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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07-11 10:37

다시 왕자의 신분으로 <7월 11일>

글쓴이 : 안효관

제목 - 다시 왕자의 신분으로
본문 - 사무엘하 9:1-8

여러분, 사도세자를 잘 아시지요? 비운의 왕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지만, 권력다툼의 틈바구니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습니다. 사도세자가 어떻게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다양한 주장들이 있지만, 일반적인 견해는 소론 편에 서 있던 사도세자를 노론 측에서 모함함으로써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노론의 힘을 등에 지고 왕위에 오른 아버지 영조마저도 늦둥이 아들인 사도세자를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사도세자가 15살 되던 해에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서정에 참여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한 번은 사도세자가 업무를 잘못 처리했다는 이유로 영조에게 호되게 혼이 나고 홍역을 앓게 됩니다. 홍역을 앓으며 몸이 몹시 허약한 상태에서 며칠 동안 차가운 눈 위에서 아버지께 잘못을 빌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사도세자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정신병을 얻게 되는데, 그것이 나중에는 옷을 입으면 발작을 하는 ‘의대증’이라는 병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아버지 영조는 사도세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참 많은 노력을 했지만, 뜻하지 않는 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평소 사도세자를 싫어하던 노론의 신하들이 나경언(羅景彦)이란 사람을 시켜 사도세자의 잘못된 행동들을 맹렬하게 비난한 상소를 올린 것입니다. ‘세자가 세자빈을 칼로 치려했고, 여승을 끌어들여 궁중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영조대왕의 허락도 없이 20여 일 동안 동궁을 비운 채 평양으로 미행을 나가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괴롭혔다’는 내용으로 상소를 올린 것입니다.
그 글을 읽은 영조는 고자질을 한 나경언을 다음날 곧바로 처형을 합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병이 깊고 행위가 바르지 못한 사도세자가 왕이 되면 나라를 바르게 다스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세자를 왕자의 신분에서 평민으로 강등시켜버립니다. 억울한 사도세자는 상소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울부짖지만, 화가 난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죽이고 맙니다.
사도세자는 결국 서민의 신분으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나중에 왕자로 다시금 신분이 회복됩니다. 영조가 사도세자가 죽은 지 얼마 안 돼 자신이 아들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마음 아파하다가 신분을 회복시켰고, ‘사도세자’라는 시호를 내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왕자에서 평민으로 강등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사도세자는 결국 왕자로서의 신분을 회복하게 됩니다. 비록 그가 죽은 후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여기 사도세자 못지않게 기구한 인생을 산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왕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의 아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울 왕의 손자입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왕궁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다섯 살 때 비극이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므비보셋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하고 만 것입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그의 아버지인 왕자 요나단이 적군의 칼에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요나단만이 아니라, 사울의 아들인 왕자 세 명이 함께 죽고 맙니다. 그의 할아버지인 사울 왕은 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자신의 세 아들이 적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전쟁에서 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도망하던 중에 적군이 쏜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 상처가 너무 커서 도저히 살아날 가망성이 없었고(사무엘하 1:10), 더 이상 어딘가로 도망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다가는 뒤쫓아 온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 죽게 생겼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적군의 손에 죽었다는 비참함을 면하기 위해서, 자기의 부하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왕의 부하는 왕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비록 왕의 부탁이긴 하지만 어떻게 신하가 감히 왕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부하가 거절하자 사울 왕은 자기 스스로 칼을 뽑아 자결하고 맙니다.

