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리더쉽

< 본문 - 사도행전 27:27-44 >

우리는 지난 10여일 참 우울한 마음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전 국민이 우울했고, 또 한 편으로는 분노했습니다. 지난 4월 16일 아침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먹먹한 가슴으로 TV를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호와 관련된 일들이 드러나면서 우리는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잘못된 욕심과 비리가 만들어낸 끔찍한 사고였음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사도 바울의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사도 바울이 제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사도 바울은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유대교를 버리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된 사도 바울은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자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원래 사도 바울은 유대교에 아주 심취해 있던 사람입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유대교에 열심했던 사람인데, 그런 사도 바울이 유대교를 버리자 유대교인들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면서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러자 유대교인들이 더욱 긴장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을 그냥 놔두면 유대교에 큰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유대교인들은 사도 바울을 죽일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계서 도우셔서 사도 바울을 죽이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도 바울을 고발합니다. 사도 바울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인 예수를 전함으로 유대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4:5절의 표현으로 한다면 유대교 입장에서 보면 ‘사도 바울은 전염병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놔두면 유대사회를 아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총독에게 사도 바울을 고발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억울하게 재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로마 황제에게 상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스라엘 땅에서 재판을 받으면 부당한 판결이 내려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로마 황제에게 상소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오래 전부터 로마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그 복음의 영향력이 전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번져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으로 스페인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스페인은 당시 땅 끝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세계의 중심에서 복음을 증거한 다음에 땅 끝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복음의 꿈을 가지고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리고 몇 번 로마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이제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사도 바울에게 로마에 갈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죄수 몇 사람과 함께 율리오라는 백부장이 통솔하는 로마 군대의 인솔 하에 로마로 가는 배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로마로 가는 뱃길이 결코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지중해 가운데 있는 그레데라는 섬에 있는 미항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인솔자인 백부장을 비롯한 선박 관계자들에게 ‘지금 로마로 출항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거기에서 겨울을 지낸 후에 가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겨울을 지내고 가자고 말한 이유는 항해하기가 위태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7:9절에 의하면 이미 금식하는 절기가 지났습니다. ‘금식하는 절기’는 대속죄일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7월 10일입니다. 요즘 우리가 쓰는 태양력으로 하면 9월 말에서 10월 초순에 해당됩니다. 성경학자인 부르스(F. F. Bruce)에 의하면,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던 그 해 대속죄일은 10월 5일 경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는 지중해를 가로질러 항해하기 어려운 시기입니다. 겨울이 되면 지중해에는 큰 풍랑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이 타고 오던 그 배가 미항까지 오는데도 쉽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한다면 ‘간신히’(27:8) 미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항해를 계속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미항이라는 작은 항구에 머물러 겨울을 지내고 가자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제안은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그 항해의 총책임을 맡은 백부장이 사도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선장과 선주가 미항보다는 뵈닉스라는 항구에 가서 겨울을 지내는 것이 낫다고 말한 것입니다. 선장과 선주가 미항이 아닌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고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미항이 작은 항구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바람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겨울에 일어나는 큰 풍랑을 완벽하게 차단해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작은 항구이기 때문에 그 배에 함께 타고 가던 사람들이 모두 머물기에 숙소나 음식 등에 여러 가지 불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선장과 선주가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고 한 것은 뵈닉스가 큰 항구이기 때문에 겨울을 지내데 좋은 조건이긴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떻게든 로마에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뵈닉스는 미항에서 약 65km정도 떨어져 있는 그레데 섬의 큰 항구입니다. 그곳에 가면 겨울을 지내고 로마로 출항할 때 훨씬 쉽고 빠르게 로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선주와 선장의 입장에서는 운항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상당한 이득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미항에서 머물자는 사도 바울의 제안을 거부하고 뵈닉스까지 가자고 한 것입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들의 이익 앞에서 잘못 판단한 결과 이런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세월호는 4월 15일 오후 6:30에 인천항을 출항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바다에는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 있어 출항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시간 30분 후인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인천항에서 출항을 했습니다. 당시 인천항에서 출항하기로 되어 있던 여객선은 세월호를 제외하고도 10척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여객선은 모두 안개로 인해서 운항을 취소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만은 저녁 8시 30분 안개로 인한 시정주의보가 해제되자 곧 출항을 하게 됩니다. 세월호가 그렇게 운항을 강행한 이유는 돈 때문입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이 취소되면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될 것이고, 화물 운임에서도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세월호는 기상상태가 결코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운항을 강행했던 것입니다. 돈이 문제였습니다. 손해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결국 사고를 만들어내고 말았고,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잃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타고 가던 배도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대로 운항을 하면 많은 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어느 누구도 사도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선장과 선주는 어떻게든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로마에 가까운 뵈닉스까지 가자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탄 배는 미항을 떠나 뵈닉스로 출항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순풍을 만나니까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배가 파선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죽을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18-19절에서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풍랑으로 인해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에는 배에 실었던 화물들을 다 바다에 버렸고, 3일째 되던 날에는 배에서 쓰는 기구마저도 버려야 했습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이 가지고 온 수하물을 모두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배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기구들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풍랑은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나 별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깊은 적막 속에서 오직 풍랑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식사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풍랑과 싸워야 했습니다. 20절에서는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아날 가망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풍랑과 힘든 싸움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이 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내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어제 밤에 나에게 나타나셔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습니다.’ 모두가 살 소망까지 잃어버리고 고통 가운데 절망하고 있을 때 사도 바울은 함께 배를 타고 가던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풍랑 속에서 고통을 당한 날 수가 14일이나 되었습니다. 두 주 동안 고통을 당하고 있던 중에 드디어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보면, 바닷물의 깊이를 재어보니 스무 길이었고, 조금 후에 재어보니 열 다섯 길이었습니다. 한 길은 팔을 벌렸을 때 오른쪽 손가락 끝에서 왼쪽 손가락 끝까지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약 1.8m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스무 길이었다는 것은 바다의 수심이 36m쯤 되었고, 조금 후에 다시 쟀을 때에는 약 27m쯤 되었습니다. 점점 수심이 낮아졌다는 것은 육지가 가까워졌음을 의미합니다.

