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원하는가?
< 본문 - 마가복음 10:46-52 >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인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후에 하나님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물으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내게 구하라.” 그러자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대답합니다. 비록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자신에게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음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을 부러워했습니다. 특별히 다윗이 성실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면서 왕으로서 모범적으로 살았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바른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와 복을 주셨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다윗에 비하면 자신은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나라를 다스리면서 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안들을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자신에게는 그럴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잘 듣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게 네게 무엇을 줄까?’라고 물으실 때, ‘듣는 마음을 달라.’고 대답했습니다.
솔로몬의 그런 대답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무척이나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대답해 주십니다. ‘네가 너 자신을 위해서 장수하기를 구하지도 않고, 부귀영화를 구하지도 않고, 원수를 제거함으로 정치적으로 안정되기를 구하지도 않고, 잘 들을 수 있는 지혜를 구했으니 내가 네게 네가 구한대로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으로 주겠다. 그리고 네가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도 네게 주겠다.’
여러분, 솔로몬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는 솔로몬이 하나님께 대답한 말보다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과 부귀영화를 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잘 쓰는 표현으로 한다면 ‘솔로몬이 바른 기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셨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지 않는 것까지도 풍성하게 주신 것입니다.
이런 솔로몬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리시라.”(마태복음 6:31,33) 마태복음 6장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우리가 가장 많이 걱정하며 기도하는 것 -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들은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느냐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솔로몬은 그런 주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맞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소원을 갖고 삽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더 갖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나 형편이 각각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의 소원을 갖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절박한 상황에서 나오는 소원이기도 하고, 때로는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이나 욕심이 만들어낸 소원이기도 합니다.
여기 전혀 다른 소원을 주님께 아뢰었던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께로부터 ‘무엇을 원하느냐?’는 똑같은 질문을 받았고, 자기들의 소원을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한 종류의 사람은 주님께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셨고,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은 자기들의 소원을 아뢰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첫 번째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디매오입니다. 바디매오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그는 오늘 본문에 소개한 대로 맹인이었습니다. 그가 언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에서 추측하건대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의 이름을 ‘바디매오’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바디매오는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사실 이름이 없습니다. 바디매오라는 말은 ‘디매오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아버지인 디매오에게는 이름이 있었지만, 그의 아들에게는 이름도 없이 그냥 ‘디매오의 아들’이라고 불리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20장과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맹인 두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그냥 ‘한 맹인’이라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이름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머슴이나 종으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습니다. 정식 이름은 없고 그냥 그를 부르기 위한 호칭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3월에 태어난 여자아이는 ‘삼월이’라고 불렀고, 마당을 쓰는 머슴은 ‘마당쇠’라고 불렀습니다. 힘이 좀 세고 일을 잘하는 머슴은 ‘돌쇠’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진짜 이름이 아니라 주인이 부르기 위해서 그렇게 불러준 것뿐입니다.
바디매오에게 이름이 없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그의 아버지 디매오가 지질이도 가난한 거지였기 때문에 태어난 그 아들에게 이름을 붙여줄 필요성이 없었을 가능성입니다. 거지의 아들은 대부분 거지로 살아야 하기에 거지에게는 굳이 이름이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가능성은 바디매오가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맹인은 당시 사회에서 죄인으로 취급을 받았고, 그는 평생 거지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줄 필요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합해진 최악의 경우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연이든 간에 바디매오는 자신의 이름도 갖지 못한 채 살아야 했습니다. 앞을 볼 수가 없어 일을 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남들이 적선해 주는 것을 받아먹고 사는 거지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그는 여리고로 들어가는 길목에 앉아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소문으로만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께서 어떤 기적을 베푸셨는지 들었을 뿐입니다. 그에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예수님은 어떤 병도 다 고치시고, 낫게 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자기의 소원을 말씀하리라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드디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이야기가 오고갑니다.(마태복음 20:30)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셨다고 생각될 때 바디매오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나무랐습니다. ‘어디 거지 주제에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바디매오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그 소리가 예수님의 귀에 들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시고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 앞에 온 바디매오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것처럼 기쁜 말은 없었습니다. 자신이 소원을 아뢰면 예수님께서 들어주실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저주하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 말씀 한 마디에 바디매오의 눈이 떠져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에게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던 주님께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오늘 본문 바로 앞인 마가복음 10:35절 이하에 나오는 예수님의 두 제자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목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 우리가 소원하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 말씀은 바디매오에게 하셨던 말씀과 똑같습니다. 바디매오는 한 사람이기에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고, 야고보와 요한은 두 명이기에 ‘너희에게’라고 복수를 썼을 뿐이지, 나머지 문장은 똑같습니다. 바디매오의 경우를 본다면,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소원을 아뢰면 예수님께서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들의 소원을 예수님께 아뢰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소원은 들어주시면서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의 소원은 들어주지 않으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자,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이렇게 소원을 말합니다.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큰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고 예수님께서 그 주인공이 되어 예수님이 세상 권력의 중심에 앉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권력의 중심에 오르시게 되면 자신들도 큰 권력의 자리에 앉혀 달라는 요구입니다.