왕인 사울과 왕자 셋이 함께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므비보셋을 키우고 있던 유모가 어린 므비보셋을 데리고 급히 도망치다가 유모의 실수로 아이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다치게 되었고, 평생 두 다리를 저는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왕인 할아버지가 죽고, 왕자인 아버지와 삼촌들이 다 죽었다면 다음 왕위 순서는 당연히 므비보셋이 1순위입니다. 그런데 당시 분위기는 므비보셋이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므비보셋이 너무 어렸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다음 왕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유모가 어린 므비보셋을 살리기 위해서 아이를 궁궐 밖으로 빼돌린 것입니다. 당시의 풍습은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전 왕의 가족들을 다 몰살시켰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지지기반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죽음의 위기 때 유모가 이 므비보셋을 빼돌린 후에 아무도 모르게 한 시골에서 양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다윗의 나라는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유다지파의 지지를 받던 다윗이 나중에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바로 앞인 사무엘하 8장에 보면 다윗은 전쟁하는 곳마다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그 나라는 더욱 안정되어 갔습니다. 이제 다윗의 나라는 내외적으로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평화로웠습니다.
그 때 다윗이 요나단을 생각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아주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을 사랑한 것처럼 사랑했다”(사무엘상 20:17)고 말할 정도로 둘 사이의 우정은 아주 남달랐습니다. 사실 다윗과 요나단은 원수 관계여야 맞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입니다. 요나단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낙점하셨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윗을 따랐습니다. 요나단으로서는 다윗을 제거해야만 자신이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오히려 다윗을 좋아했습니다.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다윗으로 하여금 도망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왕위를 놓고 본다면 다윗은 요나단에게 정적이요 하루라도 빨리 제거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차기 왕으로 선택하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겠다는데, 자신이 아무리 막은 들 막을 수 없음을 그는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다윗이 왕이 될 수 있도록 다윗의 뒷바라지를 해 줍니다.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요나단이 다윗을 도망치도록 도와주면서 이런 제안을 합니다.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버리지 말라.”(사무엘상 20:14-15) 이렇게 해서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언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은 죽었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가문은 거의 멸절된 상태였습니다. 반면 다윗의 나라는 견고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윗이 왕궁 발코니에서 태평성대를 누리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그 옛날 요나단과 맺었던 그 언약을 기억하게 됩니다. 요나단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지 않았다면 이런 영광스런 오늘이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나단의 우정이 마음 깊이 사무쳐올 때 다윗은 급히 신하 하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명령합니다. “사울의 집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느냐?”(1절)
이 말은 사울의 집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예 그 뿌리를 뽑아 없애버리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이 말에는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습니다. ‘내가 원수의 집안을 거둬들이면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또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말도 아닙니다. ‘내가 사울의 집안에 은혜를 베풀면 나중에 언젠가 그들도 내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고 내게 은혜를 갚아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한 말도 아닙니다.
그는 요나단과의 약속이 생각났을 뿐입니다. 지금까지는 정치적으로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내느라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라가 안정되고 태평성대를 누리게 된 지금 옛날 요나단과 했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지금까지는 내 앞에 당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옛날을 회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사 옛날을 추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나단과의 아름다웠던 지난 추억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너무너무 힘들었을 때 요나단은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 하나 없고, 사울의 추격 속에서 마음 편하게 머리를 기대고 쉴만한 자리가 없었을 때 요나단이 자신의 후원자가 되어주었고, 자신의 마음에 안식처가 되어주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는지 알라보라.”고 명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신하는 옛날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 그 집을 섬겼던 종 하나를 불러왔습니다. ‘시바’라는 이름을 가진 그 종이 므비보셋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줍니다.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3절)
우리는 이 말을 잘 새겨보아야 합니다. 시바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아직까지 살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를 저는 장애인입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 말은 므비보셋이라는 아이는 왕께서 자비를 베풀만한 자가 아닙니다.’ 그런 뜻입니다. 다리는 저는 장애인을 궁궐에 데리고 온다는 것이 가당치나 하겠습니까? 다윗이 ‘다리를 저는 장애인 말고, 다른 사람은 없느냐?’ 라고 묻는다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다윗을 욕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윗 시대에 다리 저는 자들은 다윗의 왕궁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사무엘하 5장에 보면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이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할 것이라고 놀리면서 ‘다리 저는 자와 맹인을 가지고도 너를 이길 수 있다’고 다윗을 멸시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다윗은 다리 저는 자와 맹인을 굉장히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하 5:8절에 보면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또 그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 땅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속담까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다리를 저는 아이를 왕궁으로 데리고 온다는 것은 당시 분위기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바는 아이의 이름조차 말하지 않고 다리를 저는 아이라고만 말해준 것입니다. 왕이 싫어하는 사람, 왕궁에 데려오기에 합당치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가 어디 있느냐?”(4절) 그러자 시바가 대답합니다.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로드발이 지리적으로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로드발’이라는 말은 ‘나무나 풀이 하나도 없는 황무지’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므비보셋이 시골의 어느 한적한 곳에 숨어 지낸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므비보셋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다는 뜻입니다. 다리를 저는 장애인인데다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 같은 곳에서 지내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은 왕궁으로 불러들일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그를 왕궁으로 불러옵니다. 허름하기 그지없는 옷을 입고 두 손에 목발을 짚고 두려움에 떨면서 왕궁으로 들어오는 므비보셋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궁궐은 화려하게 지어졌습니다. 두로 왕이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주어 아주 잘 지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궁궐이 화려하고 거대하게 지어진 것을 보고서야 하나님께서 자신을 백성 가운데 높여주셨다는 것을 알 정도로(사무엘하 5:11-12) 그의 왕궁은 아주 잘 지어진 집이었습니다. 그런 왕궁에 거지꼴을 한 므비보셋이 들어옵니다. 왕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 틈바구니에 초라하고 허름한 옷을 입은 므비보셋이 두려운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옵니다. 더구나 다윗이 그토록 싫어하던 절뚝발이의 모습을 하고서 말입니다. 전혀 왕궁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므비보셋을 다시금 왕자로 인정해줍니다. 7절에 의하면 사울 왕이 가졌던 모든 재산을 회복시켜줍니다. 그리고 언제나 왕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합니다.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라”는 말은 단순히 다윗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초대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말입니다. 왕자로서의 신분을 확실하게 회복시켜 준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8절에서 자신이 고백한 것처럼, 다윗 앞에서는 ‘죽은 개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유대인들은 개를 아주 싫어합니다. 오늘 우리 문화에서도 사람에게 ‘개’라고 표현하면 아주 멸시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그랬습니다. 더구나 ‘죽은 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을 무론하고 시체는 부정한 것입니다. 만질 수도 없고 가까이 가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자신을 ‘죽은 개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다윗의 그런 호의를 받을만한 어떤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그에게 왕자의 신분을 허락합니다. ‘내 상에서 늘 같이 먹자구나.’ 얼마나 감동적인 말입니까?