육지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날이 새면 암초에 걸리지 않고 육지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공들이 거룻배를 바다에 띄워놓았습니다. 거룻배는 작은 배입니다. 큰 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용하기 위해서 갖고 다니는 것입니다. 사공들이 그 배를 타고 몰래 탈출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날이 밝으면 육지에 닿을 수 있다는 희망도 불확실하고, 아무도 생명을 잃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사도 바울의 말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사공들이 자기들만 살겠다고 밤중에 몰래 도망치려 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분노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의 행태였습니다.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 안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선장이라는 사람과 선원들이 가장 먼저 배에서 탈출해버렸습니다. 그들은 배의 구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배에 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데, 자기들 살겠다고 배와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습니다. 만일 선장이나 선원들이 다른 사람을 구조하려는 노력을 했다면 지금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선장이 선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선원이 선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니까 엄청난 비극적인 사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009년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비행기 추락사고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교훈해 줍니다.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이륙한 지 불과 3분만에 새떼와 충돌하면서 허드슨 강에 불시착했습니다. 그런데 탑승객과 승무원 등 155명 전원이 무사히 구조되었습니다. 비행기가 강에 불시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원이 구조된 데에는 기장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장인 체슬리 슐렌버거 3세는 새와 충돌한 후 비행기가 추락하자 사람들이 없는 강쪽으로 비행기를 틀어 혹한으로 얼음이 언 허드슨 강에 불시착했고, 불시착한 후 탑승객들이 안전하게 탈출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승객들을 모두 탈출시킨 후에도 혹시 승객 중에 객실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는 지 두 번씩이나 객실을 실핀 후에 제일 나중에 비행기에서 탈출했습니다. 끝까지 기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탑승객 전원이 안전하게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는 전혀 달랐습니다. 선장이나 선원은 자기들 살기에 바빠 다른 어느 사람보다 먼저 구조선이 올라탔고, 가라앉고 있는 배나 그 안에 있는 승객들을 나몰라라 했습니다. 그래서 사망자와 실종자를 포함해 3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선장은 선장으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배가 이상 없이 안전하게 운항될 때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순간에도 선장은 선장으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선원 또한 마찬가지이구요.

그건 모든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주어진 책임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책임이 있고, 아내는 아내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부모는 부로서의 책임이 있고,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책임이 있고, 직장인은 직장에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어느 직책을 맡아 일을 하든 다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책임을 저버린다면 그 공동체는 와해되고 맙니다. 내가 책임을 회피하면 나 한 사람은 편할지 몰라도 누군가가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까지 짊어져야 합니다. 더구나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책임은 더욱 무겁습니다. 그래서 더욱 책임적인 자세로 일을 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신앙인으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불러주신 것은 세상 속에서 우리가 소금으로서의 책임, 빛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소금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맛을 잃어버리고 부패에 빠지고 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빛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어두움에 가득 차고 말 것입니다.

