왜 사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무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희망하며 사십니까?’라고 묻는다면 그 물음에 대답할 말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베드로전서 3:15)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갖지 못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만이 갖고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세상이나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어떤 고난이나 핍박이 가해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어떤 소망을 갖고 살기에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그것을 더 귀하게 여기며, 그것이 어떤 소망이기에 고난이나 그 어떤 핍박이 온다 하더라도 이 믿음을 굳게 붙잡고 고난의 길을 기쁘게 갈 수 있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소망이 분명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소망이 있기 때문에 기꺼이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눠주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소망이 우리에게도 있습니까? 그게 바로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믿음의 소망입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바로 그 순간에 천사들이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 줍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사도행전 1:11) 예수님께서도 살아계실 때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 14:2-3)
그런 주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주님을 기다렸던지 그들은 만날 때마다 ‘마라나타’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마라나타’라는 말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경 맨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이런 말씀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20)
우리는 오늘부터 대림절 절기를 맞았습니다. 대림절은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기간입니다. 오늘부터 성탄절까지를 대림절이라고 하는데, 이 대림절에는 구약성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동시에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는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오실 것이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다림은 비단 초대교회나 오늘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에게는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을 통해서 자신들이 바라는 것들을 얻을 수 있었고, 이룰 수 있었습니다.
여기 그런 간절한 기다림 속에 살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노아입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보다도 죄악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세상을 바꾸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선택한 사람이 바로 노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무 포악해졌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멸망시키려 하니, 너는 커다란 방주를 만들어라.’ 그리고는 방주를 얼마나 크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가르쳐주십니다. 15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길이는 삼백 규빗이고,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입니다. 한 규빗은 보통 45cm입니다. 그렇게 계산한다면 노아가 만든 방주의 크기는 길이가 약 135m, 너비는 약 22,5m, 높이는 약 13.5m입니다. 배 만드는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그렇게 큰 배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는 일인데, 그 옛날에 노아는 그 배를 만듭니다. 성경은 노아가 그 배를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가르쳐주지 않지만, 창세기 7장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그 위치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7:17-19절에 의하면, 홍수가 40일 동안이나 지속되어 땅에 물이 많아졌을 때 배가 뜨기 시작했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칠 때 배는 물 위에 떠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배가 떠다닌 후 물이 더 많아졌을 때 높은 산들이 다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방주를 높은 산꼭대기에다 짓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물이 금새 차오르는 낮은 곳도 아닙니다. 아마도 산 중턱 쯤일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아가 산 중턱 쯤에다 배를 지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그런 어마어마하게 큰 배를 짓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목재가 필요합니다. 많은 양의 목재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큰 배를 짓기 위해서는 큰 나무들을 베어다가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통수단이나 운송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 안에서 배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두 번째로 배를 산에서 지어야 하는 이유는 방주를 다 짓고 난 후에 그 안에 온갖 짐승들을 방주 안으로 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암수 한 쌍씩 방주에 들여놓아서 생명을 보전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짐승들을 방주로 모아들이는데 가장 좋은 장소는 산입니다. 산에 짐승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를 산에다 지어야 할 세 번째 이유는 먹을 것을 구하기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1년 이상 먹어야 할 양식을 배에 실어야 했습니다. 창세기 7:11절의 기록에 의하면 홍수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시작되었고, 8:14절의 기록에 의하면 노아가 601세 되던 해 2월 27일에 땅이 말라 노아가 방주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1년 하고도 열흘을 방주 안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필요한 양식을 구해서 방주에 실어야 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먹을 양식만 실은 것이 아니라, 그 방주에 함께 탄 짐승들이 먹어야 하는 양식도 배에 실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배에 실어야 하는 양식의 양은 실로 어머어마할 것입니다. 그 많은 짐승들이 1년 이상 먹어야 할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노아의 가족과 짐승들이 1년 이상 먹어야 할 그 많은 양식을 구하는 것은 넓은 들판이나 바닷가보다는 산이 훨씬 낫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노아는 산 중턱쯤에다 방주를 지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배를 짓는 데 정상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배는 바닷가나 강가에다 짓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야 배를 지은 후에 바로 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바닷가나 강가가 아닌 산 중턱에다가 배를 지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놀림거리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노아가 지은 배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것을 공사하는 기간만 해도 엄청날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몇 년 동안 지었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 6:3절에 나와 있는 “그들의 날이 백이십 년이 되리라.”는 말씀을 근거로 해서 노아가 120년에 걸쳐 방주를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120년이 정말로 홍수를 준비하는 기간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노아가 그 방주를 짓는 시간은 실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두 가지가 노아를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그 첫 번째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입니다. 배를 짓기에 적당하지 않는 곳에서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게 짓는 노아를 사람들은 분명 조롱하며 놀렸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살려 할 때 그런 우리를 사람들이 존중해주고 칭찬해 준다면 세상 속에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신앙을 따라 살려 할 때 우리를 조롱합니다. 조롱을 당하면서도 당당하게 신앙의 길을 가야 마땅함에도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꾸만 우리를 위축시키고,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두 번째로 노아를 힘들게 한 것은 준비하는 기간이 너무 길다는 것입니다. 배를 작게 만들어서 빨리 그 일이 끝난다면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더라도 참아낼 수 있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돼!’라고 생각하고, 참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기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보다 두 배 가까이 긴 배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배를 완성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곧바로 비를 내리시고 홍수가 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배를 지으라고만 하실 뿐, ‘언제부터 비가 올 것이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그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노아를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이나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우리는 믿음으로 그 사건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려 합니다. ‘성경에서 가르쳐주신 대로 이 고난이 끝나면 큰 영광의 때가 올 거야.’ 