유명한 강해설교가인 찰스 스윈돌(Charles Swindoll)은 오늘 이 장면을 아주 멋있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저녁 만찬을 알리는 종이 왕궁에 울려퍼지자, 다윗이 식탁 상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얼마 후 열리하고 간교한 암논이 다윗의 왼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사랑스럽고 우아한 다말,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이 젊은 여인이 도착하여 암논 옆에 앉았습니다. 저쪽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솔로몬이 천천히 걸어옵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 아들은 조숙하고 영리하며 공부에 여념이 없는 왕자입니다. 그리고 압살롬, 잘 생기고 쾌활한 압살롬이 어깨까지 늘어진 까맣고 아름다운 머릿결을 찰랑거리며 등장합니다. 그 특별한 날 저녁, 용맹한 전사이자 다윗 군대의 사령관인 요압이 만찬에 초대받았습니다. 구릿빛의 근육이 돋보이는 요압이 왕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다 모인 그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리고, 철커덕 철커덕 목발 소리 요란하게 므비보셋이 등장하여 조금은 어색한 듯 자기 자리를 찾아 쓰윽 의자에 앉습니다. 그는 식탁보로 자신의 발을 가리웁니다.” 그리고 찰스 스윈돌은 이렇게 말을 잇습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므비보셋은 은혜가 무엇인지 알았을까요?”