이런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를 예수님께서는 거절하십니다. 거절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말씀은 잘못 구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루어주시기를 바라는 그들의 소원이 적절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지 벌써 3년째나 됩니다.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면 지금 그들이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고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마가복음 10:33-34)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이유는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혁명을 일으켜 권력을 잡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힘없는 사람처럼 권력자들에게 붙잡혀 능욕과 채찍질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권력을 잡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께서 권력에 욕심이 전혀 없으시다는 것을 분명히 보아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으로 몰려들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인기를 얻으려 하신 적도 없고, 그들을 동원해서 권력의 자리에 오르겠다고 생각해보신 적도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죄인이라고 낙인찍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그들과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당시의 권력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공격적인 말씀을 거침없이 쏟아내셨고, 권력자들과 논쟁을 하시면서 그들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율법의 정신에 맞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권력자들이라 하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책망하시고 호되게 나무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권력을 잡으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권력자들에게 아부하고,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는 언행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권력에 줄을 대고 그것을 힘입어서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걸 예수님의 제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목에서 제자들은 지난 3년 동안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셨는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무엇에 관심을 갖고 사역하셨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 어떤 말씀을 하시며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신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자기들의 욕망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생각이 지금 제자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가득합니다.
여러분, 자기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구했던 바디매오의 소원과 세상의 권력의 자리를 달라고 한 제자들의 소원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십니까? 바디매오의 소원은 지금 자신의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을 이루어달라는 소원입니다. 세상의 욕심에 때 묻지 않는 소원입니다. 바디매오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실 때 바디매오가 다른 것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다시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 와서 구걸하지 않고도 평생 먹고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지금 바디매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사람들에게 구걸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 눈에 띠지 않고 조용히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구걸하면서, 또는 맹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창피를 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바디매오가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소원을 말해서 눈을 떴습니다만, 눈을 떴다고 해서 그의 생활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이제부터 더 많은 고생을 해야 하고, 더 힘들게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맹인이었을 때에는 의당 걸인으로 다른 사람에게 구걸해도 괜찮습니다. 구걸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맹인이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은 간혹 있을지 몰라도, 구걸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눈을 뜨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제는 구걸도 할 수 없습니다. 구걸하다가는 ‘사지가 멀쩡한 놈이 일해서 먹고 살려고 해야지, 구걸을 해!’라고 핀잔을 듣게 될 것이고, 사람들이 예전처럼 동정도 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열심히 일해서 자기 밥벌이를 해야 합니다. 걸인으로 살 때보다도 더 힘들게 일해야 합니다. 또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본다면 그에게 언제나 일감이 예비되어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당시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태반이었는데, 그들에게 일할 수 있는 일감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일반적으로는 아침 6시에 일꾼으로 불려가 일을 하지만, 그렇게 부름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침 9시에도 누군가가 자신을 불러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장터를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낮 12시가 되어도 여전히 품삯 절반이라도 벌기 위해서 장터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심지어는 하루 일과 마감 시간이 3시간 밖에 남지 않은 오후 3시에도, 또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은 오후 5시에도 장터에서 서성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일자리 구한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실업자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눈을 뜨게 된 바디매오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생존전쟁에 들어선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서 일자리를 얻어야 하고,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 정말 피땀흘리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디매오는 눈을 뜨게 해 달라는 것보다도 평생 먹고사는 문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소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그런 욕심에 가득 찬 소원, 여러 가지 이것 저 것 재며 자기의 소원을 고르고 골라서 주님께 아뢴 것이 아닙니다. 가장 근본적인 소원을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여기는 어떤 욕심이나 세상적인 것에 때 묻은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의 소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소원을 말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심하며 또 고심했는지 우리는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의 자리를 달라’는 그런 소원은 비단 야고보와 요한만이 갖는 소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다 그런 소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소원을 예수님께 말하기 위해서 서로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먼저 그런 소원을 말하자, 나머지 제자들이 모두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냈습니다. 나머지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낸 이유는 야고보와 요한이 해서는 안 되는 소원을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이 먼저 하려고 눈치를 보고 있던 차에 야고보와 요한에게 그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마만큼 야고보와 요한이 아뢴 그 소원은 제자들 모두가 가지고 있던 소원이었고, 그랬기에 예수님께 그것을 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까지 와서 ‘우리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혀 달라.’고 예수님께 청탁을 합니다. 어머니까지 나서서 그렇게 했다는 것은 야고보와 요한의 그 소원은 순간적으로 나온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이것 저 것 많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예수님께서 혁명을 일으키실 것인데, 그러면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닌 우리는 어떤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아마 다른 제자들도 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을텐데, 언제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서 예수님께 확답을 받아낼까?’ 아마 수도 없이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말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부터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시려고’(마가복음 3:14-15) 따르는 많은 무리들 가운데 12명을 택하여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왜 자기들을 부르셨는지, 왜 자기들을 제자로 삼으시고 3년 동안이나 훈련을 시키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그들의 마음속에 욕망이 들어오더니, 예수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욕망에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욕망으로 가득 찬 소원을 아뢰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나셔서 “내게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내게 구하라.” 솔로몬에게 하셨던 말씀을 여러분에게 하신다면 여러분은 무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바디매와와 제자들에게 물으셨던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똑같이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어떤 소원을 말씀드리시겠습니까? ‘무엇을 기도하고 있느냐?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오랫동안 신앙생활 했다고 하면서 여전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내가 욕망하는 것만을 바라고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내 욕심이 만들어낸 거짓된 허상을 꿈꾸며 그것이 내 진정한 소원인 것처럼 주님께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진 못한다 하더라도, 바디매오와 같이 우리의 믿음을 보여드릴 수 있는 소원을 주님께 아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자들과 같이 욕심에 노예가 된 소원 말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이렇게 대답해 주십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소원을 아뢴 후에 ‘가라. 네 믿음대로 내가 네 소원을 이루어주마.’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13년 11월 24일 주일낮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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