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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02-20 10:32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2월 20일>

글쓴이 : 안효관

제목 -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본문 - 갈라디아서 6:17

지난 한 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글이 하나 있습니다. ‘수도권 계급표’라는 참으로 씁씁한 글입니다. 거기에는 수도권을 7등급으로 나눠서 계급을 매겨놓았습니다. 계급을 나눈 기준은 오직 하나 ‘땅값이 얼마나 비싼 곳에 살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땅값이 평당 3천만 원 이상 하는 강남구는 ‘황족’이고, 평당 2,200만 원 이상 가는 서초구 송파구 과천시는 ‘왕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땅값이 떨어질수록 ‘중앙귀족’ ‘중앙호족’이 있는데, 최소한 땅값이 1,500만 원 이상은 되어야 이런 귀족 측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1,500만 원 이래로는 ‘중인’ ‘평민’ ‘노비’이고 평당 땅값이 천만 원 이하는 사람도 아닌 ‘가축’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평당 1,500만 원을 중심으로 그 위에 사는 귀족과 그 아래에 사는 중인 이하는 ‘뛰어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귀족과 평민은 뛰어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이 있어서, 신분의 차이가 엄청나게 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재미로 만든 것이라고는 하지만, 참으로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얼굴로 사람을 평가하는 인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성질 못된 것은 참아도 얼굴 못난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말도 있었구요, 심지어 몇 년 전에는 강도짓을 한 한 여성을 놓고 그 여자가 단순히 얼굴이 예쁘다는 것 때문에 ‘얼짱 강도’라고 해서 강도가 스타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떤 곳에 사느냐에 따라는 귀족 취급을 받기도 하고, 평민이나 노예로 취급 받기도 하는 사회가 되지 않나 하는 걱정이 됩니다. 부자 동네, 잘 사는 사람만 특별한 대접을 받는 사회, 이건 분명 바르게 가는 사회가 아닙니다. 땅값에 따라서 사람을 분류하는 계급표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누군가가 여러분을 향하여 노예라고 부른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앞에 말씀드린 계급표에 의하면, (물론 우리는 수도권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 분류에 따르면 우리는 노예 축에도 들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우리를 향하여 노예라든가 쌍놈이라고 부른다면 기분 좋게 그것을 받아들일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노예라고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물론 사람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노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종이라는 말은 우리가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종이라는 말을 노예라는 말로 바꾸면 기분이 달라집니다. 노예라는 말은 아주 천히 여기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는 불러도 ‘주님의 노예’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며 종이나 노예나 같은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향하여 ‘당신은 종입니다.’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종이라는 인식은 분명하게 갖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런 인식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종의 인식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말씀 가운데 하나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예수님의 흔적을 가졌다는 말은 ‘자신이 예수님의 종이라는 분명한 인식표를 가졌다’는 말입니다. 여기 ‘흔적’이라는 말은 낙인이라는 뜻입니다. 당시에 노예가 되면 주인은 자기의 노예에게 ‘이 노예는 내 것’이라는 표시로 이마에 낙인을 찍었습니다. 노예는 그 낙인이 이마에 찍힌 채 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 낙인이 찍힌 노예는 어디로 도망을 갈 수 없습니다. 도망가더라도 이마에 찍힌 낙인으로 인해 금새 어디서 도망쳐온 노예인지 들통나기 때문입니다. 마치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책 『주홍글씨』에 나는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그의 가슴에 ‘간통녀’라는 뜻을 가진 A자를 평생 달고 살아야 했던 것처럼, 옛날의 노예들은 평생 이마에 주인의 것이란 표시의 낙인이 찍힌 채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 낙인이 자랑스러운 것이겠습니까? 부끄러운 것이겠습니까? 당연히 부끄러운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낙인을 지워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 낙인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내 몸에 예수님의 낙인이 찍혔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 바울이 그 낙인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낙인(흔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자랑스럽게 ‘내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낙인)이 찍혀 있다’고 선언합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을 가지고 자신의 몸에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노라고 말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학자들은 아마도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에서 고백한 ‘육체의 가시’를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낙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추론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평생 따라다니는 치명적인 아픔이 있었습니다. 육체의 가시라고 불리는 질병입니다. 그는 그 병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병을 고쳐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린도후서 12:9) 병을 고쳐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병을 안고 평생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병을 안고 평생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병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병이 나를 약하게 하는데, 내가 약해질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되는구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비록 몸은 ‘육체의 가시’인 그 병으로 인해 가시에 찔리는 것처럼 아픔이 있지만, 그 약함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그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육체의 가시인 그 병을 볼 때마다 자신은 예수님의 종일 수밖에 없고, 예수님의 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늘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병으로 인해 아픔을 겪을 때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당하신 예수님, 내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육체의 가시인 병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혹 우리에게도 약함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약함입니까? 