여러분, 이 므비보셋의 이야기에서 뭔가 마음에 끌리는 점이 있지 않습니까? 웬지 내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1절, 3절, 7절에 나와 있는 “은총”이라는 말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은총(은혜)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단어가 세 개가 있습니다. ‘헨’과 ‘라촌’과 ‘헤세드’입니다. ‘헨’이라는 말은 단순히 즐겁고 아름다운 것을 의미합니다. ‘라촌’이라는 말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호의를 뜻합니다. 반면 ‘헤세드’는 언약적인 사랑, 불변의 사랑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에 세 번씩이나 등장하는 ‘은총’이라는 말은 ‘헤세드’입니다.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베푼 은총은 불변의 사랑입니다. 아가페와 같은 사랑입니다. 어떤 조건을 따져 베푼 사랑도 아니고, 어떤 조건을 바라고 행한 사랑도 아닙니다. 조건을 따지도 않은 사랑이고, 어떤 조건을 바라지도 않고 베푼 사랑입니다. 그는 다윗왕의 그런 은총을 받을만한 자격이 결코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일방적으로 그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다윗의 상에 앉아서 함께 식사하는 것은 고사하고, 살아 있다는 것이 발각되면 즉각 처형당해야 마땅한 사람입니다. 왕궁으로 부름 받은 것은 고사하고, 다윗 왕의 기억에서 영원히 떠오르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 더 나은 존재로 살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므비보셋을 왕궁에 불러 함께 식사하며 왕자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은총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한 때는 왕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참으로 존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돌보며 그 세상 안에서 마음껏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죄에 빠졌습니다. 죄로 인하여 죽어 마땅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옥행 특급 열차를 타고 지옥을 향해 달려가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께서 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를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죄에 빠진 우리를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셔도 어느 누구 하나 하나님께 ‘왜 우리를 죄악 가운데 버려두셨느냐?’고 항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시고,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는 죄인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과 원수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런 사랑, 그런 은총을 받을만한 어떤 자격이나 조건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은총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로마서 5:10)

므비보셋은 정말 복받은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주 쓰는 말로 한다면 정말 행운아입니다. 그런데 여기 므비보셋보다 더 행운아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 므비보셋은 다윗의 식탁에서 다윗 왕과 함께 식사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식탁에 초대받아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과 함께 식사하며 즐거움을 누리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 므비보셋은 할아버지 사울 왕의 모든 밭을 되돌려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되돌려 받는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 므비보셋은 다시금 왕자의 신분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므비보셋이 받은 복보다 더 큰 복과 은총을 받았고, 그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복과 은총을 지금도 기억하며 살고 계십니까? 다윗 왕의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므비보셋이 다윗이 베푼 은총을 평생 잊을 수 있겠습니까? 다윗의 식탁에 앉을 때마다 그 은혜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아니 너무 자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을 망각하며 살고 있진 않습니까?

미국 스텐포드 대학에 다니던 두 학생이 학비를 마련하기가 어렵게 되자,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파데레브스키(I. Paderewski, 1860-1941)를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음악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등록금을 해결하려 한 것입니다. 그들은 파데레브스키에게 공연료로 2,000불을 지불하기로 약속하고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주회에서는 예상과 달리 총수익금이 1,600불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등록금은커녕 음악가에게 주기로 약속한 공연료 2,000불에서 400불이나 적자가 난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연주회 수익금 1600불과 나머지 400불은 나중에 반드시 갚겠다는 서약서를 파데레브스키에게 보냈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 이 사실을 안 파데레브스키는 가난한 학생들로부터 받은 1,600불을 모두 되돌려주면서 학비에 보태 쓰라고 하고, 오히려 그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폴란드의 음악가 파데레브스키는 폴란드 공화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전 유럽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폴란드 대통령 파데레브스키는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국에 식량원조를 요청하기로 결심하고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량원조 요청서가 미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미국으로부터 많은 식량이 폴란드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급한 상황이라 일단 그것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난 파데레브스키 대통령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Herbert C. Hoover, 1874-1964)를 찾아 정중하게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후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식량이 필요한 것 같아 보내드렸을 뿐입니다.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어렵게 대학에 다니던 시절, 당신은 제게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정말 곤경에 처해 있었거든요.” 자신을 청하여 연주회를 열고, 그 수익금으로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고자 했던 오래 전의 그 두 대학생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후버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파데레브스키 대통령은 그때야 알게 되었습니다. 파데레브스키로부터 도움을 받은 후, 후버는 항상 그때 그로부터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은혜를 늘 가슴에 품고 감사함으로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큰 은혜를 망각한 채 아무런 감격도 없이 그저 무덤덤하게 살고 계시진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왕자로 불러주셨습니다. 도무지 왕자가 될 자격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도무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상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하늘나라의 왕자로 우리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누구를요? 바로 우리를 말입니다. 바로 나를 말입니다.

<2010년 7월 11일 주일낮예배>