그렇게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8)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우리에게 영광을 가져다 줄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고난이라는 껍질에 쌓여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고난이라는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걸 알기에 고난의 껍질을 벗겨내는 힘들 과정 중에서도 우리는 기쁨의 소망을 가지고 견디어냅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고난을 견디어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내 인내의 한계점에 이르러서도 고난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너무 힘들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만 같은데, 나를 힘들게 하는 그 문제는 점점 더 어려워져갈 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길을 끝까지 가야 하나? 끝까지 견뎌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신앙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아마 노아에게도 분명 그런 유혹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조롱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올 때 ‘정말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이고, 일에 지쳐 힘들어질 때면 ‘언제쯤 이 일이 끝나려나?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크게 배를 지으라고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그 모든 유혹을 이기고 그 일을 끝마쳤습니다. 노아가 그 힘든 시기를 참아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본문 22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그리고 같은 말씀이 7:5절에도 나옵니다.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 말씀들은 노아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아주 단축적으로 요약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것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 보면 조금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이 135m나 되는 거대한 배를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가 그렇게 크게 만들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규격을 다 정해 놓으셨습니다. 규격만 정하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설계도까지도 하나님께서 작정하셨습니다. 16절에 보면, 배는 상중하 3층으로 만들어야 하고, 창은 어디에다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문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등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14절에서는 방주의 내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역청을 안팎으로 칠해야 한다는 것까지 말씀해 주십니다. 비록 여기의 기록은 정밀한 것까지 다 나와 있진 않지만, 하나님께서 정밀한 그림을 그려 노아에게 주신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설계도면 대로 배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고, 설계도면과 다르게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하나 만들어가면서 늘 하나님께 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렇게 하면 되나요? 이게 맞나요?’
우리가 무언가를 할 때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일일지라도 눈앞에 있는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내게 맡겨진 일에 끝을 보게 됩니다. 고랑이 긴 밭을 일굴 때에도 그렇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끝도 잘 보이지 않는 긴 고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일할 맛이 나지 않습니다. ‘언제 다하지, 끝낼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바지를 걷어 올리고 들어가서 차근차근 밭을 일구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끝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런데 일하기 싫은 사람은 일하다가도 자꾸만 저 멀리에 있는 끝을 쳐다봅니다. 그리고선 한숨을 푹- 내쉽니다. 그런 사람은 힘이 팽겨서 끝까지 일을 하지 못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농부는 끝을 자꾸 보지 않고, 지금 내가 일구어야 할 눈 앞에 것만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농부는 저 멀리 끝을 쳐다보면서 한숨만 쉽니다. 그게 다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분명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완성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며 기다리며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시 오실 것은 분명하지만 그 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날만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쉽게 좌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그날을 기다리며 살라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오늘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합니다. 그것이 그날을 기다리는 성도의 바른 삶이라고 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곧 오실 텐데 일해서 뭐 하느냐?’고, 일하지 않고 놀면서 주님의 재림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로니가후서 3:10)고 엄히 명령합니다. 일하지 않는 그들이 이곳저곳 다니면서 오히려 일만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일을 만들며 다니지 말고,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데살로니가후서 3:12)고 권면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살다보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주님의 영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우리가 계산할 수 없습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다시 오마.’ 약속하고 하늘로 가신 우리 주님은 2000년이 다 되도록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분명 다시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노아가 그랬듯이,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주어진 내 삶을 게으르게 사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다시 오심이 영광의 때가 아니라 심판의 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때로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그날을 소망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바보스러울 정도로 오늘 내게 주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곧 주님 다시 오실 것 같이’ 기다리되, 지금 당장 주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느냐?’고 물으실 때 결코 부끄럽지 않도록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독일 고백교회의 영적 지도자요 신학자였던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의 바보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값없이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고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바보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바보스럽게 우리의 삶을 사십시다. 믿음으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처럼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노아도 바보처럼 산 사람입니다. 그는 어마어마하게 큰 배를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큰 배를 어디에 쓰려고 헛되이 노력하느냐고 놀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하게 그 배를 지었습니다. 120년에 걸쳐 지었든, 아니면 몇 십 년에 걸쳐 지었든 그가 그것을 그 오랜 시간 동안 산 중턱에다가 짓는 것은 분명 바보 같은 짓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바보 같은 노아를 조롱하고 비웃었을지라도 노아는 바보 같은 짓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홍수가 나던 날 노아는 바보가 아니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바보 같이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고대하며 기다리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될지라도,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는 결코 바보가 아니었음이 증명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내게 주어진 삶을 적당하게 요령 피우며 살지 않는 우리가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맞아주실 때 우리가 살았던 성실한 삶이 결코 바보 같은 삶이 아니었음이 증명될 것입니다.
신앙은 바보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바보 같이 사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우리의 머리에 영화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2013년 12월 1일 주일낮예배 - 대림절 첫째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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