물질적인 약함일수도 있고, 육체적인 약함일수도 있고, 정신적인 약함일수도 있습니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내가 가진 능력의 한계로 인해 할 수 없는 능력의 약함일수도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내게 그런 약함을 주셨는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어쩌면 사도 바울처럼 우리에게도 그것이 예수님의 흔적일 수 있습니다. 그 약함 때문에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고, 그 약함 때문에 예수님을 더욱 붙잡게 되고, 그 약함 때문에 예수님을 닮아가게 된다면 그게 바로 우리 몸에 있는 예수님의 흔적입니다.
세상적인 가치로 말한다면 약함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감추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함이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게 만들고, 그 약함이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게 한다면, 그건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처럼 당당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는 예수님의 흔적은 비단 육체의 가시인 병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또 하나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채찍에 맞아 찢겨진 상처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참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기록된 것처럼,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세 번은 태장으로 맞았습니다.(고린도후서 11:24-25) 여기서 말하는 태장(笞杖)이란 형벌은 로마식 형벌입니다. 그런데 그 형별이 아주 끔찍하기 때문에 로마 시민에게는 태장이 금지되었습니다. 로마에서 행해진 형벌임에도 로마 시민에게 태장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형벌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짐작케 해 줍니다.
태장은 채찍으로 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채찍 끝에는 납덩이를 매달아 놓았습니다. 납덩이가 매달려 있는 채찍을 사람에게 내리치면, 긴 채찍이 사람의 몸을 휘어 감습니다. 채찍 끝에 달린 납덩이는 사람의 몸에 박힙니다. 그리고는 순간적으로 채찍을 잡아당깁니다. 그러면 채찍이 몸에서 떨어져나가면서 몸에 박힌 납덩이가 사람의 몸을 찢습니다. 마치 쟁기로 밭고랑을 갈듯이, 납덩이가 사람의 몸에서 살덩이를 훑어갑니다. 살점에 떨어져 나가고 깊은 골이 생기면서 피가 흘러납니다. 종종 그런 끔찍한 태장을 받다가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태장을 세 번이나 맞았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태장을 맞지 않아도 됩니다.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언제든지 로마 시민권을 내세우기만 하면 그는 태장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세 번이나 태장에 맞았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도 바울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태장을 세 번씩이나 맞았던 이유는 복음을 위해서 로마 시민권의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도 그랬습니다. 제2차 선교여행 중에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인을 고쳐주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발을 당하여 죽도록 채찍에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이 때 맞은 채찍의 형벌이 바로 태장입니다. 태장에 맞기 전에 자신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렸다면 그는 채찍에 맞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진 로마 시민의 권리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죽도록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 때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채찍에 맞아야 했지만, 감옥에 갇히는 일로 인해서 감옥의 간수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고 그의 가족 전부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빌립보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 태장을 맞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는 세 번이나 태장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태장을 맞을 때 채찍 끝에 달린 납덩이가 자신의 몸에 엄청난 상처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상처는 쉽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깊은 상처였기 때문에 상처가 아문다 하더라도 그 흔적은 남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그렇게 매를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임에도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실 때 생겼던 그 상처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사도 바울에게는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예수님의 사도가 되고, 그 예수님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분명 치욕의 십자가입니다. 형벌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종(노예)가 된다는 것 역시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도 수치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인 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만 자랑했습니다.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를 지실 때 생겼던 흔적이 자신의 몸에도 조금이나마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했는데, 우리는 무엇을 자랑거리로 삼고 살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보다 좀 더 가졌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까? 남들보다 좀 더 배웠고, 남들보다 삶의 경력이 화려하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까? 남들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남들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까? 