자기 책임을 저버리고 자기 살겠다고 도망치려던 사공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사실을 알고 그 사람들의 도망을 막아야 한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공들이 탈출하기 위해서 바다 위에 띄워놓은 거룻배의 줄을 끊어버렸습니다. 거룻배가 사라지자 사공들은 탈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은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문제가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음식을 먹고 힘을 얻은 사람들은 힘을 합쳐 배를 육지에 접안하려 시도합니다. 이미 승객들의 수하물도 다 바다에 버리고, 배의 기구들도 버렸습니다. 이번에는 배에 실은 곡물들을 다 버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손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타고 가던 이 배는 알렉산드리아를 출발해서 이탈리아로 가던 배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북부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은 세계 최대의 곡창지역 중 하나입니다. 당시 로마제국도 많은 식량을 거기에서 들여왔습니다. 그 나일강 곡창지대에서 거둬들인 곡식들은 알렉산드리아 항에 모아졌고, 배로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 반도로 운반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타고 가던 배가 바로 그런 배입니다. 그런데 본문 38절에 의하면 그 많이 싫었던 밀을 모두 바다에 버려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들어간 곳은 모래밭과 같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39절에 ‘경사진 해안’이라는 말은 약간 경사진 모래밭을 의미합니다. 제대로 된 항구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모래가 많은 해안가로 배가 밀려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배가 육지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배의 무게를 줄여야 합니다. 배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으로 실고 가던 밀을 모두 바다에 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40절에 의하면 ‘닻’까지도 끊어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배가 안전하게 도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육지에서 내려오는 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이르자 배는 모래밭에 처박혀 깨어질 위기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41절에 보면,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고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물은 배의 앞부분을 말하는 것이고, 고물은 배의 뒷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부분은 모래밭에 처박혀 꼼짝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러자 뒷부분은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에 의해서 조금씩 파손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배가 깨어질 위기에 처하자 죄수들을 인솔하고 가던 군인들은 백부장에게 ‘죄수들이 도망치기 전에 모두 죽이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죄수들을 죽이지 않고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부터 육지로 나가게 한 후 널빤지 조각 같은 것으로 나머지 사람들을 태워 모두를 구하게 됩니다.

배가 부서지려는 순간에 죄수들은 모두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군인들은 죄수들을 도망치지 못하도록 죽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모든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안전하게 육지에 상륙하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죄수들을 모두 죽이자’는 제안을 백부장이 거부한 이유를 ‘사도 바울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은 그동안 사도 바울이 보여준 여러 가지의 모습을 볼 때 사도 바울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습니다. 비록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후송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결코 죽일 수 없는 인물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죽이는 방법을 거부했습니다.

백부장은 죄수를 호송하는 최고의 책임자입니다. 책임자의 바른 결정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거질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6.25전쟁 때 흥남부두에서 있었던 일을 들어보셨습니까?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23일, 함경남도 흥남부두에는 피난길에 오른 피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유엔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시작했고, 흥남에서 배를 타고 철군을 하게 되었습니다. 군인들이 거의 다 철수한 후에 미국 소속의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가 흥남부두에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그 배는 군무기를 싣는 화물선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남부두에 몰려든 피난민을 보고 당시 흥남철수작전의 총사령관이던 알몬드 장군(Edward Almond)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의 참모장이었던 포니 대령(Edward Forney)과 한국군 군의관인 현봉학 씨가 알몬드 장군에게 ‘피난민을 못 본 체 하고 무기만 실고 갈 수는 없다’고 강력하게 건의했기 때문입니다. 포니 대령의 말을 듣고 고민하던 알몬드 장군은 화물선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그 화물선에 피난민들을 태우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 배는 무기를 다 버린다 해도 2천여 명 밖에 태울 수 없었는데, 레너드 라루 선장과 로버트 러니 사무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하나님께 운명을 맡기자’며 태울 수 있는 한 최대의 인원을 태웠습니다. 그래서 무려 만 4천 명이나 태워 거제도로 가게 됩니다. 그 결과 전쟁무기 대신에 만 4천명의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흥남부두에서 거제도로 가던 도중에 배 안에서 5명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가장 많은 생명을 구출한 배로 2004년에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지도자의 바른 결정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 율리오는 죄수들을 모두 죽이자는 군인들의 말을 거부하고 생명을 살리는 쪽을 선택했고, 결국 그 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나 살기 위해서 먼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려는 거룩하고 희생적인 마음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욕심에서 만들어졌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잘못 판단하고 행동한 결과가 만들어낸 참사였습니다.

여러분, 생각할수록 너무 마음 아프지 않습니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해 봅니다. 이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바르게 감당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 신앙인들이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을 바르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사회는 그래도 희망이 있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 아니겠습니까?

< 2014년 4월 27일 주일낮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