그런 것들은 언젠가 다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많이 가졌다고 평생 많이 가진 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에서 많이 가졌다고 저 하늘나라에 우리의 상급이 쌓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재물도 사라지고, 건강도 사라지고, 지혜도 우리에게서 사라질 때가 언젠가 올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적 열심이 자랑거리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신앙적 열심이 자랑거리가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의’ ‘인간의 의’에 빠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이유가 그들이 인간의 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구제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헌금한다는 것 때문에 ‘자기 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자기 의에 빠져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예수님께서 호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십자가만 자랑했습니다. 자랑할 것이 십자가뿐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고, 복음을 위해 수고한 공로가 없기 때문에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보다 많이 배웠습니다. 그는 우리보다 더 열심히 기도했고, 우리가 읽은 성경의 대부분도 그가 쓴 것입니다. 그는 우리보다 복음을 위해서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자랑거리는 아니었습니다. 오직 십자가만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십자가의 흔적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의 종 - 예수님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의 자랑거리도 십자가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종(노예)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자랑스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은 지니고 있노라.”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이 존귀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진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진 그리스도의 노예이기 때문에,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노예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만 소유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것인 나를 너희가 이래라저래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흔적을 가진 예수님의 노예이기 때문에 자신은 예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만이 자신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사도 바울의 사도권의 문제를 가지고 상당히 논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한 바울은, 예수님께서 생전에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지 않으신 바울은 사도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가 아닌 그가 전한 복음은 참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주장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강력하게 반박합니다. 그리고 난 후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뭐라고 그래도 나는 예수님의 흔적을 가진 예수님의 노예다. 예수님의 노예인 나를 가지고 너희가 사도다 아니다 그렇게 나를 흔들지 말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어떤 흔적이 있습니까? 어떤 흔적을 갖고 살기를 원하십니까? 이탈리아의 성자 프랜시스(St. Francis, 1181-1226)는 정말 성결하고 고귀한 삶을 살다 간 사람입니다. 불과 45살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그는 베루나 산에 올라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내 생전에 내 몸과 내 영혼에 될 수 있는 대로 주님이 친히 맛보신 그 고난의 고통을 맛보게 하소서. 그리고 주께서 우리 죄인을 위하여 그처럼 참으실 수 있었던 그 불타는 끝없는 사랑을 알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를 할 때 이사야가 본 그 환상을 그도 보게 됩니다. 여섯 날개 가진 천사들에 둘러싸인 보좌에 주님이 앉아 계신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프랜시스의 두 손과 두 발에 못 박힌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나게 되었고, 오른쪽 옆구리에 창 자국이 나서 피가 흘러 속옷을 적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옆구리에 난 그 다섯 개의 상처를 ‘오상(五傷)’이라고 하는데,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상처를 지닌 채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 프랜시스가 가졌던 오상(五傷)을 가질만큼 거룩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허물투성이입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빈털털이로 살았던 프랜시스처럼 그렇게 살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욕심덩어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갖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만은 그리스도의 흔적을 안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채찍에 맞아 찢겨진 상처로 인해 예수님의 십자가 삶을 조금이나마 닮아갔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의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갖진 못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의 가슴에 분명하게 새기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풍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신앙으로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내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믿음으로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세상의 자랑거리를 다 내려놓으면 됩니다. 좀 더 가졌다는 것, 좀 더 배웠다는 것, 좀 더 안다는 것, 좀 더 누리고 있는 것을 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십자가보다 더 귀하게 여겼던 것을 다 십자가 아래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십자가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의 가슴에 가득 채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의 심령에 가득 채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는 것 -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갖고 사는 삶입니다. 세상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예수님의 흔적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2011년 2월 20일 주일낮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